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파평윤씨 시조 태어난 ‘파평용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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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파평윤씨 시조 태어난 ‘파평용연’ 한탄강과 임진강(30)  
  • 기사등록 2024-01-14 09:01:43
  • 기사수정 2024-01-14 11: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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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파주시(坡州市)는 대한민국 경기도의 북서부에 위치한다. 서북쪽으로 군사분계선을 경계로 북한의 개성시와 장풍군과 접한다. 휴전 협정이 조인된 판문점이 있으며, 통일로·자유로 등의 도로가 있다. 

 

파주시 지도.

파주시 남서쪽으로는 한강을 경계로 김포시가 있고, 남쪽으로는 고양시, 동쪽으로는 양주시, 동북쪽으로는 연천군과 경계를 이룬다. 

 

파주시는 한국전쟁 이후 의정부·양주와 함께, 최전방의 군사도시로, 수도권 북부지역의 군사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1996년 파주군에서 파주시로 승격해 4읍 9면 7동을 관할하고 있다. 

 

파평면 장파리.

적성면 자장리를 출발한 발길은 다시 파평면 장파리로 접어든다. 장파리(長坡里)는 마을 서쪽에 임진강(臨津江)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다. 동쪽의 낮은 구릉지를 제외하면, 마을에 전체적으로 농경지가 조성돼 있다. 자연마을로는 도장골, 버선거리, 봉우재, 붉은재, 송굿말, 안골, 양능굴, 양역골, 여음포, 장마루, 적성말, 주막거리, 천석굴 등이 있다. 지형상으로 임진강과 접해 있어 옛날에는 교통의 요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파평면은 지형이 험해 ‘바회베리마을’이라 했다. ‘바회베리’는 바위와 벼랑의 땅을 일컫는 순수 우리말이며, 이를 이두문자로 바꿔 파해평리(坡害平吏)라고 적었다. 후에 ‘리(吏)’를 ‘사(史)’로 잘못 적어 ‘파해평사’로 조선시대까지 부르다가 파해평사 마을을 두 글자로 줄여 파평(坡平)이라 했다는 이야기다. 

 

파평면 행정복지센터.

파주라는 이름도 1459년 세조에 의해 목으로 승격되면서 파주(파평)의 옛 지명 파해평사(坡害平史)의 파(坡)와 고을이라는 뜻의 주(州)자를 합해 제정됐다. 파주를 언급한 가장 오래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원래 백제의 땅이었으나, 475년 고구려가 파주를 차지함으로써 고구려의 땅이 됐다가 그 뒤 진흥왕 때 신라로 넘어갔다. 1170년 고려 때는 ‘정중부의 무신의 난’이 바로 옛 장단군 지역에서 일어났다. 

 

통일의 관문 시민중심의 파주.

임진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오면 눌노천이란 작은 하천이 임진강과 합류한다. 눌노천은 파주시 법원읍 직천리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흐르다 중류지역에서 서쪽으로 흘러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지방하천이다. 유역 상류부에는 파평윤씨의 시조가 태어나 ‘윤씨연못’으로도 불리는 ‘파평용연’이 있다. 하천 중하류부를 따라 367번 지방도로가 있으며, 임진강 합류지점에는 37번 국도가 하천을 가로지른다. 눌노천에는 파주 사람들만 알고 있다는 유명한 벚꽃로드 ‘눌노천 벚꽃길’이 있다. 

 

눌노천 지도.

파평용연(坡平龍淵)은 파평윤씨의 시조 윤신달이 태어난 곳으로 파평윤씨의 성지(聖地)라고 할 수 있다. 윤신달(尹莘達, 893년∼973년)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을 도와 벽상삼한익찬2등공신(壁上三韓翊贊二等功臣)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에 이르렀다. 943년 혜종(惠宗)이 즉위하자 동경대도독으로 부임해 30년간 재임하다가 81세에 임지에서 서거했다. 묘는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 구봉산 아래 있다. 

 

파평용연.(출처 한국관광공사)

파평용연은 태고부터 지하수가 솟아나는 천연 연못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893년(진성왕 7) 음력 8월 15일 운무가 자욱한 용연에 옥함이 떠 있는 것을 보고 근처에 사는 윤온이라는 할머니가 거두어 열어보니 옥동자가 들어 있었다. 그는 오색찬란한 깃털에 쌓여 있었고, 양 어깨에는 해와 달을 상징하는 붉은 점과 좌우 양 겨드랑이에는 81개의 잉어비늘이 있었다. 발바닥에는 북두칠성 형상인 7개의 흑점이 있었다고 한다. 

 

이 연못에는 여름철 희귀식물인 노란 ‘개연꽃’이 자생하고 있다. 인근에 윤씨 관련 유적지가 많은데 파평산(坡平山, 496m) 정상에는 시조 윤신달이 말을 훈련하던 치마대(馳馬臺)가 있고, 그의 5대손인 윤관장군(尹瓘將軍)이 휴양과 시문을 즐기던 웅담리 상서대가 있다. 

 

윤관장군 묘역.(2015년 8월)

광탄면 분수리에는 윤관장군의 묘가 있다. 파평윤씨는 잉어를 먹지 않는다고 한다. 시조인 윤신달이 잉어가 환생했다는 설과 윤관(尹瓘)이 여진 정벌 때 잉어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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