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신라 화랑, 왜구 막던 ‘신우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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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신라 화랑, 왜구 막던 ‘신우대 숲’ 태양, 파도와 함께 걷는 ‘해파랑길’(22)  
  • 기사등록 2024-04-27 10:21:27
  • 기사수정 2024-04-27 10: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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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울진군 근남면 산포리에 있는 망양정(望洋亭)은 고려시대에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해안가에 처음 세워졌다. 

 

망양정.

오랜 세월이 흘러 허물어졌으므로 조선시대인 1471년(성종 2) 평해군수 채신보(蔡申保)가 현종산(縣鍾山) 남쪽 기슭으로 이전했다. 이후 1517년(중종 12) 거센 비바람에 파손된 것을 1518년 중수했다. 1590년(선조 23) 평해군수 고경조(高敬祖)가 또 중수했으나, 허물어진 채로 오랫동안 방치됐다.

 

1854년(철종 5) 울진현령 신재원(申在元)이 이축할 것을 제안했으나, 여러 해 동안 재정을 마련하지 못해 추진하지 못하다가 1858년(철종 9)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군승(郡承) 임학영(林鶴英)과 함께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광복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주춧돌만 남은 것을 1958년 중건했으나, 다시 퇴락해 2005년 기존 정자를 완전 해체하고 새로 건립했다. 일설에는 관동팔경 중 두 곳이 평해지역에 집중돼 있어 망양정을 울진지역으로 옮겨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망양정에서 본 울진해변.

조선조 숙종은 망양정에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하시면서 ‘산골짜기들이 겹겹이 이어오다 탁 트이니/놀랍게도 거대한 파도가 하늘에 닿아 있네/저 바다가 장차 술로 변한다면/내 어찌 300잔만 마실 수 있으랴’라고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정조는 ‘태초의 기운이 아득히 바다에 풀어지니/뉘라서 이곳에 망양정을 알 수 있으리/흡사 문선왕이 공자의 집을 훑어보듯/종묘와 궁궐의 담장 하나하나 훑어보네’라고 노래한다.

 

왕피천 하구.

망양정과 가까운 곳에는 가보고 싶었던 천연석회암 동굴인 성류굴(聖留窟, 천연기념물 제155호)이 있지만, 왕피천 하구를 지나 연호정(蓮湖亭)으로 바로 이동한다. 울진군 서면 왕피리에서 발원해 근남면 수산리의 동해바다로 흐르는 왕피천은 옛날 실직국(悉直國)의 왕이 피난을 왔다고 해서 마을이름이 ‘왕피리’가 됐고,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을 ‘왕피천’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연호정.

울진읍 연지리에 있는 연호정은 자연호수인 연호(蓮湖)가 내려다보이는 소나무 숲 언덕 위에 있는 정자다. 1815년(순조15) 이 자리에 향원정(香遠亭)이라는 작은 누각을 세웠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퇴락하자 1922년 옛 동헌(東軒)의 객사 건물을 옮겨 세워 연호정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연호.

연호(蓮湖)는 원래 고씨(高氏)들이 살던 마을이었으나, 이 마을의 땅이 꺼져 늪이 됐다고 해 ‘고성 늪’으로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호수주변으로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을 조성했다. 

 

연지리 해변.

연호공원에서 울진읍 연지리 해변으로 나와 데나리항 쪽으로 향한다. 데나리항 부두에서는 젊은 청년들이 모여 뛰어내리기도 하면서 물장난으로 여름의 끝물을 즐긴다. 

 

데나리항 부두.

시설 규모로 봐서는 가끔 임시적으로 이용되는 어항 같다. 울진읍 온양리를 지나 죽변면 봉평리로 접어든다. 온양리는 충남 아산의 온양과, 봉평리는 강원도 평창의 봉평과 부르는 이름이 같아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수직상승 물놀이.

봉평리 앞바다에서는 ‘로켓추진 원리’를 이용해 만든 것 같은 공중부양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즉 물을 밑으로 쏘아서 발생하는 힘을 이용해 기구를 타고 공중으로 솟아나는 원리를 이용한 것 같다. 기구를 탄 두 남녀는 행여라도 떨어질까 봐 힘껏 껴안고 수직 상승한다. ‘올라가면 내려오는 것’이거늘 매사에 오르고 내릴 때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말고 즐기는 것이 인생이 사는 재미다.

 

향나무와 서낭당.

시외버스정류장을 나와 죽변항으로 들어서기 전인 후정리에는 500년이 넘은 향나무가 도로변에 서 있다. 향나무는 중부 이남을 비롯한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한다. 강한 향을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재료로 사용하고, 정원수나 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이 향나무는 밑에서 두 기둥으로 나온 이간수(二幹樹)로 나무높이 11m(가슴높이 지름 1.25m)와 10m(가슴높이 지름 0.94m)다. 

 

향나무 옆에는 성황당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사람들은 이 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천연기념물(제158호, 1964년 1월)로 지정·보호하고 있는데, 일설에는 울릉도에서 떠내려온 것으로 추정한다.

 

사과나무.

향나무 옆 이웃집의 사과나무도 볼을 붉게 물들이며 햇빛에 기댄다. 오후 햇살이 길게 늘어지는 죽변항에는 야간조업을 나가려는지 오징어 배들이 정박해 있다. 

 

죽변항의 오징어 어선.

옛날부터 다른 어족자원도 풍부했지만, 특히 오징어가 많이 잡혔다. 기후변화영향인지 오징어가 동해 대신 서해로 동선이 바뀌었다고도 한다. 최근에는 이것마저 보기 힘들어 오징어 잡기가 무척 힘들다고 한다. 

 

결명자.

죽변항을 지나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죽변등대 밑으로 난 해안 언덕길 입구에는 눈을 밝게 해준다는 결명자(決明子)가 야생에서 영글어 간다. 

 

신우대 숲길.

밀림을 이룬 등대언덕 신우대 숲은 신라시대 화랑들이 주둔해 왜구를 막던 곳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옛날에 용이 노닐면서 승천한 곳으로 여겨 ‘용추곶(龍湫串)으로도 불렀으며, 조선시대에는 가뭄이 오면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렸다고 전해 온다.

 

등대동산.

신우대 숲에서 해안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폭풍 속으로’ 드라마 세트장이 나온다. 대나무 숲 옆에는 ‘ㄱ’자 모양의 2층 기와집이 있는데, 극중에서 남자주인공이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하트해변.

해안 절벽에 자리 잡은 집은 동화 속에 나올 것 같은 그림 같은 집이다. 집 뒤쪽에는 빨간색 성당 세트가 함께 세워져 있었다는데 철거됐는지 흔적이 보이지 않고, 대신 세트장 아래로는 하트해변이 석양과 함께 펼쳐진다.

 

배롱나무꽃.

백암온천 길의 배롱나무는 어제보다 더 붉게 물들이며 작별인사를 한다. 못내 아쉬워 버스에서 내려 가로수 밑을 걸어도 보고, 벼이삭이 나온 논두렁도 밟아본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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