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저널=충칭】중국 쓰촨성(四川省) 성도(省都) 청두(成都)의 청두동역(城都東驛)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충칭시(重庆市, 중경시) 충칭북역(重庆北驛)까지는 고속열차로 2시간 정도 소요됐다.
충칭북역 역사.
충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충칭대한민국임시정부청사(重慶大韓民國臨時政府廳舍)’다. 충칭 시내 도심은 매우 가파른 독특한 지형으로 유명하다. 산 위에 지어진 도시라서 그렇다. 중국판 구글맵인 고덕지도(高德地图, Gaode Map) 도보걷기를 활용해 임시정부 청사를 찾았다.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어 걷기가 쉽지 않은데, 계단도 많아서 발목에 무리가 왔다.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진열관’ 도로표지판.
골목입구 안내 표지판.
도로 위에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진열관’이라는 한글 표지판이 보였다. 표지판 아래 골목 입구에는 별도로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지진열관’이라는 안내문을 세워놨다.
임시정부 청사 입구의 충칭치과의원.
표지판 우측에 있는 충칭치과의원(重庆牙科医院)을 끼고 들어가는 골목에서 30m 정도 걸어가면 마주보이는 건물이 임시정부 청사다.
한글로 '대한민국림시정부'라고 적혀 있다.정문 위에는 우측부터 읽는 한글과 중문, 영문으로 ‘대한민국림시정부’, ‘大韓民國臨時政府’,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라고 적혀 있다. 정문 위 좌측에는 ‘연화지 38’이라는 주소가 적혀 있다.
정문 좌측 벽면에 안내문이 붙어 있다.정문 좌측 벽에는 ‘중경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 구지’라는 제목의 임시정부 청사에 대해 설명한 안내문이 있다. 아래는 안내문 전문이다.
이곳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45년 1월부터 11월까지 사용한 마지막 청사이다.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해에서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현 노신공원) 의거를 계기로 일본군의 압박이 심해지자 이를 피해서 항주·가흥·진강·장사·광주·유주·기강 등지를 거쳐 1940년 중경에 도착하였다.
중경 임시정부는 양류가·석판가·오사야 항 등으로 옮겨 다니다 마지막에 이곳 유증 구 칠성강 연화지 38호에 정착하였다. 이 연화지 청사에서 임시정부는 광복을 맞이하였다.
이 청사는 대한민국 독립기념관과 중경시의 협의하에 1995년 8월 11일 복원하였고, 2000년 9월 17일 한국광복군 창설 60주년을 맞아 훼손된 부분을 보수하고, 전시를 확장해 역사에 길이 남을 유적지로 단장하였다.
1945년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기념 사진.
환국 기념사진을 촬영한 임시정부 장소의 현재 모습.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1945년 당시 일제의 항복 소식을 접한 임시정부 요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임시정부 청사에서 마지막 기념사진을 촬영한 장소가 보였다.
계단을 오르기 전 우측 전시공간에서는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및 중국 항일전쟁 승리 80주년 기념 기획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중인 한중 여성의 빛(世界反法西斯战争中的中韩巾帼之光)’이라는 다소 쉽지 않게 번역된 제목을 내걸었다.
사진전 개최 취지에 대해 “20세기 전반, 중국과 조선반도 인민이 일본 파시즘에 공동으로 저항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전투 우정을 쌓았다. 가녀린 여성의 모습은 전쟁터에서 나타났고, 그녀들은 순수한 애국 열정과 확고하고 사심 없는 혁명 신념을 가졌다. 국난의 시기에 민족의 위기는 그녀들로 하여금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 80년 전의 항일 전장에 시선을 돌려, 그녀들이 어떻게 아름다운 청춘과 열정으로 조국의 존엄성을 수호했는지 기억하고, 그녀들의 강인하고 끈기 있는 민족 정신을 회고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전시공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와 중국 여성들의 항일 운동을 사진과 함께 설명했다. 사진전에 소개된 양국 여성은 모두 20명(동북항일연군 여전사 8명은 하나로 소개)이었다.
지오이만.
맨 처음 소개한 여성은 중국인 ‘지오이만(赵一曼)’이다. 그녀에 대해 “쓰촨성 이빈시에서 태어난 지오이만의 본명은 ‘리쿤타이’, 일명은 ‘리수닝’, ‘리이차오’다. 1926년 중국 공산당에 가입했고, 같은해 11월 우한 중앙군사정치학교에 입학했다. 1936년 8월 2일, 지오이만은 주허현(현재의 헤이룽장성 상즈현)에서 일본군에 의해 살해됐다. 2014년 8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지오이만을 ‘제1차 저명한 항일 영렬’과 ‘영웅 집단 명부’로 공표했다”고 소개했다.
곽낙원 여사에 대해 소개하면서 전시된 백범 김구 가족 사진.
두 번째로 소개된 여성은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곽낙원(郭樂園) 여사다. “조선반도 황해도 재령 출신,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의 어머니로 1922년 상하이로 망명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항일투쟁을 정신적, 물질적으로 적극 지원했다. 1939년 곽낙원은 충칭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992년 곽낙원은 대한민국 애국장 포상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의 기념촬영.
1937년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 회원들의 기념사진.한국의 여성 독립운동가 정정화(鄭靖和) 여사의 “그분이 우리 가운데 말없이 앉아 계신 것만 해도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정신적으로도 큰 기둥이 되기에 충분하였다. 매섭고, 대범하고, 절제되고, 소박한 어른으로 존경과 공경을 받았다”는 곽낙원 여사에 대한 회고 내용도 전했다.
김순애 여사.
김규식 부주석의 아내 김순애 여사는 한국 여성 중 곽낙원 여사에 이어 두 번째로 소개됐다. 황해도 장연 출신의 김순애 여사는 1912년 중국으로 망명한 뒤 1919년 신한청년당에 입당했다.
대한애국부인회 회원들. 가운데가 김순애 여사.
김규식·김순애 결혼식. 1919년 1월 19일 상하이.김순애 여사는 상하이 대한애국부인회 회장, 대한적십자회 이사를 맡았다. 1920년 대한의용단을 조직했고, 1923년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했다. 1926년 임시정부 경제후원회 정회원을 지냈다. 1930년 상하이 한인여자청년동맹을 결성했고, 1943년 한인애국부인회 회장을 맡았다.
일본이 패망하자 거리에 나와 항전 승리를 축하하는 충칭시민들.
1945년 중국 정부가 환국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마련한 송년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을 환영하는 경축대회.중국 내 마지막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인 충칭 임시정부 청사는 중국 각지의 임시정부 청사 중 가장 규모가 크다. 1300㎡ 면적의 대지에 건축 면적 1770㎡로, 보존되고 있다. 회색 벽돌에 기와지붕 양식으로 건축한 5동의 건물이 있다.
주석실 안내.
충칭 임시정부 주석실.
국무위원 회의실.
방문객들이 관람 가능한 건물은 3동, 284㎡ 면적이다. 4호 건물 1층은 외빈 숙소와 주석 비서실, 2층은 유동열, 차리석, 최동오, 윤기섭 선생의 집무실로 사용됐던 곳이다. 건축물 뒷편에 방공호가 있다. 3호 건물 1층은 내무부 집무실, 2층은 재무부 집무실, 3층은 김구 주석과 김규식 부주석이 함께 사용한 '주석 판공실'과 국무위원 회의실로 복원했다.
1943년 6월 6일, 한국광복군 대원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전시관에서는 임시정부 내각과 각료들의 역할 등을 소개했다. ‘군무부’는 육·해·공군 군사행정을 비롯해 소속 군인과 군속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다. 소관부서인 총무과·군사과·군수과·군법과를 감독했고, 김원봉이 군무부장을 지휘했다.
‘선전부’는 각종 선전 지도업무를 맡았다. 총무과·선전과·자료과·선전위원회로 구성됐다. 선전부장은 정항섭이 맡았다.
‘문화부’는 교육·학술에 관한 업무를 담당했다. 학교·유학생 유학비 보조와 교육용 도서 편집·발행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최석순이 문화부장이다.
임시청사 외빈 접대실.5호 건물 1층은 원래 창고로 복원했으나, 기획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2층은 외빈 접대실로 복원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이곳에서 외국 관료와 각국 사절을 접대했다. 3층과 4층은 새롭게 증설한 건물로, 진열관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다.
1938년 4월, 조선민족혁명당에서 발간한 기관지 ‘조선민족전선’ 창간호.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충칭에서 발행한 독립신문.
1948년 충칭에서의 장제스(장제스) 중화민국 총통과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주석 김구.임시청사는 김구 주석을 비롯해 주요 요인들의 집무실 등을 복원 전시한다. ▲조선의용대 ▲초기독립군 ▲한국 광복군 ▲광복 및 환국 등으로 구분해 사진과 각종 자료도 전시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사인이 들어간 방명록.
전시관에는 2017년 12월 16일 방문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사인과 2019년 12월 1일 방문한 반기문 제 8대 UN 사무총장의 사인이 걸려 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 사인이 들어간 방명록. 문재인 대통령은 “대판민국 임시정부는 우리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정신입니다”라고 적었고, 반기문 사무총장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온갖 희생을 무릅 쓰고, 헌국하신 애국 지도자 여러분께 삼가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 조국의 발전을 굽어 살펴 주소서!”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