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철조망 지뢰밭에도 숨 쉬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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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철조망 지뢰밭에도 숨 쉬는 생명” 휴전선 155마일을 걷다(4)
  • 기사등록 2025-02-09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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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엊그제 하지(夏至)가 지나서 그런지 아침 해가 길게 들어선다. 오늘은 철원의 노동당사 건물에서 시작한다. 한국전쟁 때 포화로 골격만 남은 채 폐허로 남아있고, 포탄 자국에는 잡초가 뿌리를 내려 생명을 염원한다. 

 

철원군 노동당사.

‘소이산’ 쪽으로 이동하며 주변을 휴대폰으로 찍었는데, 갑자기 군인이 나타나 자기들을 향해 찍은 사진을 지워달라고 해서 삭제한다. 살아 있는 초병의 눈초리에 우리는 편안함을 갖는다.

 

산수국.

지뢰꽃 시비.

소이산(362m)은 철원평야를 조망할 수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역시 산은 산이다. 참호를 따라 올라가는 숨찬 산길에는 ‘산수국’이 가짜 꽃잎으로 벌 나비를 유혹한다. 전쟁 통에 지뢰밭으로 변해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돼 자연이 잘 조화롭게 발달됐다. “(전략)철조망 지뢰밭에서는/가을꽃이 피고 있다(후략)” 정춘근 시인의 ‘지뢰꽃’이라는 시비가 참 잘 어울리는 곳이다.

 

철원 민통선마을.

정상에는 전망대가 주변을 설명해 준다. 어제 보았던 백마고지가 보이고 폭탄을 퍼부어 산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려 붙여진 아이스크림고지 밑에는 민통선마을이 평화롭다. 인구 8만명을 자랑했던 철원의 옛 영광을 소이산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 너머 먼 산에는 북한 땅이 가물거리는데 먼발치로 뒤로하며 도피안사로 간다. 

 

도피안사 전경.

철조 비로사나불 좌상.

도피안사 대적광전.

피안(彼岸)의 세상이 도달한 곳에 지은 도피안사(到彼岸寺)의 작은 연못에는 연꽃이 봉오리로 맺혀 있고, ‘철조비로사나불좌상(鐵造毘盧舍那佛坐像)’이 모셔진 대적광전과 일주문을 비롯한 일부 가람들은 중창불사에 여념 없다. 바위틈에 끼어있는 금개구리상(金蛙像)은 무엇을 생각할까? 이승의 고통을 혼자 머리에 이고 있나 보다. 

 

고석정 표지석.

한탄강 고석정.

한탄강(漢灘江)의 유래는 궁예가 부하인 왕건에게 쫓기다 흘린 눈물이 흘러서 됐다는 설과 한국전쟁 때 ‘철원평야’를 빼앗겨 김일성이 한없이 울어서 됐다는 코미디 같은 이야기도 있다. 현무암층과 주상절리대가 발달된 곳으로 ‘유역이 넓고, 여울이 깊어’ 한탄강으로 붙여진 이름이란다. 

 

임꺽정 동상.

직탕폭포.

순담계곡.

이곳에는 임꺽정의 전설이 서린 ‘고석정’과 기암절벽과 하얀 모래와 물이 잘 어우러져 절경인 ‘순담계곡’, 강의 양안을 병풍처럼 길게 일직선으로 가로 놓인 거대한 바위를 넘어 힘찬 물이 수직으로 쏟아지는 한국의 나이아가라인 ‘직탕폭포’ 등 절경이 많아 오르내리며 둘러보기도 바쁘다. 계곡을 흐르는 물살이 빨라 리프팅 하기에 안성맞춤으로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승일교.

북한에서 건설하다 전쟁으로 중단한 것을 후에 국군 공병대가 완성한 아치형 승일교가 지금도 강을 가로지른다. 승일교는 이승만의 ‘승’자와 김일성의 ‘일’자를 따서 지었다고 하는데, 후에 한국전쟁 시 납북된 ‘박승일’ 연대장을 기념하기 위해 ‘승일교(昇日橋)’로 변경했다고 한다.

 

삼부연 폭포.

겸재 정선(謙齋 鄭敾)이 금강산 갔다 오는 길에 20여m의 절벽에서 세 번 꺾여 폭포가 떨어진 곳이 세 개의 가마솥 같은 풍경에 반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그렸다는 ‘삼부연폭포(三釜淵瀑布)’는 가뭄으로 인해 떨어지는 물줄기가 약하고 가늘다. 4마리의 이무기가 도를 닦고 살다가 그중 3마리가 용이 되어 승천하면서 3개의 바위구멍이 생겼고, 그곳에 물이 고여 ‘노귀탕·솔탕·가마탕’이 됐다는 전설이 있다.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인가? 

 

명성산.

미륵세계를 구현하려다 실패한 개혁군주 궁예(弓裔)의 한이 서린 철원 땅과 도선(道詵) 국사의 권유를 듣지 않고 진산(鎭山)으로 택하지 못한 금학산(金鶴山, 947m)도 말이 없는데, 명성산(鳴聲山, 923m)에서는 부하 왕건에게 쫓기는 궁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철원군청.

명성산을 마주하는 철원군청에는 여름꽃 ‘능소화(凌霄花)’가 만발하고, 재두루미의 날개짓이 그리운 철원평야의 나락들은 뿌리를 내려 풍년을 기약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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