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고 재미난 꽃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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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꽃은 꽃잎, 꽃받침, 암술, 수술로 분류된다. 수명에 따라 한해살이, 두해살이, 여러해살이로 나뉜다.

대표적인 한해살이식물은 고마리, 두해살이식물은 냉이가 있다. 여러해살이식물 중 대나무는 오죽인 경우, 60년, 중국 왕대는 120년에 한번 꽃을 피우고, 특히 용설란은 100년에 한번 꽃을 피운다.

한해살이건 여러해살이건 일단 일생에 한번 꽃을 피우는 식물은 꽃이 피면 모든 양분을 소진하기 때문에 식물체 자체가 죽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꽃을 피우는데도 전략이 필요하다. 식물은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씨앗을 만들기 위해 꽃을 피우는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씨앗을 퍼트리는 번식과정에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사계절이 분명한 온대지역에서는 식물은 언제, 얼마 동안 꽃을 피울까. 봄의 꽃인 정향나무, 여름꽃인 연꽃, 가을꽃인 구절초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대표적인 식물이다. 이같이 계절적인 꽃의 종류와 개화 시기는 곤충의 활동시기, 생활사와 연관이 크다.

꽃이 피면 얼마나 오래 갈까. 원추리나 나팔꽃처럼 꽃이 피어 있는 시기가 반나절이나 한나절 정도로 짧은 식물도 있다.

식물은 곤충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각양각색의 꽃을 제각각 다른 크기와 수명으로 피웠다. 곤충에게 적당한 양의 먹이를 일정기간 동안 제공, 손실을 줄이면서 질 좋은 씨앗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 꽃차례 모양은 물론 꽃의 수도 다양하다.

원추리와 같이 꽃이 큰 식물은 암술과 수술이 길게 뻗쳐 있고 꿀샘이 깊어 호랑제비나비와 같이 긴 대롱이 달린 곤충들만 찾는다. 호박꽃은 커다란 호박벌이, 조팝나무와 같이 작은 꽃이 피는 식물은 작은 곤충만이 이용할 수 있게 진화했다.

꽃 색깔은 흰색, 노란색, 초록색, 분홍색, 빨간색, 파란색, 보라색, 검은 자주색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색으로 존재한다. 가장 흔한 꽃 색깔은 나라마다 약간씩 다르고 한 지역에서도 계절에 따라 바뀐다.

곤충에 따라 특별한 색의 꽃을 더 많이 찾아가는 경향이 있어 벌은 노랗거나, 파란 꽃을, 나방은 흰 꽃을, 새는 빨간 꽃을 많이 찾아간다. 나비는 시각과 후각에 의해 꽃을 찾기 때문에 나비가 찾는 꽃은 벌이 찾는 꽃과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나비는 모두 낮에 움직이는 주행성곤충이지만, 나방은 주행성나방과 밤에만 움직이는 야행성나방이 있다. 야행성나방이 찾아가는 꽃은 밤에 향기를 뿜는 별 모양의 흰 꽃이 많다. 달맞이꽃은 긴 화통을 가지고 있고 밤에 달콤한 향기가 나는 꽃을 피워 나방을 유혹한다. 그래서 꽃 색깔의 지역적, 계절적 차이는 어떤 곤충이 얼마나 분포하는지 간접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꽃의 꽃잎, 꽃받침, 꽃밥과 열매의 색은 다양하지만 색소의 종류는 매우 적다. 꽃에서 가장 흔한 두 색소는 플라보노이드 계통의 안토시아닌과 잎에서 광합성 보조색소로 작용하는 카르티노이드이다. 안토시아닌은 오렌지-빨강색을 내는 펄라르고니딘, 심홍색의 사이아니딘, 담자색의 델피니딘의 세가지 색소로 구성된다. 이들이 섞인 정도에 따라 빛이 반사되는 정도가 달라져 다양한 꽃 색을 나타낸다. 카르티노이드와 노란 플라보늘이 있으면 노란꽃이 되고 프라본과 프라보놀이 있으면 흰꽃이 된다.

물론 초록색 꽃에는 엽록소가 있다. 꽃의 색깔은 안토시아닌과 카르티노이드가 섞인 정도에 따라서만 아니라 세포의 산도, 금속이온, 빛이 반사되는 정도에 따라 특징적인 색조를 띠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색과 곤충이 보는 꽃 색은 전혀 다르다. 동의나물의 꽃잎 안쪽에는 자외선을 흡수하는 플라보노이드인 칼콘이 있고 바깥쪽에는 자외선을 반사하는 카르티노이드가 많다. 동의나물꽃은 자외선을 인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완전히 노랗게 보이지만 자외선을 인지하는 벌이나 다른 곤충에게는 노란 중심에 검은 테두리를 두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일단 꽃잎을 확인하면 노랗게 빛나는 꽃밥과 꿀샘이 숨겨져 있는 안쪽으로 들어가 먹이를 찾게 되는 것이다. 꽃의 무늬는 유인색소로 이용된다.

식물은 꽃이 피면 저마다 향기를 뿜어낸다. 향기는 휘발성이 강한 작은 분자로 이뤄져 쉽게 퍼져나가기 때문에 꽃의 크기나 색보다는 비교적 장거리에서 곤충을 유인한다. 물론 매개자를 굳이 유인할 필요가 없는 자기꽃가루받이 식물은 향기가 없거나 약하고 매개자가 꼭 있어야 하는 딴꽃가루받이 식물은 향기가 강하다. 백리향 같이 빽빽이 무리지어 있는 잎을 손바닥으로 한 번만 쓸어도 향기를 풍기는 향기식물도 있지만 꽃의 향기는 꽃가루받이가 적당한 조건이 되었을 때 대개 꽃잎의 특정 부위에서 생산된다.

꽃의 향기는 낮에 움직이는 벌이나 나비에게도 중요한 신호지만 색 구분이 안 되는 밤에 날아다니는 야행성 곤충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어떤 꽃은 향기가 아니라 악취를 풍긴다. 앉은 부채는 스컹크양배추 라고 불릴 정도로 심한 악취를 풍긴다(휘발성 암모니아). 약모밀은 온몸에서 지독한 생선 비린내를 풍기기 때문에 어성초라고도 부른다. 누린내풀은 아주 독한 누린내냄새를 풍긴다. 악취를 풍기는 꽃을 곤충의 배설물이나 시체가 썩는 것이라고 착각한 곤충들이 찾아와 산란을 하거나 꽃가루를 먹는 중에 꽃가루받이를 일으킨다.

곤충들이 아름다운 꽃에 취해서 또는 꽃가루를 날라주는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꽃을 찾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먹이를 찾기 위해 꽃 안에 들어가고 먹이를 먹는 중에 부수적으로 꽃가루받이가 이뤄지는 것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식물은 달콤한 꿀을 생산해 대가를 치르고 있다. 즉 매개 곤충에게 주는 가장 흔한 먹이는 달콤한 꿀이다. 길쭉한 종처럼 매달리는 윤판나물의 꽃이 피면 벌들이 찾아온다. 갈래꽃잎이 하나씩 떨어질 때 벌이 꽃잎을 부등켜안고 같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 윤판나물꽃의 꿀맛을 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자연생태계는 노력에 의한 대가를 받기보다는 노력 없이 살아 갈려고 하는 곤충도 있다. 특히 꿀샘근처에 구멍을 뚫거나 꽃 바깥에 내려앉아 꽃잎을 헤치고 꿀만 빨아먹을 뿐 꽃가루받이 서비스는 하지 않는 도둑곤충도 있다. 식물은 이런 꿀 도둑을 막기 위해 패랭이꽃은 질긴 꽃받침으로 꿀샘을 보호하고, 마타리나 솔체꽃은 작은꽃이 빽빽하게 붙은 꽃차례를 피운다. 엉겅퀴는 보라색 작은 꽃이 모인 꽃차례를 가시처럼 날카로운 포엽이 싸고 있어 곤충의 접근을 막는다. 꿀을 뺏기지 않으면서 착실하게 꽃가루받이를 이루는 안전한 매개자를 유인하기 위해서 꽃잎 끝에 주머니 같이 생긴 것을 매달기도하고 박주가리 꽃처럼 좁은 꽃통과 털이 북실북실 나 있는 꽃잎으로 찾아오는 곤충을 가리기도 한다.

영양이 좋은 꽃가루도 매개곤충의 먹이다. 꽃가루의 주성분은 단백질, 전분, 당, 지질, 무기물로 역시 완전식품에 가깝지만 식물의 종류에 따라 성분에 차이가 있다. 충매화는 곤충을 유인하기 때문에 지질이 많은 비싼 꽃가루를 만들고, 꽃가루를 바람에 날리는 풍매화는 비용이 적게 드는 전분성 꽃가루를 만든다.
<글·이상각 박사/들꽃수목원 생태환경농업연구소장>
사진설명: 용설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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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5-06-26 10: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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