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옛 왕조 무상함 새긴 ‘잠두절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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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당포성을 나와 평화누리길 11코스를 따라 숭의전으로 이동한다. 숭의전은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 임진강변 절벽 위에 있다. 

 

숭의전 천수문(삼문).

숭의전은 조선 개국 후 1397년(태조6년)에 태조의 명으로 묘(廟)를 세우고 1399년(정종원년)에는 고려 태조 외 7왕을 제사지내도록 했다. 문종 때 중건해 숭의전(崇義殿)이란 전호(殿號)를 내리고, 고려왕조 8왕 중 태조, 현종, 문종, 원종 4위만 봄·가을로 향축을 보내어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숭의전 가는 길에서.

문종 1년(1451년)에는 이름을 바꾸어 공주에서 살던 고려 현종의 후손이 이웃사람들과 시비로 왕(王) 씨 성(姓)을 숨기고 산다는 이유로 고발을 당했는데, 오히려 왕순례(王循禮)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3품관직과 토지와 노비를 지급해 숭의전에서 대대로 제향을 받들도록 했다. 신숭겸, 정몽주 등 고려 충신 16위를 배향했다. 숭의전이 있는 마전현(麻田縣)은 군(郡)으로 승격됐다. 

 

숭의전.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가 이를 계승했으며, 건물은 정전(正殿)과 후신청(後臣廳), 전사청(典祀廳), 수복사(守僕司) 등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모두 소실됐던 것을 1973년 왕 씨 후손들이 정전을 복구했다. 

 

고려왕조 위패.

국비와 지방보조로 1975∼1976년에는 부속건물인 이안청(移安廳), 배신청(陪臣廳), 삼문(三門)을 원래의 위치에 복원했다고 한다. 복원하기 전까지는 터만 남아 있어 숭의전지(崇義殿址)라고 불렀다.

 

배신청.

배신청 16위패.

숭의전 초기에는 개성에 있던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동상을 옮겨와 제사를 모셨으나, 세종 때에 주자가례에 따른 제사법이 바뀌어 동상과 초상화 대신 위패로 바뀌어 개성의 현릉(왕건의 릉) 곁에 매장했다가 지금은 평양의 중앙역사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고 한다. 

 

잠두절애 시.

숭의전 앞으로 흐르는 임진강변의 잠두봉 벼랑에 ‘잠두절애(蠶頭絶崖)’라는 시가 있다. 이 시는 1789년(정조13년) 마전군수였던 한문홍(韓文洪)이 숭의전 수리를 마치고 옛 왕조의 영화와 쇠락 속에 담긴 무상함을 담아 새겨둔 글이다. 

 

미산면 아미리의 가을.

미산면(嵋山面) 아미리(峨嵋里)에 있는 숭의전을 나와 평화누리길 10코스를 따라 임진강변 아미산 능선길로 접어든다. 지금 밟고 가는 푹신한 낙엽 밑에는 시대미상의 보루인 연천아미리보루(漣川峨嵋里堡壘)가 있을 법한데 보이지 않는다. 자연석으로 정상부를 원형으로 쌓았다. 가운데 부분에 함몰(陷沒)된 부분이 있으며, 붕괴 현상의 지속으로 석재(石材)들이 주변에 무너져 있다고 한다.

 

임진강 주상절리(구미리).

아미리를 지나면 연천군 백학면(百鶴面) 구미리다. 백학면(百鶴面)은 연천군의 서남쪽에 있으며, 21개 법정리 중 11개리는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약15㎞의 휴전선과 임진강을 접하는 전형적인 농촌 지역으로, 면 전체 가구의 4분의 1 정도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에 출입하며 농사를 짓고 있다. 

 

인삼밭(삼포).

구미리(九尾里)는 본래 적성현 북면 지역으로 임진강(臨津江)에 깊고 큰 구미소가 있어 ‘구미연리(龜尾淵里)’라 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연천군 백학면에 편입되면서 구미연리를 현재의 구미리로 개칭했다. 임진강 유역의 충적지가 발달돼 논농사가 활발하며 백학면에서 생산되는 쌀이 특산물로 유명하다. 이곳도 인삼으로 명성을 날렸던 개성이 가까워서 그런지 인삼을 재배하는 삼포(蔘圃)가 많이 보인다. 

 

임진강과 감악산.

멀리 감악산이 보이고 학곡리(鶴谷里)로 접어들자 서산의 해는 옆으로 길게 눕는다. 임진강은 푸른 빛을 띠며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에는 캠핑장이 한가롭게 보인다. 

 

당나귀.

어느 목장의 당나귀는 낯선 나그네의 침입에 처음에는 놀라다가 바로 진정을 찾는다. 주상절리가 있어서 언덕 밑으로 흐르는 강이란 뜻의 이곳 방언인 ‘더덜매’로 부르다가 임진강으로 이름이 바뀐 강변에는 우리의 삶과 애환을 바위에 담아 한 쌈 한 쌈 수(繡)놓는다. 

 

잠두절애(蠶頭絶崖) 시(詩)--이수(二首)

 

숭의전을 지은 지가 4백년이 되었는데

(麗組祠宮四百秋, 여조사궁사백추)

 

누구로 하여금 목석으로 새로 수리하게 하는고

(誰敎木石更新修, 수교목석갱신수)

 

강산이 어찌 흥망의 한을 알리요

(江山豈識興亡恨, 강산기식흥망한)

 

의구한 잠두봉은 푸른 강물 위에 떠있구나

(依舊蠶頭出碧流, 의구잠두출벽류)

 

지난 세월 만월추에 마음 슬퍼하거늘

(往歲傷心滿月秋, 왕세상심만월추)

 

지금은 이 고을 군수가 되어 묘궁을 수리하였네

(如今爲郡廟宮修, 여금위군묘궁수)

 

조선은 생석을 갖추어 고려왕들을 제사토록 하였으니

(聖朝更乞麗生石, 성조경걸려생석)

 

아마도 숭의전은 징파강(임진강의 별호)과 더불어 길이 이어지리라

(留與澄波萬古流, 유여징파만고류)

 

마전군수(麻田郡守) 한문홍(韓文洪)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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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4-01-06 08:3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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