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애국가 첫 소절 배경화면 ‘추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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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애국가 첫 소절 배경화면 ‘추암’ 태양, 파도와 함께 걷는 ‘해파랑길’(27)  
  • 기사등록 2024-05-12 07:00:18
  • 기사수정 2024-05-18 08:4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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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오후에는 먼저 삼척시 성내동에 있는 죽서루로 향한다. 죽서루(竹西樓)는 누각으로 보물 213호로 지정됐으며, 관동팔경 중의 하나다. 

 

죽서루.

다른 관동팔경의 누(樓)와 정(亭)이 바다를 끼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죽서루만이 유일하게 강(오십천)을 끼고 있다. 죽서루의 건립 시기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사 김효손이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죽서루 주춧돌과 기둥.

‘누(樓)’란 사방을 트고 마루를 한층 높여 지은 다락형식의 집을 일컫는다. ‘죽서(竹西)’란 이름은 누의 동쪽에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했다고 추정된다. 

 

죽서루 처마.

규모는 앞면 7칸·옆면 2칸이지만 원래 앞면이 5칸이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팔작지붕이다. 이곳의 특징은 기둥을 자연암반의 높이에 맞춰 직접 세운 점이 특이하다.

 

암각화.

죽서루 좌측에는 선사시대 암각화와 용문바위가 있다. 암각화는 바위나 절벽 또는 동굴 내의 벽면에 물상(物象), 기호(記號), 성혈(性穴) 등을 그리거나 새겨 놓은 것을 말하는데, 죽서루 선사 암각화는 바위 위에 여성생식기 모양의 구멍을 뚫어 놓은 성혈암각이다. 성혈은 풍요·생산·다산을 상징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칠월칠석날 자정에 성혈 터를 찾아가서 일곱 구멍에 좁쌀을 담아놓고 치성을 드린 다음 그 좁쌀을 한지(韓紙)에 싸서 치마폭에 감추어 가면 아들을 낳는다는 민간신앙으로 발전했다.

 

용문바위.

용문바위는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이 사후에 호국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지키다가 어느 날 삼척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죽서루의 벼랑을 아름답게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오십천으로 뛰어들 때 죽서루 옆 바위를 뚫고 지나갔는데, 그것이 용문바위다. 그 후 용문바위는 아름다움과 장수, 다복의 기원처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용문을 드나들며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삼척항.

죽서루를 둘러보고 삼척항으로 이동한다. 옛날에는 정라항으로 불렀던 삼척항은 오십천의 맑은 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끝자락에 있다. 한때는 동해의 최대 항구 중 하나로 수 많은 어선들이 모여들었다.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는 중요한 군사기지였다. 현재는 강원 산간지방에서 생산하는 시멘트를 하역하는 항구로 기능하고 있다. 하역시설로 시멘트 선적기가 제1·2·3부두에 설치돼 있다.

 

동해의 가두리양식장.

항구 부두를 따라 마지막 지점에서 동네 골목길을 빠져나와 이사부광장을 지나 새천년해안도로로 접어든다. 바다 멀리에는 어업 양식을 하는지 가두리 두 개가 원을 그리며 떠있다. 

 

북으로 올라가는 해파랑길.

한낮의 해안길은 주말을 이용해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한가한 편이다. 해안가 바위 위에는 초소 같은 하얀 구조물이 동해를 응시한다. 팔레스호텔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언덕마루에는 소망의 탑이 기다린다.

 

소망의 탑과 종.

소망의 탑은 “동해의 이른 햇살에 깨어난 우리는 희망을 품고 근심걱정을 불태우고 용서와 사랑으로 마주보고 소리쳐 웃어 보세”라는 삼척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탑으로 옆면은 미끈하고 아름다운 돌로 채워져 있고, 그 앞은 ‘소망의 종’이 매달려 있다. 2001년 1월 1일에 세워진 이 탑은 누구나 소망의 종을 세 번 치면 소망하는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서 나도 세 번 타종해 본다.

 

비치조각공원.

새천년해안도로를 따라 다시 북으로 걸으면 비치조각공원이 나온다. 여름철은 물론 4계절 가리지 않고 관광객이 찾아와 조각 작품을 감상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 인기를 더한다. 

 

70대 청춘의 노래.

두꺼비 바위.

정자에서는 구성지고 활력이 넘치는 ‘어느 70대 청춘 노래공연’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흥을 돋운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도로변에는 두꺼비 바위가 앞의 초소를 향해 왕방울 눈을 굴린다.

 

추암 입구.

기암괴석.

삼척시 경계를 지나면 동해시 추암이 나온다. 추암(湫岩)은 ‘한국의 가볼만한 곳 10선’으로 선정된 해돋이 명소고, 애국가 첫 소절의 배경화면으로 나오며, 영화 ‘겨울연가’로 유명해진 곳이다. 1463년(세조 9)에 한명회(韓明澮)가 강원도체찰사로 있으면서 이곳 경승에 취해 ‘능파대’라고 했으며, 그 아름다움은 ‘동해 남부의 해금강(海金江)’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촛대바위.

능파대(凌波臺) 앞에는 어림짐작으로 높이가 약 10여m쯤 되는 바위가 솟아오른 촛대바위가 오늘을 압권한다. “옛날에 추암 해안에 한 남자가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소실을 얻게 되어 본처와 소실 간에 투기가 빚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두 여자의 시샘이 급기야 하늘을 노하게 해 벼락으로 징벌을 가해 남자만 남겨 놓았는데, 지금의 홀로 남은 촛대바위가 그 남자의 형상”이라고 한다.

 

해암정.

촛대바위에서 바위 사이로 돌아 나오는데 해암정이 나온다. 해암정(海巖亭)은 1361년(고려 공민왕 10년)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沈東老)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후진양성을 위해 건립한 정자라고 한다. 동로(東老)라는 이름은 왕이 낙향을 만류하다가 ‘동쪽으로 간 노인’이라는 뜻으로 하사한 이름이란다. 해암정은 강원도 유형문화재(제63호, 1979년 5월)로 지정됐으며, 삼척 심씨(三陟 沈氏)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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