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6.25 한국전쟁이 남긴 휴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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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6.25 한국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던 때 한국군 대표는 북진통일과 중공군 대표를 휴전회담에서 철수시키려 했다. 한국은 이 계획이 수포(水泡)로 돌아간 뒤 1953년 5월 25일 이후 휴전회담 불참을 선언하고, 조인식에도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결국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울분을 느끼는 가운데 휴전협정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공산군 측 대표는 김일성(金日成)·남일(南日)·펑더화<팽덕회(彭德懷)>였고, 유엔군 측은 사령관 클라크(Clark,M.W.)와 해리슨이었다. 

 

민통선 철조망.

군사분계선의 길이는 동서로 총 155마일(248km)이다.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 하구에서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대강리 동해안에 이른다. 이 선상에 약 500~600m 간격으로 모두 1292개의 팻말이 있다. 남쪽을 향하는 696개는 남한, 북쪽을 향하는 596개는 북한이 각각 관리한다. 

 

옛 자유의 다리.

강화도 북쪽 연안부터 휴전선이 시작되는 임진강 하구까지의 한강 하류인 조강(祖江)은 공해(公海)에 준해 분류된다.

 

반구정.

걷기에 앞서 문산에 있는 ‘반구정(伴鷗亭)’에서 여정 끝까지 도반들의 무사도보(無事徒步)를 기원하는 고유제를 지냈다. 반구정은 조선 세종 때 명재상을 지낸 황희의 정자로 은퇴 후 ‘기러기와 함께 벗 삼아’ 지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임진강 하류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정자로 가는 길목에는 황희의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과 ‘영당’을 모신 곳도 있고, 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그러나 북을 향해 쳐진 철조망이 이내 답답증을 유발한다. 강원도 고성까지 가는 길에 이 철조망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총탄을 맞은 기관차.

임진강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니 임진강역이 나오고, 북으로 달리고 싶은 철마는 총탄에 맞은 자국을 안은 채 북을 향해 숨을 헐떡인다. 조선시대 때는 임진나루에서 배를 타고 북으로 갔건만, 지금은 끊어진 철교 교각만 남아 분단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

 

망향의 노래비.

망배단의 상석은 더 쓸쓸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 노래비에서는 애절한 목소리가 배어 나온다.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북녘 땅을 바라보다 씁쓸한 마음을 안고 ‘화석정’으로 간다.

 

화석정.

화석정은 율곡 이이가 임진왜란 때 도성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 선조를 위해 정자에 불을 질러 뱃길을 밝혀 주었다는 곳이다. 율곡은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출생했지만, 아버지의 고향은 이곳 ‘율곡리’다. 고향 이름을 따서 아호로 삼았다. 8세에 지었다는 시(八歲賦詩)가 눈에 띤다. 

 

숲에는 가을이 저물어 가매 / 시인의 시정은 그지없어라(林亭秋已晩 / 騷客意無窮)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 단풍은 햇빛 따라 불타올라라(遠水連天碧 / 霜楓向日紅)

 

산에는 둥근 달이 솟아오르고 / 강에는 끝없는 바람 어려라(山吐孤輪月 / 江含萬里風)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 저무는 구름 새로 소리 끊겨라(塞鴻何處去 / 聲斷暮雲中)

 

오래오래 장수해 명석한 두뇌로 임금을 잘 보필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남겨두고 황포돛배가 있는 두지나루터로 발품을 판다. 

 

임진강 건너 북으로 가는 다리.

임진강을 가로질러 북으로 향하는 다리와 도로의 끝은 어디까지인가? 분명 길 끝이나 저 산 너머에는 우리와 똑같은 동포들이 살고 있는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거늘, 구름은 바람타고 새들과 같이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우리는 가지 못하고 가장자리만 맴돌면서 고개만 길게 뽑는다. 

 

경애왕의 포석정 비극으로 졸지에 왕이 된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는 고려태조 왕건에게 신라라는 천년사직을 고스란히 받쳐 편하게 살다가 경주 밖에 묻힌 유일한 왕이 됐다. 정말 본인의 능력이 없어서인지 또는 시대적 배경이 그래서인지 회한이야 많겠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변명도 없이 임진강을 바라보며 누워 있다. 

 

경순왕릉.

연천군 장남면 고량포리 ‘경순왕릉’을 보고 장남면 원당3리에 있는 ‘연천호로고루(漣川瓠蘆古壘)’로 간다. 임진강 북쪽 기슭의 현무암 단애 위에 있는 삼각형의 고구려의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각축을 벌인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변의 노을은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길게 눕는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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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1-29 19:5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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