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천지인 합일 표현 ‘동백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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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천지인 합일 표현 ‘동백꽃’ 남도 문화·낭만 따라 걷는 ‘남파랑길(7)’   
  • 기사등록 2025-04-13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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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서울에서 완도는 멀다. 전날 저녁 7시에 서울 양재동을 출발한 버스는 막힘없이 달려왔건만, 5시간 30분에서야 완도항 옆에 있는 숙소에 도착했다. 잠시 눈을 붙이고, 여명에 잠에서 깨어나 숙소 앞에 나오니 붉은 동백이 반갑게 맞이한다. 

 

동백나무.

차나무과에 속하는 동백은 꽃을 세 번 피운다고 한다. 처음에는 하늘(나무)에 피우고, 두 번째는 땅에 피우고, 마지막에는 나의 마음속에 피운다. 밤사이 잠깐 내린 빗방울은 영롱한 진주 같다. 

 

동백꽃.

동백꽃은 향기가 없는 대신 그 빛으로 동박새를 불러 꿀을 제공해 주며 새를 유인하는 ‘조매화(鳥媒花)’의 하나다. 동백꽃은 대개 붉은빛이나 드물게 흰 동백꽃이 있어 ‘서상(瑞祥)’이라고 하여 소중하게 여긴다. 

 

흰동백.

동백꽃은 붉게 피었다가 아무 미련 없이 송이채 뚝 떨어져 뒤끝이 깨끗하기 때문에 이를 아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피운다는 것. 그래서 동백은 천지인(天地人) 합일사상을 표현하는 꽃으로, 펴도 예쁘고 져도 예쁘다.

 

완도군 지도.오늘따라 동백이 더 예쁜 완도(莞島)는 ‘빙그레 웃을 완(莞)’자와 ‘섬 도(島)’자를 써서, 고향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같다. 다른 뜻으로는 ‘왕골풀이 많다’고 해서 완도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완도는 신라후기인 828년(흥덕왕 3) 장보고가 완도읍 장좌리 장도를 중심으로 청해진을 설치했으나, 846년(문성왕 8) 장보고 반란이 일어나자 파진(罷鎭)해 조선말까지 동쪽은 강진현에, 서쪽은 해남현에 속했다. 

 

완도가 군으로 승격된 것은 1884년 갑신정변 때 이조판서였던 이도재(李道宰)가 고금도에 귀양 왔다가 1894년에 귀양살이에서 풀려나면서 동학농민운동 당시 전라감사로 부임해 전봉준(全琫準)은 서울로 압송하고, 김개남(金開男)은 체포한 뒤 즉시 효수했다. 그 뒤 곧바로 학부대신에 오른 후 1896년 4월 1일에 완도를 군으로 승격시켰다. 그래서 완도읍 죽청리에는 이도재의 송덕비가 있다. 완도군은 무인도가 143개고, 유인도는 60개다. 

 

완도항.

오늘 출발지점은 완도항이다. 무역항인 완도항은 1981년 1월, 2종항에서 1종항으로 승격된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김[해태(海苔)] 출하 항이었으며, 지금은 전복이다. 제주항과 내륙을 잇는 가장 가까운 항구며, 그 사이를 2시간대에 주파할 수 있는 쾌속선이 79년 4월에 취항했다. 

 

영롱한 아침이슬.

완도항 연안여객선터미널에서는 완도와 제주 간 정기여개선 외에 소모도·대모도·모항도·청산도·추자도·생일도 등을 운항하는 철부선과 여객선이 운항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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