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채 전 양평군수, ‘한국 친환경농업 이끈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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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채 전 양평군수, ‘한국 친환경농업 이끈 선구자’ 석탄·석유·에너지 이후 ‘물 전쟁’ 도래 예견
  • 기사등록 2021-04-19 11:11:35
  • 기사수정 2023-11-15 13: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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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양평】지난 15일 8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민병채 양평군수는 “한국농업의 미래는 친환경농업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면서 우리나라 친환경농업을 이끈 선구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지난 1995년 민선 초대 양평군수로 당선된 민 전 군수는 양평군 전체를 친환경농업 지역으로 선포하는 등 친환경농업 기술을 성공적으로 보급해 일본에서 체험 견학을 올 만큼 친환경 농업론자로 인정받았다.


고인은 민선 1·2기 양평군수를 지내면서 양평군 친환경농업의 마스터플랜을 직접 그리고 실천했다. 지난 2003년 7월, 노무현정부 때는 김영진 농림부장관 후임으로 내정됐다가 막판 뒤집기에 의해 허상만 전 순천대 교수에게 자리를 내준 적도 있다.


생전 오스트리아(Austria)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뒤 에코저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고인은 “호수변에 늘어선 많은 주택에서 발생한 생활오수가 단 한 방울도 호수로 유입되지 않았다”며 팔당상수원으로 인해 각종 규제를 받아 온 양평군의 현실과 비교했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짤스부르크(Salzburg)를 방문했던 고인은 차집관거를 통한 완벽한 하수처리에 크게 놀랐다고 말문을 열었다. 짤스부르크는 옛 것과 새 것이 조화되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도시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Sound of Music)’과 모짜르트의 탄생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인에게는 호수변 주택들이 하수처리를 철저히 하고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경관의 도시로 기억되고 있었다.

▲18일 오전 양평군청 앞에서 진행된 민병채 전 양평군수 노제.


과거 임창렬 경기도지사가 주위사람들에게 “환경분야에 대해서는 민병채 양평군수와 논의하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했다.


고인은 원래 환경분야를 전공하지 않았다. 6·25 한국전쟁 이후 혼란한 시기였던 1957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1961년 소위로 임관, 1966년에는 주월 백마사단 포대장을 지낸 월남 참전용사다. 이후 21사단 포병연대장과 서강대학교 학군단장을 지낸 뒤 지난 1986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전방(양구) 지휘관으로 지내는 동안에는 장병들에게 “부대 내에 붉은 색이 일체 보이지 않게 하라”고 강조했다. 전후 붉게 황폐한 산림이 눈에 몹시 거슬렸기에 부대 안은 물론 주변까지 적극적인 산림녹화에 나섰다.


고인은 군에서 예편한 뒤 민간기업에 근무하면서도 남다른 환경보호 의지를 이어갔다. 1986년 알루미늄을 제조하는 삼선공업(주) 기획관리부장으로 입사한 뒤 제품 피막에 6가크롬을, 정제과정에서 염소가스가 사용되는 것을 확인하고 회사측에 집진시설을 설치할 것을 건의, 설득시키는데 앞장섰다. 당시로서는 환경에 대한 인식조차 크게 부족한 상황이었으나 꾸준한 설득과 노력을 지속해 결국 이를 관철시키는데 성공했으며, 1998년에는 회사의 대표이사(사장)까지 지냈다.

고인이 양평군수 재직기간 전개했던 친환경농업은 구체적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언론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고인은 “친환경농업은 단순히 화학비료와 제초제 등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며 “한국농업의 미래는 친환경농업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고인은 친환경농업의 진정한 의미는 ▲오랜 시간 인간에 의해 죽어갔던 토양을 살리고 ▲물을 깨끗하게 하고 ▲자연을 복원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인류를 살리기 위한 성업이라고 정리한다.


고인은 평소 정부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지적을 해왔다. 환경부가 상수원 수질개선 등을 목적으로 도입한 ‘수질오염총량관리제도’에 대해서는 “하수처리용량을 제한, 오염원의 입지를 차단하겠다는 발상은 원시적”이라고 지적하고, “오염총량 산정과정에서 비점오염원을 크게 고려하지 않고 점오염원 위주로 산정하는 것도 큰 오류”라고 지적해 개선이 이뤄지도록 했다.


농림부가 축분을 이용한 작물재배의 경우, 유기농인증을 내주지 못하도록 규정을 추진할 당시에는 “선진국 제도를 따르는데 급급해 현실을 살피지 않는 처사”라며 “국내 축산농가들이 소·돼지 등 가축들에게 조사료만을 공급하는 것이 가능하겠는냐”고 질타하기도 했었다.


고인은 “석탄, 석유, 에너지 이후에는 물을 놓고 전쟁을 벌이는 시기가 돌아올 것”이라고 예견하고 “ ‘Eco-doctors town’을 조성, 생태적으로 보전된 지역을 조성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밝힌 바 있다.


고인은 “자연경관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산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안정이 가능하다”고 강조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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