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에코저널=서울】눌노천을 지나고 율곡수목원 입구를 지나면 율곡습지공원이 나온다. 율곡습지공원은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버려져 있던 습지(濕地)를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생태공원(生態公園)으로 만든 곳이다.
봄이면 유채꽃이 화사하고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하늘하늘 거린다. 율곡습지공원은 평화누리길 8코스의 종점이며, 9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임진각평화누리공원까지 생태탐방로도 조성되어 있어 도보여행 코스로도 좋다.
공원의 소망광장에는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는 솟대와 장승, 소원을 빌어주는 돌탑, 부부화합과 다산을 상징하는 남근석(男根石)과 항아리 탑이 광장을 메운다.
저수지에는 연(蓮)과 애기부들 등 수생식물들은 내년의 여름을 기다리며 겨울 동안 습지를 지킨다. 율곡(栗谷)이라는 이름답게 밤나무가 계절에 맞게 나목(裸木)으로 숲을 이뤘다. 율곡은 아버지 고향이며, 성장한 곳으로 이이(李珥, 1536∼1584)의 아호(雅號)가 됐다.
습지공원에서 산마루로 오르면 화석정이다. 화석정(花石亭)은 임진강가 벼랑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정자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겹처마의 초익공(初翼工) 형태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원래 고려 말 대유학자인 길재(吉再)의 유지(遺址)였던 자리라고 전해지나 자세한 문헌기록은 없다. 그후 1443년(세종 25) 율곡 이이(李珥)의 5대 조부인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이 세운 것을 1478년(성종 9) 율곡의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보수하고 몽암(夢庵)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이이(李珥)가 다시 중수해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는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화석정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80여 년 간 터만 남아 있다가 1673(현종 14) 후손들이 복원했으나, 한국전쟁 때도 다시 전소됐다. 현재의 정자는 1966년 파주의 유림들이 다시 복원했고, 건물의 내부에는 이이가 8세 때 지었다는 ‘화석정 팔세부시(八歲賦詩)’ 편액이 걸려 있다.
율곡은 임진나루에 있는 화석정에 틈이 날 때마다 들기름으로 정자 마루와 기둥을 닦도록 하고, 임종 때 “어려움이 닥치면 열어보라”며 밀봉한 편지를 남겼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갈 때 어려움이 닥치자, 수행한 이항복이 봉서(封書)를 열어보니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고 쓰여 있어 불을 지르니 기름이 잘 먹은 화석정에 불길이 치솟자 임진나루가 대낮같이 밝아져서 선조 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화석정 아래로는 철조망이 촘촘해 밑으로 내려 갈 수 없지만 그 밑으로 임진나루가 있다. 임진나루는 장단나루와 함께 고대부터 한반도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특히 조선이 도읍지를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임진나루는 한양 북방의 군사적 요새로 주목됐다. 주변 강안이 모두 수직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사이로 좁은 외길만 남쪽으로 연결돼 천혜의 요새를 이루기 때문이다.
조선 태종은 임진나루를 지나면서 조선 최초의 거북선들이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임진나루에 본격적인 방어시설이 설치된 것은 영조(1755년) 때 임진나루에 ‘임진진’이라는 군진을 설치했고, 그 주둔지로 나루 안쪽 협곡을 가로지르는 차단성이란 성벽을 쌓았을 때부터다. 차단성은 험준한 절벽으로 둘러막힌 교통의 요지에 간단히 성벽을 쌓아 만든 성이다.
임진나루는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명승지였다. 조선시대 시인, 관료, 중국 사신 등이 이곳을 지나며 그 경치에 감탄해 남긴 시문도 다수가 전해온다. 임진나루는 일제강점기를 지나 1950년 무렵까지도 비교적 원래 모습을 유지했으나, 1953년경 한국전쟁 때 완전 폐허가 된 채 민간인이 출입할 수 없는 군사지역이 됐다. 단 한 장의 사진 자료도 없이, 인근 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 그 모습이 희미하게 전해져 왔다.
화석정 시 ‘팔세부시(八歲賦詩)’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林亭秋已晩 임정추기만)
시인의 시정은 그지없구나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멀리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遠水連天碧 원수연천벽)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을 향해 붉구나
(霜楓向日紅 상풍향일홍)
산에는 둥근 달이 솟아오르고
(山吐孤輪月 산토고륜월)
강은 멀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머금었네
(江含萬里風 강함만리풍)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塞鴻何處去 새홍하처거)
울고 가는 소리 저녁구름 속으로 사라지네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