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보고 15>르포-미국 고속도로 주변에 버려진 승객 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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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보고 15>르포-미국 고속도로 주변에 버려진 승객 2명
  • 기사등록 2022-05-25 20:04:33
  • 기사수정 2023-11-14 23: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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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뉴욕. 캐나다 나이아가라】뉴욕에서 나이아가라 폭포(Niagara Falls)로 가는 버스를 예약하고, 현지시간 5월 24일 오전 7시 50분(한국시간 5월 24일 오후 8시 50분) 숙소에서 맨해튼 미드타운(Midtown)의 터미널로 출발했다. 평소 20분이면 도착 가능한 거리다. 교통정체로 인해 8시 45분 출발 예정인데, 5분 전인 8시 40분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마이애미에서 뉴욕은 다른 주로 이동하기 때문에 비행기를 이용했는데, 같은 주 내에서 움직이는 것이라 버스를 택했다. 맨해튼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441마일(710km) 거리를 버스로 이동한 것이 큰 실수였다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깨닫게 됐다.


버스 4∼5대 정도 들어서는 작은 터미널에는 3대의 버스가 주차돼 있었다. 앞서 도착한 30명∼35명 가량의 승객들 모두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문 닫힌 3대의 버스에는 행선지 표시가 전혀 없었고, 사무실에는 단 한 명의 직원도 나와 있지 않아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몰라 버스 티켓을 사전 예매한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혼란이 일었다.


나도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 컨테이너 크기의 작은 이동식사무실에 붙어있는 버스회사 ‘플릭스버스(Flixbus)’의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봤지만, 본사에서 ARS로 연결돼 담당자 통화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내게 말을 걸어온다. 자켓이 문제였다. 호주머니가 많은 자켓이 편리해 입었더니 운전기사로 오인해 몇 사람이 질문을 걸어왔다. 머리가 더 복잡해지는 순간이었다.


답답해서 미국 장거리 버스를 이용한 경험이 있던 지인과 통화를 했다. “버스 지연이 잦고, 때론 별도 통보 없이 갑자기 운행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답변을 들으니 더욱 답답했다.


그러던 와중에 출발 예정시간에서 30분이 지난 9시 20분께 우리가 타야 하는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했다. 늦었지만, 도착해줘서 너무 반가웠다.

▲미국 버스회사 ‘플릭스버스’가 운행하는 뉴욕∼나이아가라 구간 버스 내부.


버스는 운전석 뒤로 2명씩 15칸, 조수석 뒤로 2명씩 14칸, 맨 뒤 화장실 공간 옆 3좌석을 합해 61인승이었다. 버스에는 정원의 30%인 20명 가량만 탑승했다.

▲버스 내부 뒤쪽에 마련된 화장실.


난 화장실 바로 앞에 붙어있는 좌석에 앉았는데, 차가 달릴수록 화장실 이용이 많아지면서 냄새가 짙어졌다. 61인승 정원을 다 채우지 않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미국은 물론 캐나다, 영국 등에서 중국과 인도(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포함) 사람들을 많이 마주친다. 인구가 많은 나라다 보니 해외로 나간 이들도 많다. 버스 승객 절반 정도가 인도 계통으로 보인다.


운전기사는 ‘베스트 드라이버(Best Driver)’였다. 장거리 운행인 만큼 너무 느리지 않게, 적절한 속도로 버스를 몰았다. 하지만, 말은 거의 하지 않았다. 정거장에 정차할 때도 말없이 조용히 내렸다가 올라타기를 반복했다.


버스는 평균 1시간 간격으로 고속도로를 나와 정거장에 정차했다. 11시 40분 첫 번째 정거장을 시작으로 5번 정차했다. 첫 정차에서 하차 승객을 내린 뒤 5분도 지나지 않아 출발했는데, 그 사이에 인도 출신으로 보이는 승객 2명이 피자를 사러 갔다가 출발한 버스를 헐레벌떡 쫓아와 간신히 올라탔다.


12시 50분께 다시 정거장에 버스가 잠시 정차했다가 출발하는데, 또 다른 인도계 승객이 “자신의 일행 두 명이 버스에 타지 않았다”고 버스 운전기사에게 말했다. 기사는 “다음 버스를 타도록 해라”는 냉정한 짧은 대답을 하고, 그대로 버스를 몰았다.


순간 버스 내에서 찬 기운이 감돌았다. 뉴욕∼나이아가라 구간을 운행하는 이 회사 버스는 하루에 단 2회 운행한다. 다음 버스는 6시간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또 승객 대부분이 캐리어 1개 이상을 버스 화물칸에 실어 놓은 상태였는데, 버스를 놓친 승객의 짐도 포함된다.


이때부터 승객 대부분은 바짝 긴장했다. 정거장에 정차해도 아무런 안내를 하지 않는 운전기사이기에, 버스에 내리는 일이 생기더라도 절대로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없었다.


오후 1시 20분에 맥도날드와 서브웨이 등이 있는 휴게소에 정차하면서 운전기사가 모처럼 말을 했다. “정확하게 20분 후 출발한다”는 짧은 내용이다. 승객 대부분은 서둘러서 햄버거나 샌드위치 등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음식 주문이 늦어진 승객은 버스로 포장해 와서 먹기도 했다.

▲정거장에서 잠시 내린 승객들이 버스에서 멀리 떠나지 않고 근처에 모여 있다.


흡연자들은 정거장에 버스 운전기사가 내리면 재빠르게 따라 내린다. 기사 근처에서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담배를 피운 뒤 눈치를 봐서 서둘러 끄고 탑승하는 일이 반복됐다.


버스가 9시간 가까이 달려 오후 5시 30분께 목적지인 나이아가라에 무사히 도착한 뒤에서 나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걸어서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입국했다. 엉덩이가 뻐근하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다리에 힘이 없다.


<이정성 미주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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