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해파랑길서 만나는 대왕암과 만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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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해파랑길서 만나는 대왕암과 만파정 태양, 파도와 함께 걷는 ‘해파랑길’(8)  
  • 기사등록 2024-03-09 09:3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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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신라시대부터 어업의 중심지인 읍천(邑川)은 오발산에서 발원한 계곡이 고을을 가로질러 바다로 흘러들어가 읍내포(邑內浦)로 불리다가 읍천으로 됐다.

 

대왕암.

대왕암(大王岩, 사적 158호)은 문무왕의 산골처(散骨處) 또는 수중릉으로 알려져 있다. 멀리서 보면 갈매기가 넘나드는 평범한 바위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바위 한가운데에 못처럼 패어 있고, 둘레에 자연암석이 기둥모양으로 세워진 모습이다. 

 

대왕암 용왕제.

신라 제30대 문무왕(文武王, 재위 661∼681)은 무열왕과 문명왕후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 문명왕후는 김유신의 누이 문희다. 이름은 법민(法敏)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시키고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 실질적인 삼한일통(三韓一統)을 이룬 왕으로 신라의 국격(國格)을 다시 바로 세워 새로운 나라의 틀을 다졌다. 사후에 매장(埋葬)이 되어 수중릉이 됐는지, 화장(火葬)한 후 유골이 뿌려진 산골처(散骨處)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주민들은 문무대왕의 영험(靈驗)을 기다리며 용왕제(龍王祭)를 지낸다.

 

대종천 하구.

대왕암에서 다시 조금 올라오면 대종천(大鐘川)이 나온다. 토함산에서 발원해 동해로 흘러나가는 지방하천(2급)이다. 1238년(고려 고종25년)에 몽골군의 약탈로 황룡사 9층 목탑 등이 완전히 소실(燒失)될 때, 49만근의 황룡사 대종을 배에 싣고 대종천에 띄우자 폭풍우가 불어 침몰됐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조선조의 기록에는 동해천(東海川)으로 되어 있는데, 일제강점기 때 전해오는 이야기를 따서 대종천으로 했다고 한다.

 

이견대에서 본 대왕암.

대종천 하구 대종교를 건너 이견대(利見臺)로 간다. 사적 제159호로 지정된 이견대는 대왕암이 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문무왕이 죽은 후에 용이 되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고 한다. 이곳에서 용으로부터 옥대(玉帶)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 대나무를 얻었다고 한다. 2016년 9월 경주지역의 지진피해로 복구공사 중이어서 먼발치로 바라만 보고 지나친다.

 

바위와 소나무.

동해안 해파랑길 탐방 데크를 따라 촛대바위를 지나고 전촌몽돌해변과 솔밭해변을 지난다. 고운모래해변이 있는 감포읍 나정리 상정마을에는 신라 제31대 신문왕이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파정(萬波亭)을 지었다는데, 정자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터에서 조선시대 백자파편과 옹기파편 등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건립시기를 추측할 수 있다.

 

전촌항.

감포항 등대.전촌항을 지나 언덕 솔밭 길을 힘겹게 넘으니 감포항이 멀리 손짓한다. 해안의 제방은 꾼들의 낚시터가 됐고, 감포항의 사각등대는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면마다 형상화했다. 

 

모래채취 반대 현수막.

출어를 기다리는 어항에는 “바다모래 퍼 나르면 어족자원 말살된다”는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인다. 바다 밑의 모래는 어패류의 산란장으로 마땅히 보호해 주어야 하는데, 바람에 씻겨가는 해수욕장의 모래를 보충하기 위해 바닷속을 마구 휘젓는 것 같다. 자연은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계유산 경주역사유적지구.

저녁에는 경주시내의 야경을 위해 세계유산경주역사유적지구로 이동한다. 

 

보수 중인 첨성대.

국보 제31호로 1962년 12월에 지정된 첨성대는 선덕여왕 때 건립됐다. 

 

작년에 일어난 ‘지진피해 안전조치공사’로 인해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한다. 높이 9.17m,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로 원통형으로 남쪽 문에 사다리를 걸었던 자리가 있으며, 30㎝ 높이의 돌 361개 반을 사용해 상층부와 기단을 제외한 27단을 쌓아 올렸다고 한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이며 신라시대 석조물로직선과 곡선이 잘 어우러진 안정감 있는 건축물이다.

 

계림 야경. 첨성대에서 남쪽으로 계림(鷄林)이 야간조명에 눈이 부시다.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설화가 깃든 곳이다. 닭 울음소리에 찾아간 숲속에서 발견된 금궤 안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그의 후손이 신라 13대 미추왕이 된다. 이는 신라지역으로 유입된 신진세력의 모습을 설화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내물왕릉 야경.

계림 옆에는 제17대 내물왕(奈勿王)의 능이 있다. 야간조명이 신라 탄생의 역사를 간직한 비밀스러운 장소는 오늘의 여독을 풀어주는 꿈의 세계로 젖어 든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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