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마을 중앙에 위치한 ‘무성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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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마을 중앙에 위치한 ‘무성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사·서원을 따라(47)  
  • 기사등록 2024-12-22 08: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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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전북 정읍시 칠보면 무성리 원촌마을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9개 서원 중 유일하게 마을 한가운데 있는 곳이 ‘무성서원(武城書院)’이다. 

 

무성서원 홍살문.

무성서원은 신라 말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이 태산군(정읍 지역의 옛 지명) 태수로 부임해 선정을 베풀고 떠나자, 백성이 세운 생사당(生祠堂)인 태산사(泰山祠)가 그 뿌리다. 생사당은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기 위해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제를 올리는 사당을 뜻한다. 

 

무성서원 유네스코 지정 표지석.

1483년(성종 14) 정극인(丁克仁)이 세운 향학당(鄕學堂)이 있던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 중종(中宗) 때 태인현감(泰仁縣監)으로 부임한 영천 신잠(靈川 申潛)을 1549년(명종 4) 생사당에 배향하면서, 태산사와 합해져 태산서원(泰山書院)이 됐다. 1630년(인조 8) 정극인·송세림(宋世琳)·정언충(鄭彦忠)·김약묵(金若默)과 1675년(숙종 원년) 김관(金灌)을 추가 배향했으며, 1696년(숙종 22)에 무성서원으로 사액(賜額)을 받았다. 

 

무성서원 현가루.

원촌마을 앞을 흐르는 은석천 서원교를 건너면 서원의 홍살문이 나오고, 제일 먼저 마주하는 건물이 현가루다. 현가루(絃歌樓)는 1891년에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이다. 1층은 서원의 외삼문(外三門)을 대신하고, 2층은 문루(門樓)이자 휴식공간으로 이용한다. ‘현가루’라는 이름은 논어의 현가불철(絃歌不輟)에서 따온 것으로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려움을 당하고 힘든 상황이 되어도 학문을 계속한다’는 의미와 ‘예(禮)와 악(樂)으로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다. 

 

무성서원 강당(명륜당).

현가루를 지나 마당을 건너면 1828년(순조 28)에 중건된 강당(명륜당)이다. 강당은 서원의 교육공간으로 1475년(성종 6)에 불우헌 정극인(不憂軒 丁克仁)이 향약을 창설하면서 세운 향학당에서 출발한다. 1615년(광해군 7) 태산서원을 창건할 당시에는 현재와는 규모와 형태가 다른 건물이었으나, 1825년에 큰 불이 일어나 사라져 버렸다. 1828년 다시 세워 현재에 이른다. 건물의 중앙에 걸려 있는 武城書院(무산서원) 편액 왼쪽의 작은 글씨 ‘丙子(병자)’년 표시는 1696년에 사액된 것을 표시하는 것 같다. 

 

무성서원 내삼문.

강당 뒤로 몇 계단 오르는 약간 높은 지대에 내삼문이 있고, 제향공간으로 사우(祠宇)인 태산사(泰山祠)가 있다. 사우 안에는 중앙에 고운 최치원을 주벽으로 정극인 등 여섯 분의 위패를 좌우에 각 세 분씩 배치해 칠현(七賢)을 봉안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中丁)에 향사(享祀)를 지낸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세워졌다. 다른 서원과 마찬가지로 전학후묘(前學後廟) 구조이나, 다른 서원과는 달리 재실(齋室)이 담 밖에 세워졌다. 

 

무성서원 태산사.

무성서원 강수재.

또 다른 특징은 원생들이 기거하는 기숙사를 담장 밖에 두었다. 동재인 강수재(講修齋)는 동쪽 담장 밖에 있으며, 서쪽 담장 밖의 서재인 흥학재(興學齋)는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현감 서호순(徐灝淳) 등의 불망비가 들어섰다. 무성서원 내·외부로는 모두 15기의 비석이 있는데, 역대 현감들과 무성서원을 지켜낸 인물들의 공적비다. 강수재 왼쪽 앞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고직사(庫直舍)가 있는데, 이는 서원의 관리인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서원의 향사(享祀) 때 필요한 제수(祭需)품을 준비하고 살림을 맡아 보는 곳이다. 

 

병오창의기적비.

강수재 앞에는 ‘병오창의기적비(丙午倡義紀蹟碑)’가 있다. 이 비는 1905년 을사늑약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체결되자 1906년 6월 13일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과 그의 제자 둔헌 임병찬(遯軒 林秉瓚)의 주도로 무성서원에서 호남 의병을 창의(倡義)한 역사적 현장을 기념하기 위해 1992년에 세워진 비석이다. 임병찬은 동학농민군의 김개남 장군과 친한 사이였으나 동학혁명을 반역으로 보고 김개남을 밀고한 사람이기도 하다. 

 

무성서원 전경.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전국서원이 철폐될 때도 제외된 47개 서원 중 하나였고, 사적(제166호)으로 지정된 무성서원의 지금 모습은 나만 느끼는 것인지는 몰라도 소수서원이나 도산서원 같은 다른 서원에 비해 조금 오종종한 것 같다. 우리가 바람을 손으로 잡거나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느낌으로 좋은 바람인지 나쁜 바람인지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서원을 대충 둘러본 느낌은 오랜 세월의 무게가 무성서원에게는 너무 무거운 것 같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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