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에코저널=서울】선운사는 1318년(고려 충숙왕 5)과 1354년(공민왕 3)에 효정선사가 중수했으나, 폐찰됐다. 1483년(조선 성종 14)에는 행호선사(幸浩禪師)가 쑥대밭이 된 절터에 서 있는 구층석탑을 보고 분발해 대대적으로 중창했지만, 정유재란을 맞아 잿더미가 됐다.
선운산 진흥굴.
1613년(광해군 5)에 무장(茂長)현감 송석조(宋碩祚)가 원준대덕(元俊大德)과 함께 3년에 걸쳐 절을 재건한 후 몇 차례의 중수를 거치며 오늘에 이른다.
가을 단풍이 내장산에 버금가는 선운산 단풍은 잎이 작고 또렷한 애기단풍이다. 절 입구에서부터 절 앞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거슬러 오르는 숲길을 따라붙으며, 봄이면 봄대로 또 가을이면 가을대로 맑고 선명한 색을 뿌린다.
선운사 천왕문(원교글씨).
일주문에서 1㎞ 남짓 걸으면 천왕문이 나온다. 천왕문(天王門)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 맞배지붕으로 1970년에 새로 지었다. 천왕문 편액은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의 글씨다. 이곳에서도 해남 대흥사처럼 추사와 원교의 두 명필 글씨를 만날 수 있다.
선운사 만세루.
천왕문을 지나면 만세루가 나온다. 만세루(萬歲樓)는 ‘부처님 진리가 만세가 되도록 오래 간다는 뜻’으로 선운사가 창건 당시부터 있었던 건물로 추정된다. 전란과 화재로 여러 차례 고치거나 새로 지었고, 지금 건물은 조선 후기 19세기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정면 아홉 칸, 측면 두 칸, 일자형으로 긴 일층 누각에 지붕선이 반듯하고 좌우에 풍판을 단 맞배지붕이다. 대웅전 마당 들어서는 누각은 보통 이층으로 누각 밑으로 들어가는데 이곳은 일층 누각으로 되어 있어 양쪽으로 우회해야 대웅전으로 갈 수 있다.
선운사 대웅전.
만세루를 비켜 마당에 들어서면 넉넉하게 비워둔 절 마당이 마음에 든다. 도솔천을 건너와 천왕문을 들어서 만세루, 대웅전까지 일자로 가람배치가 되어 있다. 백제(百濟)식 평지 사찰에 가까운 구조이지만, 대웅전과 주변 전각들은 낮은 비탈에 석축을 쌓은 위에 높이 올렸다. ‘선운사’란 이름은 ‘구름 속에서 참선 수도해 큰 뜻을 깨우친다’는 말로 ‘참선와운(參禪臥雲)’에서 나왔다고 한다.
대웅전 삼존불.
대웅전은 창건 때 세워 여러 차례 다시 지었고, 병자호란 때 절이 모두 불탄 뒤 1614년 광해군 때 복원했다. 불단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는데, 중앙 주존 불의 수인(手印)이 석가모니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이 아니다.
대웅전 비로나자불.
양 손바닥을 맞대고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오른손 집게를 감싸고 있는 게 비로자나불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주불전은 대적광전 또는 대광명전이라고 하는데, 왜 대웅전으로 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속리산 법주사와 구례 화엄사도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모신 법당을 대웅보전이라고 한다.
선운사 육층석탑.
대웅전 정면 중앙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비껴난 곳에 전북 유형문화재(제29호) 육층석탑이 서 있다. 고려 전기 석탑으로 추정하는데, 원래는 구층 석탑이었다가 여섯 층만 남았다. 선운사는 고려시대를 지나면서 89개 암자를 거느리고 3천여 승려가 머물렀던 큰 절이었다가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으로 폐사된 뒤 성종(成宗) 때 행호선사(幸浩禪師)가 빈 절 마당에 홀로 선 구층석탑을 보고 선운사 중창을 시작하는 계기가 됐다는 그 탑이다.
선운사 동백나무 군락지와 꽃무릇.
선운사를 말하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동백꽃이다. 대웅전 뒤편으로 약 3천 여 그루의 동백나무들은 수령이 500년 가량 된다. 봄이면 저마다 복스러운 꽃을 내민다. 피었을 때 고운 동백꽃은 질 때도 송이째 뚝뚝 떨어져, 가슴을 치는 서운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게 한다. 이곳의 동백나무 군락은 동백나무 자생지로는 최북단에 위치해 천연기념물(제184호)로 지정돼 있다.
고창 삼인리 송악(천연기념물).
대충 둘러보고 선운사에서 주차장으로 나오는데, 일주문 밖 도솔천변 바위에 달라붙어 자라는 천연기념물(367호) 송악이 있다. 이 송악은 가슴높이의 줄기둘레가 80㎝에 이르고 나무의 높이도 약 15m나 되는 거목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내륙에 자생하고 있는 송악 중에는 가장 큰 나무라고 한다. 송악은 원래 따뜻한 섬이나 해변에서 자라는 넝쿨식물이다. 동해는 울릉도까지, 서해는 인천 앞바다 섬들까지 퍼져 있으나, 내륙으로는 여기가 최북단이라고 한다.
선운사 배롱나무.
그 옛날 어느 선배가 선운산에 가거든 송악과 장사송을 보고 선운사 뒤뜰에 동백꽃이 붉게 피거든, 그 아래 주막에 들러 풍천장어에 복분자 술을 곁들이고 선운산에서 나는 작설차(雀舌茶)로 입가심을 하면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다고 자랑했었다.
우린 시간에 쫓겨 다른 전각들은 뒤로 미루고, 선홍색 꽃무릇처럼 상사병 환자가 되어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돌린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