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에코저널=서울】범종이 울리고 나면 법당에서 예불이 시작된다.
송광사 대웅보전 새벽예불.
먼저 범종소리를 받아 법당 안의 작은 종을 크고 성근 소리부터 작고 낮은 소리로 한 번 내린 뒤 다섯 망치를 치면, 창불(唱佛)하는 스님이나 부전(副殿)스님이 오분향례(五分香禮)를 선창한다. 이어서 예불에 참석한 모든 대중이 함께 예불 문을 염송하며 부전스님의 목탁 또는 경쇠 소리에 맞춰 여덟 번 큰절을 한다.
송광사 아미타불과 신중도.
다음에는 발원문을 낭독하거나, 행선축원을 하는 순서가 뒤따른다. 이것이 끝나면 모든 대중이 법당 왼쪽에 마련된 신중단(神衆壇)을 향해 돌아서서 반야심경(般若心經)을 독송한다.
반야심경은 모두 260자로 된 가장 짧은 불교경전이다. 불교사상에서 기본적 개념의 하나인 공(空)의 원리를 간결하되 심오하게 드러낸다. 마지막으로 다시 불단을 향해 돌아서서 반배한 뒤 역시 반배로 대중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예불이 끝난다.
송광사 아미타불과 협시불.
오분향례란 향을 살라 부처님께 공양하는 예식이다. 향을 부처님이 갖추고 있는 다섯 가지 공덕에 비유해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의 다섯 가지 향을 온 누리의 한량없는 삼보에 공양한다는 내용이 이때 염송하는 글귀에 들어 있다. 예불에서는 도입부가 된다. 대법당의 예불소리는 불과 수십 명이 만들어내는 작은 소리지만, 법당은 좋은 울림통이 되어 삼라만상의 모든 중생을 향해 더 깊게 더 높게 더 멀리 퍼져나간다.
저녁 예불을 끝내고 숙소에서 숙면한 다음 새벽 3시 반부터 시작하는 아침 예불에 참여했다가 조반 공양 후 법정스님이 잠들어 있는 불일암으로 이른 아침 산책을 한다.
송광사 불일암 가는 대나무 숲.
불일암 가는 길은 송광사 우측 오솔길로 접어들어 숲 속을 오르내리며 걷는 산책하기 아주 좋은 길이었다. 중간에 펼쳐지는 대나무 숲에서 우러나는 청정한 아침 바람에 댓잎 스치는 소리가 오늘의 알찬 하루를 약속한다.
송광사 불일암 가는 길.
불일암(佛日庵)은 송광사의 산내암자로 송광사의 제7세 국사인 고려시대 승려 자정국사(慈靜國師)가 창건했다. 본래 이름은 자정암(慈靜庵)이었으나, 여러 번의 중수를 거치다가 한국전쟁으로 인해 퇴락했다. 1975년 법정 스님이 중건하면서 불일암(佛日庵)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경내에는 법정 스님이 기거한 요사 2동과 찾아오는 이들에게 대접한 감로수의 수각이 있으며, 경내 북동쪽에 자정국사 승탑이 있다.
송광사 불일암.
법정(法頂, 1932~2010)은 전라남도 해남군에서 태어났으며, 속명은 박재철(朴在喆)이다. 전남대학교 상대에 입학해 3년 중퇴하고, 1954년 효봉 스님을 만난 자리에서 머리깎고 행자 생활을 시작했다. 1973년 함석헌(咸錫憲), 장준하(張俊河)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를 결성해 민주화운동에 동참하다가 1975년 인혁당 사건을 목격한 후 큰 충격을 받아 1975년 본래 수행자의 본분으로 돌아가 송광사 뒷산의 불일암(佛日庵)에서 홀로 수행했다.
불일암 자정국사 승탑.
법정스님은 1976년 대표 저서인 ‘무소유’를 발간한 후 저작 활동으로 명성이 높아져 불일암으로 많은 사람이 찾아오자, 1992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겼다. 1996년 법정의 무소유 사상에 감동한 김영한이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대원각을 시주하자, 1997년 길상사(吉祥寺)를 창건했다.
서울 길상사 일주문.
길상사 개원법회에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참석했고, 법정은 이에 대한 답례로 명동성당에서 특별강연을 가져 종교 간의 화합을 보여주기도 했다. 법정의 유언에 따라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불일암 후박나무 아래에 유골을 모셨다.
법정스님.
무소유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버리는 것”이라는 법정의 말씀을 되새기며 무소유 길을 걷는다. ‘말 없는 덕성의 향이 천리를 날아가 사람을 불러들인다’는 말을 마음에 담아본다.
불일암 법정스님 계신 곳.
오래전에 읽었던 명심보감의 한 구절 ‘德不孤必有隣(덕불고필유린, 덕 있는 자는 외롭지 아니하고 필히 이웃이 있다)’이라는 이 말과 중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송광사로 돌아와 템플스테이를 마친 발걸음은 상쾌한 아침 공기를 폐 속 깊이 들어 마시며 순천 낙안읍성으로 향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