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비운의 왕 잠든 ‘신라경순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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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발길은 가까이에 있는 경순왕릉으로 이동한다. 경순왕(敬順王)은 신라 제56대 왕(927∼935 재위)이며, 마지막 왕인 비운의 왕으로 연천군 장남면 고량포리 휴전선 남방한계선 철책 아래에 영면(永眠)해 있다. 

 

신라경순왕릉 입구.

경순왕은 신라 제46대 문성왕의 6대손이며, 이찬 효종(孝宗)의 아들이다. 이름은 김부(金傅)로 927년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은 경애왕이 시해되고, 견훤의 비호를 받으며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다. 

 

경순왕릉.

경순왕은 931년 왕건을 만난다. 견훤은 성난 맹수 같은데, 왕건은 부드럽고 법도가 있는 사람으로 느낀다. 견훤의 횡포에 질린 신라인들은 왕건의 나긋나긋한 말에 호감을 갖는다. 궁예를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왕건은 지방 호족들의 사위가 되어 주변을 관리한다.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지방의 분열로 국권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경순왕은 “전쟁으로 인해 백성을 더 이상 다치게 할 수는 없다”며 일부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왕건에게 항복한다. 

 

용문산 은행나무.(2020년 2월) 

큰아들 마의태자는 “나라의 존망에는 반드시 천명이 있으니 힘을 다하지 않고 천년 사직을 가벼이 남에게 넘겨줄 수 없다”며 항복을 극구 반대했으나, 경순왕은 국서(國書)를 왕건에게 보내 항복하고 재위 9년 만에 왕위에서 물러났다. 과연 최치원의 예언인 “계림(신라)은 고엽(枯葉)이요, 송악(고려)은 청송(靑松)”이라 했던 말이 맞아 떨어진 것인가? 마의태자는 통곡하며 용문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경순왕릉.

경순왕은 왕건으로부터 정승공(正承公)에 봉해지며 왕건의 딸(낙랑공주)과 다시 혼인하고 녹1천 석과 함께 경주를 식읍지로 받는다. 항복한 지 43년 만인 978년(고려 경종 3)에 세상을 떠나 경순(敬順)이란 시호를 받고 이곳에 묻혔다. 행방을 모르다가 조선 영조 때 김성운 등이 발견한 비에서 “시호 경순왕을 왕의 예우로 장단 옛 고을의 남쪽 8리에 장사지내다(諡敬順以王禮葬于長湍古府南八里)”라는 명문 때문에 800여년 만에 묘가 밝혀졌다.

 

경순왕릉비.

지금의 능에 세워진 ‘신라 경순왕의 능(新羅敬順王之陵)’ 비는 1747년(조선 영조 23)에 세워져 있어 능의 석조물도 이때 조성된 것 같다. 능(陵)이 소박하긴 하나 신라 왕릉에는 없는 곡장이 봉분을 감싸고 있다. 봉분의 망주석과 장명등 등 석물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 같고, 비문(碑文)은 그동안 방치돼 마모가 심해 판독이 거의 불가능하다. 1975년 사적으로 지정됐지만, 패망한 나라의 왕의 모습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할 수밖에 없는 남방한계선 철조망 아래 망국의 한을 안은 채 쓸쓸하게 누워있다. 

 

1930년대 고량포구.

경순왕릉이 있는 고량포구는 개성에서 자전거로 1시간 정도 밖에 안 되는 곳으로, 한국전쟁 전까지는 한양(서울)과 개성의 물자가 교류되는 임진강의 최대 교역항이었다. 당시 경기도 연천, 강원도 철원, 황해도 금천 등 인근지역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의 집산지였다. 상권이 왕성할 때는 화신백화점 분점이 있을 정도로 대규모 상업지역이었다. 그 화려했던 고량포구도 파주 적성면과 연천 장남면을 잇는 장남교가 개통되면서 흔적 없이 사라졌다.

 

장남교와 감악산.(2017년 2월) 다시 장남교를 건너 화석정 지나 문산읍 임진리 임진강으로 나간다. 임진리(臨津里)는 옛날 임진나루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산읍 지도.

문산읍(汶山邑)은 원래 파주목 칠정면(七井面)으로 기록돼 있었으나 1910년에 임진강의 이름을 따서 임진면(臨津面)으로 개칭됐다. 1973년에 임진면이 읍으로 승격되면서 면사무소가 위치한 문산의 이름을 따서 문산읍(汶山邑)이 됐다. 1996년 파주군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현재는 파주시 문산읍이다. 

 

개성 송악산.

임진강 건너 동쪽으로는 개성의 송악산이 오늘 따라 선명하다. 송악산(松嶽山, 489m)은 고려의 도읍인 송도(松都)의 진산으로 송악이라는 이름은 소나무를 심어 ‘그 명(名)이 체(體)를 표현한다’는 풍수사상에서 유래한다. 산 전체가 주로 화강암의 큰 바위로 되어 있으며, 기암괴석·활엽수림의 조화가 뛰어나다고 한다. 

 

송악산(松嶽山)은 곡령(鵠嶺)·문숭산(文崧山)·부소갑(扶蘇岬)이라고도 불리고, 경기 5악 중의 하나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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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1-27 08: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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