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에코저널=서울】어젯밤 늦게 도착한 만해마을의 아침은 가을 색을 덧칠하는 가랑비가 내린다. 며칠 전부터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를 깨끗하게 청소한다.
만해마을의 아침.
산골짜기 사이로 흰 구름이 안개꽃 피듯 하늘로 솟고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도 감미롭고 청아하다. 만해마을이 있는 내설악의 가을은 흐름의 미학이 있고, 기다림의 아름다움이 배어 있다.
진부령 표지석.
지난 5월 파주 문산의 반구정에서 시작한 휴전선 걷기의 시작은 이번이 여섯 번째로, 동쪽의 끝 고성의 통일전망대를 향해 진부령(520m) 고개를 넘는다. 인제군 북면에서 고성군 간성읍으로 가는 고개 정상으로 백두대간의 마루금이 지나간다.
적설량 측정대.
겨울철에 눈이 많이 내려 ‘적설량측정대’도 설치돼 있고, 미술관과 쉬어 갈 수 있는 쉼터와 식당이 있다. 고성8경의 하나인 ‘마산봉설경(馬山峰雪景)’ 입구다. 진부령은 자동차도로가 확장되면서 사람이 걸어 다니던 옛길은 사라져 눈에 보이지 않는다.
진부령 넘어 첫 방문지는 ‘금강산건봉사(金剛山乾鳳寺)’다. 건봉사는 휴전선 북단 향로봉을 배경으로 남방한계선과 매우 가까워 한때는 민간인 출입이 제한되던 때도 있었다.
사명대사 좌상.
사찰 경내 입구에는 자작나무숲이 있어 얇은 나무껍질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편지를 마음속으로 써본다. 조금 지나 이곳에서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사명대사 유정(四溟大師 惟政)의 좌상이 위엄 있게 설법하는 것 같다.
건봉사 승탑공원.
길가 옹벽 틈새에는 감국이 노란 꽃을 활짝 피어 가을 향기를 발산하고, 금줄이 쳐진 곳에 48기의 승탑과 31기의 비석은 승탑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건봉사 대웅전.
신라 법흥왕 7년(520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할 때는 원각사(圓覺寺)였는데, 758년(경덕왕17)에 발징(發徵)이 중건해 염불만일회(念佛萬日會)를 우리나라 최초로 열었다고 한다. 도선이 중수해 서봉사(西鳳寺), 나옹이 재중수해 지금의 건봉사가 됐다고 한다.
건봉사 불이문.
잘 보이지 않는 홍예교(虹霓橋 무지개다리)를 밟으며, 만해의 시비 ‘사랑하는 까닭’을 감상하고, 6·25 한국전쟁 때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불이문(不二門)을 지나 능파교 건너에 자리하고 있는 대웅전으로 간다. 임진왜란 때 왜구가 양산통도사에서 가져간 부처님 진신사리 12과를 사명대사가 찾아와 이곳에 봉안해 신도는 물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친견을 할 수 있는 친견장이 대웅전 옆에 마련돼 있다. 대웅전 뒤 능선 위로 남과 북을 갈라놓은 철조망이 숲 사이로 어른거린다.
청간정의 동해바다.
건봉사에서 바삐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으로 이동한다. 청간정(淸澗亭)은 설악산에서 발원하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작은 바위 언덕에 세워져 있다. 동해와 어우러지는 아침 일출이 일품이어서 예로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았다고 한다.
청간정. 청간정 건립연대는 알 수가 없다. 갑신정변 때 화재로 없어진 것을 지역주민들이 1930년대 재건했고, 1955년 대통령 이승만의 지시로 보수한 것을 1981년 대통령 최규하의 지시로 해체 복원했다고 한다. 두 대통령이 쓴 현판이 정자 안에 지금도 걸려있다.
천학정.
곧이어 약 3km쯤 떨어진 천학정(天鶴亭)으로 간다. 마을 고샅길 같은 길을 따라 좀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바위와 소나무가 우거진 곳이 나오고, 다시 계단을 통해 바다에 접한 바위 끝에 천학정이 있다.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동해바다의 신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천학정 편액.
교암항으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보다 훨씬 수월하다. 바다에 펼쳐진 모래사장은 동해의 숨은 해수욕장 같으나, 정자 주변을 둘러싼 경비용 철조망이 작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