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하안단구 위 고구려성곽 ‘연천은대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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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하안단구 위 고구려성곽 ‘연천은대리성’ 한탄강과 임진강(25)  
  • 기사등록 2023-12-30 06:08:13
  • 기사수정 2023-12-30 0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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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사적으로 지정된 ‘연천은대리성(漣川隱垈里城)’은 연천군 전곡읍에 있는 삼국시대의 고구려성곽이다. 한탄강과 차탄천의 합류지점에 형성된 하안단구 위에 축조된 성곽이다. 


은대리성 배치도.

합류 지점이 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루고 동쪽으로 가면서 점차 넓어지는 형태의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내성과 외성의 이중구조로 성곽의 전체 길이는 약 1005m다. 동서 400m, 남북 130m이다. 성 내부의 면적은 약 7천평 정도인데 일부는 경작지로 이용되고, 나머지 부분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성돼 있다.

 

은대리성 안.

성벽은 흙과 돌을 혼합해 쌓았는데 양쪽 기단부만 돌로 쌓았고 안쪽과 기단 윗부분은 흙을 다져 쌓았다. 현재 동쪽과 북쪽 성벽의 상당 부분이 훼손된 상태이지만, 성 내부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은대리성벽.

성의 남쪽과 북쪽은 한탄강에 접해 단애(斷崖)로 이뤄져 있어 동쪽 부분을 제외한 다른 방면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성 안에는 문지 3개소, 건물지 1개소, 치성 2개소가 확인됐고, 경작지에서 철기 조각과 백제의 것으로 보이는 토기 조각, 그리고 회식 연질(軟質)의 고구려 토기 조각이 발견됐다.

 

삼형제바위.

은대리성 서쪽 끝부분에 있는 전망대에서 한탄강과 차탄천이 만나는 지점을 바라보면 삼형제바위가 보인다. 삼형제바위는 아들 삼형제를 둔 과부의 슬픈 전설이 있다. “물에 빠진 막내를 구하기 위해 두 형이 물에 뛰어들었으나 삼형제 모두 익사한다. 아들을 잃은 과부가 울부짖은 지 석 달 만에 삼형제 형상이 강 가운데로 나타나더니 갑자기 바위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로 해마다 익사자가 발생해 큰 바위에 제단을 만들어 제사를 지내온다고 한다.”

 

한탄강·차탄천 합류지점.

차탄천(車灘川)은 철원 금학산에서 발원해 37km를 남북으로 흐르는 하천이며, 순우리말로 ‘수레여울’이다. 이방원이 조선 건국을 반대하며 연천으로 낙향한 친구 이양소를 만나기 위해 수레를 타고 오던 중, 수레가 빠진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판상절리.

차탄천은 연천 은대리성 아래로 흘러 한탄강과 합류한다. 차탄천에서는 다른 하천에서 볼 수 없는 현무암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그 중 하류구간의 주상절리와 은대리 습곡구조 및 판상절리(板狀節理) 등은 한탄강세계지질공원의 대표적인 지질명소다.

 

차탄천을 건너 별도로 없는 길을 헤쳐나간다. 어느 공장 폐수처리장에서는 악취가 진동한다. 

 

압축된 폐차.

폐차장에서는 아무리 비싼 고급승용차라도 압축기로 눌러버린 한 조각의 철판이 됐다. 지금 지나는 이곳은 주변의 건물과 환경으로 보아 연천군 전곡읍의 공업지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논.

아직 벼 베기가 안 된 논을 농익어 고개 숙인 벼 포기 사이를 가로지르며 나아간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 숙인다.”는 교훈을 말없이 보여준다. 논을 지나 몇 번인가 해매이다가 길이 막히고 갑자기 절벽이 나타난다. 발끝이라도 거칠 수 있는 곳을 찾아 있는 힘을 다해 위에 올라서니 37호 국도(거창∼파주)의 화진교로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 소하천을 연결하는 교량이다. 

 

화진교.

화진교를 건너 다시 한탄강변으로 찾아가면 한탄강의 여정이 끝나고 임진강과 만나는 합수머리 도감포다. 전곡읍내에서 약 6km 떨어진 도감포는 강 전체가 현무암 협곡으로 한탄강에서 드물게 넓은 모래사장이 형성돼 있다. 별도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지 않았지만 잔잔한 수면에 손을 타지 않은 자연의 정취가 고스란히 투영된다. 강으로 내려서는 길목인 ‘합수머리’ 마을은 유난히 볕이 따사롭다. 

 

한탄강 물비늘(윤슬).

도감포(都監浦)는 남계리의 남쪽,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하는 곳에 있던 포구마을로 옛 지리지나 여러 문헌에는, 이곳 합수머리에서 임진강을 따라 전곡읍 마포리 지역까지 넓게 펼쳐진 꽃답벌과 미산면 동이리 썩은소 앞의 강폭이 좁아지는 지점까지의 지형이 항아리의 형태와 닮았다고 하여 ‘독안이(壺內)’ 또는 ‘호구협(壺口峽)’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한탄강(좌)과 임진강(우)의 합류지점 도감포.

도감포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100여 호가 살던 작은 포구였지만, 역할은 작지 않았다. 한강하구 강화에서 배에 싣고 온 새우젓과 소금이 도감포를 거쳐 인근 철원, 포천, 동두천으로 공급됐다. 빼어난 경치에도 불구하고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오랫동안 민통선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도감포는 삼팔선 바로 이북이고, 한국전쟁의 격전지로 중공군을 포함한 10만 적군을 막아내 전곡과 연천이 수복지구가 될 수 있었다.

 

도감포에서.

도감포의 주상절리.

전쟁 후에도 도감포는 1988년까지 민통선으로 묶여 외지인이 자유롭게 드나들지 못했다. 합수머리는 수량이 풍부해 물고기도 많이 잡히던 곳이었는데, 임진강 수역의 북한에는 황강댐, 남한에는 군남댐이 들어서는 바람에 수량이 대폭 줄었다. 그래도 도감포 맞은편 바위 절벽은 한탄강 주상절리가 더 돋보인다. 성냥갑에 빼곡하게 박힌 성냥처럼 다각형 돌기둥이 수직 절벽에 촘촘히 박혀 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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