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닦고, 털고, 버리는 ‘두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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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네 번째 탐사 계획이었던 두타연 계곡은 지난 달 남북 간의 긴장으로 출입이 통제됐다가 바로 화해가 되면서 이번에 출입이 가능해져 아침부터 서두른다. 

 

두타연 출입구 비득중대.

민간인출입통제구역으로 50여 년 동안 묶여 있다가 출입이 허용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원시의 자연이 비교적 잘 보전돼 있다. 처녀지를 밟는 기분으로 마음이 설레고, 들뜨는 것을 감출 수 없다.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 입구.

월운저수지 앞에서 약 1.6km 걸어가면 두타연 출입신청소인 제21사단 비득중대가 나온다. 안내소까지 가는 길목의 수리봉 한국전쟁 전사자 발굴현장은 60여 년 전 동족상잔의 아픔을 떠올리게 한다. 길옆 산골 논에는 벼가 익어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데, 초입부터 다래와 머루가 침샘을 자극한다. 출입안내소에서 출입신고를 한 후 정해진 길을 따라 간다. 

 

금강산 가는 길 안내판.

가끔 보이는 탱크 저지시설과 철조망이 쳐진 길옆으로 연처럼 걸린 지뢰밭 표시가 을씨년스럽다. 몇 구비 완만한 고갯길을 넘으니 금강산 가는 길 푯말이 보인다. 고개를 돌리니 철조망이 앞을 막는다. 

 

희망의 메시지 공중전화 부스.

금강산 장안사까지 30km, 남쪽에서 최단 거리지만, 언제쯤 남의 눈치 안 보고 갈 수 있을까? 희망 메시지를 전달하는 공중전화 부스에서 빨리 그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소원해 본다. 

 

두타연 징검다리.

지뢰철조망이 호위하듯 늘어선 길을 가다가 옆으로 빠지는 숲길이 나온다. 두려움 반 기대 반 심정으로 발길을 돌리니 천상의 샘물 같은 맑디맑은 물이 계곡을 적시고, 건너가는 징검다리는 구름을 밟고 가는 꿈길이다. 누가 관리하지 않았어도 비무장지대로 반세기동안 자연이 스스로 가꾼 생태계의 보고다. 이곳에 생각이 깊지 못한 사람들이 그릇된 자(尺)를 들이밀까 두렵다.

 

두타교.

두타교를 지날 때는 몸도 출렁이지만 가슴이 더 출렁인다. 우회해 밑으로 내려와 출렁다리에서 보이는 두타연은 마음을 더 급하게 한다. 원래 ‘두타(頭陀)’라는 뜻은 깨달음의 길로 가기 위한 고행의 과정인 ‘닦고, 털고, 버린다’라는 무소유의 개념으로 청정하게 심신을 수행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천 년 전에 두타사라는 사찰이 있어 이름을 얻었다고는 하나, 무소유의 개념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자연의 소중한 선물이다. 

 

두타연.

두타연(頭陀淵)에는 높이 10m, 깊이 12m의 폭포가 있다. 폭포 주위를 따라 20m 높이의 바위가 병풍을 두른 듯 하고, 동쪽 암벽에는 3평 정도의 굴이 있다. 바닥에는 머리빗과 말(馬) 구박이 바닥에 찍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열목어 최대 서식지이기도 하다. 

 

두타연 지뢰체험장.

조각공원을 지나 이목정으로 가는 근처의 숲속을 지나는데 굉음이 갑자기 난다. 부비 트랩(booby trap)과 크레모아(Claymore)가 터지고, 지뢰가 폭발하는 지뢰밭 체험장이다. 두 눈 부릅뜨고 주시하는 마네킹초병의 눈초리와 민간인출입접근금지 등은 DMZ생태계의 보고로서 자연생태·안보체험 관광코스로 딱 좋은 곳 같다. 오전 약 18km 행군을 이목정에서 마감하고, 허기진 배를 채운다.

 

을지전망대에서 바라본 펀치볼.

오후에도 지난번에 못간 을지전망대로 간다. 해발 1,089m 높이에 위치한 전망대는 우선 화채그릇처럼 움푹 페인 펀치볼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남으로 지난번에 걸었던 도솔산자락의 ‘만대벌판길’이 아련히 보이고, 해발 천 미터 이상의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 한 개의 면(해안면)으로 오곡이 무르익어 가을 손길을 기다린다.

 

을지전망대.

전망대 안으로 들어가서 북쪽을 바라보니 흙길로 표시된 북방한계선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 너머로 스탈린고지를 비롯해 산들이 보이는데, 구름에 가린 금강산은 흔적만 마음에 새긴다. 

 

가칠봉, 스탈린고지, 매봉, 운봉, 박달봉, 간무봉, 무산 등이 금강산을 에워싸고 있는데, 가칠봉만 우리가 점령하고, 나머지는 군사분계선 이북이다. ‘김일성고지, 모택동고지’ 등 사람이름이 붙은 고지는 혈투 끝에 남으로 편입됐는데, 스탈린고지만 북쪽에 있어 탈환하지 못한 게 아쉽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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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3-01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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