<특파원 보고 39>캐나다 원주민들의 ‘치유되지 않는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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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보고 39>캐나다 원주민들의 ‘치유되지 않는 상처’ 타일러, “원주민 학살, 총리·교황 사과 진정성 없어” 이정성 기자 2022-06-18 07:31:13

【에코저널=캐나다 베리어】캐나다 해양수산부가 운영하는 베리어(Barriere) 인근 연어 인공부화장인 ‘던 크릭 부화장(Dunn Creek Hatchery)’에서 일하는 타일러 보위(Tyler Bowie, 35)는 캐나다 원주민(First Nation People)이다.


캐나다 베리어 지역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 입구에 걸린 표지판. 원주민 심프크(Simpcw)족과 ‘First Nation People’이라는 글이 보인다.

캐나다의 ‘인디언 보호구역(Indian Reservation)’은 여러 곳에 있는데, ‘First Nation’으로 적어 놓는다. 특별한 용무가 없는 외부인들의 ‘인디언 보호구역’ 방문은 거의 없다. 낯선 이들이 관광지로 개발되지 않은 보호구역을 찾았다가 “여기 왜 들어왔느냐”고 추궁당하기도 한다.


심프크(Simpcw)족인 타일러의 초대를 받아 ‘던 크릭 부화장’에서 차로 10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한 ‘인디언 보호구역’ 내에 있는 그의 집으로 향하는 길에는 말과 소, 양을 키우는 목장들이 눈에 띈다.


타일러를 비롯한 미국·캐나다 원주민들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자신이 발견한 땅을 ‘인도(India)’로 오인해 오늘날 우리를 ‘인디언(Indian people)’으로 불리게 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면서 “우리는 이 땅의 원주민(First Nation People)”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심프크족 원주민 타일러.

비포장도로 인근 숲 속에 있는 타일러의 집은 초라했다. 집 밖은 물론 내부도 어지럽게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밝은 표정으로 반기는 타일러 앞에서 내색하지는 않았다. 살림 형편이 넉넉해 보이지 않았는데, 75인치가 넘어 보이는 대형TV가 거실에 있었다. 브랜드는 ‘삼성’이었다.


정식 결혼을 하지 않은 타일러의 집에는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의붓딸 레인보우(Rainbow, 8)와 애완견이 함께 있었다.. 레인보우의 엄마 달시(Darcy)는 베리어 타운에 따로 살고 있다는데,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타일러의 아버지 헨리(Henry)와 어머니 지나(Gina), 남동생 1명도 보호구역에 따로 거주한다. 운전기사인 형 에런(Aaron)은 보호구역이 아닌 콜로나 타운(Colona Town)에 거주하고, 쌍둥이 친누나 2명은 교통사고로 동시에 사망했다고 한다.


타일러는 “보호구역 내에 거주하는 심프크족은 700명 정도”라면서 “정부의 지원은 3개월에 한 번씩 주는 푸드 바스켓(Food basket)이 전부”라고 말했다.


보호구역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집 외부에 심프크족을 알리는 표시가 있다.

작년 5월, 타일러의 마을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캠룹스(Kamloops)의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에서 215구의 유해가 발견돼 원주민 사회는 물론 캐나다 국민 전체가 크게 분노한 일이 있다. 캐나다 정부가 1880년부터 약 100년간 원주민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키기 위해 카톨릭 교회에 운영을 맡긴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가한 폭력과 학대 참상이 드러나면서 캐나다 총리와 교황이 사과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과거 캐나다 교회가 기숙학교를 운영하면서 원주민 어린이들을 학대한 잘못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오는 6월 24일부터 29일까지 캐나다 방문을 예정하고 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실행 여부는 미지수다.


캠룹스 사건에 대해 타일러는 “부족의 연세가 많은 어른들로부터 이미 들었던 얘기였는데, 공공연하게 다 알고 있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이라며 “진실이 세상에 드러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죄를 인정하고 있지만, 이미 당사자들이 사망했기에 진정한 사과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타일러에 따르면 보호구역 내에 거주하는 원주민에게는 낚시를 비롯해 고기를 잡는 어업행위와 동물 사냥 등은 별도의 면허 없이 1년 내내 가능한 특권이다. 원주민이라도 보호구역이 아닌 곳에 거주하면 이 귄리는 박탈된다. 푸드 바스켓도 못 받는다.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이유에 대해 타일러는 “경제적인 이유”라면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렌탈로 얻어 세를 내고 있다. 밴드(Band, 원주민 조합)에서 집을 지어준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원주민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경우는 많지 않다. 연어 부화장에서 일하는 타일러는 정규직이어서 직장에 만족해하고 있다. 목공아트를 즐기는 그는 “취미를 마음껏 살릴 수 있는 목공방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타일러의 집을 방문하면서 담배와 KF94마스크를 선물로 준비해 갔는데, 헤어질 때 자신이 딴 차가버섯을 건넨다, 거절해도 막무가내로 주는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결국 받았다.


<이정성 미주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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