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선조가 내린 ‘송균절조 수월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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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한탄강을 따라 연천 땅으로 들어오면 세월을 낚는 강태공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잡히는 어종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쏘가리를 낚는다고 한다. 


한탄강 낚시.

쏘가리는 민물에 서식하는 농어과 어종으로 종류가 많지 않으며, 맛잉어라고도 한다. 한자로는 ‘궐어(鱖魚)’, ‘금린어(錦鱗魚)’라고 하는데, ‘재물보(才物譜)’에는 살맛이 돼지고기처럼 좋다고 해서 ‘수돈(水豚)’이라고도 했다. 양식은 힘든 반면 수요가 늘어, 무분별한 어획으로 최근에는 멸종위기를 맞고 있다. 


영평천과 한탄강이 만나는 아우라지.

쓸데없는 사족(蛇足)을 달며 도착한 곳은 ‘아우라지배개용암’이 있는 곳이다. 아우라지는 ‘두 갈래 이상의 물이 한데 모이는 물목’을 말하는데, 이곳은 영평천이 흘러들어 한탄강과 만나는 곳이다. 

 

영평천(永平川)은 길이 약40km로 이동면(二東面)에 있는 자등현(自等峴)과 광덕현(廣德峴)에서 발원해 연천군 청산면(靑山面) 궁평리(宮平里)에서 한탄강으로 흘러든다. 영평천에는 영평팔경의 대부분이 모여 있어 경승지로도 유명하다. 


배개용암.

‘배개용암(Pillow Lava)’은 신생대 제4기 추가령 구조선(構造線) 또는 북한의 평강 오리산에서 분출한 현무암질(玄武巖質) 용암이 옛 한탄강 유로를 따라 흐르다가 영평천과 한탄강이 만나는 지점(아우라지)에서 급랭해 형성된다. ‘침상용암(枕狀熔岩)’이라고도 불리는 베개용암은 물속에서 뿜어져 나온 용암이 물과 만나 냉각되는 과정에서 둥글둥글한 베개 모양으로 굳은 형태를 말한다.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2013년 2월)됐다. 


좌상바위.

배개용암을 지나 궁신교 밑 우측으로 굽은 강을 따라 돌아서니 좌상바위가 나온다. ‘좌상바위’는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좌측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는 전곡읍 신답리에 위치한다. 좌상바위는 한탄강 주변에 약 60m 높이의 불뚝 솟아있는 바위로 중생대 백악기 말에 화산활동으로 분출한 용암이 굳으면서 형성된 현무암 바위산으로 재질은 제주도의 현무암과 다르게 응회암질 퇴적 현무암이다.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고, 세로 방향으로 나 있는 띠 모양의 굵은 세로줄은 오랜 시간 땅 밖으로 드러나 있으면서 빗물과 바람에 의한 풍화작용으로 생긴 줄이다. 좌상바위 부근은 고생대 미산층과 중생대 화강암, 응회암 그리고 신생대 제4기 현무암 등 여러 지질시대의 암석과 지질구조 등을 관찰할 수 있는 중요한 곳이다. ‘신생대 제4기’는 약 6500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시대를 일컫는다. 

 

바쁘게 좌상바위를 둘러보고 전곡읍 신답리와 청산면 궁평리를 잇는 궁신교를 건너 버스를 이용해 창옥병으로 향한다. 창옥병(蒼玉屛)은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영평천변에 있는 벼랑으로 영평8경 중 제3경이다. 창옥병의 폭이 수마정이요,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굴곡과 고저가 있다. 암혈이 있는가 하면 갖가지 형태로 돌출한 바위들이 장관이다. 이 바위에 암각문이 무려 11점이나 새겨져 있어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 나서는 재미도 쏠쏠하다. 


박순 신도비.

창옥병은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낸 박순(朴淳, 1523∼1589)이 즐겨 찾던 경승지다. 15년간 영의정에 재직하던 그가 영평으로 거처를 옮긴 때는 1586년(선조 19) 8월로 이이(李珥)가 탄핵되었을 때 그를 옹호하다가 도리어 탄핵을 받았다. 이때 선조는 여러 차례 만류했지만, 스스로 물러나 지금의 옥병동에 거주하면서 창옥병 주변의 경치가 빼어난 8개소에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지었다. 


박순의 ‘수경대’.

대표적인 암각문(巖刻文)은 사암 박순(朴淳)의 ‘제이양정벽(第二養亭碧)’이라는 글 중 수경대(水鏡臺)라는 시를 1700년경에 김수증(金壽增)이라는 사람이 바위에 새긴 것이다. 그러나 세월의 풍파에 많이 닳았다.

 

골짜기 새소리 간간이 들리는데

(谷鳥時時聞一箇 곡조시시문일개)

 

쓸쓸한 침상에는 서책들만 나딩구네

(匡牀寂寂散群書 광상적적산군서)

 

안타깝도다 백학대 앞 흐르는 물이

(每憐白鶴臺前水 매린백학대전수)

 

산문을 겨우 나오면 흙탕물 될 것이니

(纔出山門便帶淤 재출산문변대어)


‘송균절조 수월정신’. 한석봉 글씨.

이곳에는 선조가 박순에게 내린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절조에 맑은 물과 달 같은 정신(松筠節操 水月精神 송균절조 수월정신)’이라는 뜻의 윤음(綸音)이 석봉 한호(石峯 韓濩, 1543∼1605)가 쓴 글을 신이(辛夷)라는 사람이 바위에 새겨 놓았다. 어느 구멍 뚫린 바위 옆에는 와준(窪樽)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바위에 뚫린 웅덩이 술통’이라는 뜻이다. 

 

반석 위로 맑고 푸른 영평천이 흐르고 멀리 보이는 옥병교를 뒤로하고 서둘러 창옥병을 빠져나오면 옥병서원이 있다. 


옥병서원.

옥병서원(玉屛書院)은 1658년(효종 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박순(朴淳)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해 위패를 모셨다. 1698년(숙종 24)에 이의건(李義健)과 김수항(金壽恒)을 추가 배향했으며, 1713년에 ‘옥병(玉屛)’이라고 사액됐다. 그러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됐으나, 1926년에 김성대(金聲大)·이화보(李和甫)·윤봉양(尹鳳陽)을 추가 배향했고, 1980년에 복원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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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2-16 09: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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