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성 기자
【에코저널=서울】백담사로 올라갈 때는 백담마을에서 운영하는 버스로 갔으나, 내려올 때는 20여리 백담계곡을 두 발로 걸어왔다.
백담사 앞 하천 돌탑.
백담사 앞 하천에는 바닥에는 누가 쌓았는지 모르는 수 천 개 돌탑이 장관을 이룬다. 비가 오면 모두 떠내려 갈 것 같은 아주 작은 탑이지만, 만약 씻겨 내려간다면 적은 정성과 소원을 담아 또 쌓아져 아름다운 장관이 계속 이어질 것 같다.
‘와야바위’라고 이름 지어봤다.
내려오는 길이 좁아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걸음을 멈추고 비껴서야 했다. 맑은 물이 흐르는 소리가 청량하고, 단전 깊이 들어오는 공기는 무거운 몸을 공중으로 붕 띄우는 것 같다. 자연이 빚은 계곡의 바위들은 천상의 예술이다. 하천바닥에 반쯤 물에 잠겨 있는 조각품에 ‘와야바위’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
펀치볼 전경.
주민대피령이 양구지역은 해제됐다고 하지만, 접경지역은 출입이 통제돼 있다. 펀치볼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을지전망대를 가지 못하지만, 펀치볼 둘레길은 걸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펀치볼(Punch bowl)’은 한국전쟁 때 종군기자가 이곳을 보고 분지형으로 큰 화채그릇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주변에 가칠봉 대우산 도솔산 등으로 둘러싸여 양구군 해안면(亥安面) 일대가 분지인 셈이다.
펀치볼 전경.
해안면은 처음에는 바다 해(海)자를 썼는데 뱀이 우글거려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어 유명한 스님을 모시고 지역사정을 소상하게 말하자, 그 스님이 뱀과 상극인 돼지를 말하며 돼지 해(亥)로 바꾸어 쓰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신기하게 뱀이 모두 사라졌다고 한다. 땅이 비옥해 농사가 잘돼 이곳 쌀은 경기도 이천 쌀보다 더 비쌌다고도 하며, 지금은 사과 인삼 등 다른 작물을 재배하는데, ‘시레기’가 인기 있는 특산품이다.
북한 행정구역도.
아침에 안개가 자욱해 내심 걱정도 했으나, 전쟁기념관 앞에 도착하니 시야가 트인다. 전쟁기념관에는 한국전쟁 당시 피의능선 전투, 도솔산 전투 등 펀치볼을 중심으로 치열했던 상황들이 실제무기와 조형물들이 전시돼 있다. 이북5도만 알고 있는 북한의 행정구역도가 9개 도로 표시돼 있는 게 눈에 띈다.
민통선 철조망.
‘만대벌판 길’을 따라 둘레 길로 접어드는 길은 양옆으로 인삼밭이 붉은 꽃을 내밀며 도열하고, 처서의 태양은 뜨겁다. 북쪽 가칠봉의 GP는 북녘을 주시한다. 산자락에는 ‘마티라’라는 노란 꽃이 무리 지어 있다. 박달나무보다 더 육질이 강하고 잎을 물에 풀면 푸른색이 우러나는 물푸레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버섯들이 무리를 이룬다. 민통선을 지키는 철조망은 철통경계를 약속한다.
도솔봉은 여인이 곱게 단장하고 누워 있는 자태로 이곳의 안녕을 지킨다고 한다. 이곳 성황당은 여자가 제를 올리면 여신이 질투하기 때문에 여자는 접근 불가다. 숲 터널로 숨 가쁘게 오르내리며 ‘오유 밭길’을 따라 내려오니 5시간 산행이 끝난다. 내려오는 길목에는 야생화단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이곳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시간을 내어 여유 있게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을지전망대에서 본 펀치볼.
오는 길에 양구읍에 있는 박수근 화백의 미술관에 들른다. 1914년에 양구에서 태어나 가난과 질병의 질곡 속에 1965년 52세의 아쉬운 삶을 살다간 생애였다. 1970년대 박완서의 장편소설 ‘나목’에 박수근과의 교감이 소개되면서 사후에 더 유명해진 화가다.
박수근 화백.
예술은
고양이 눈빛처럼
쉽사리 변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 깊게 한 세계를
깊이 파고드는 것이다.
-박수근-
박수근과 예술정신.
화가의 사후 50주년 추모 특별전 ‘뿌리 깊은 나무, 박수근,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가 8월 30일까지 열려 전시장을 돌아봤다. 시간 관계로 제3전시장을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마냥 무겁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이 꽉 막혀 더디기만 하다.
박수근미술관.
봄부터 중동호흡기증후군이 서부전선으로 가는 길을 방해하더니, 이제는 남북 간 일촉즉발 긴장이 중부전선으로 가는 길을 수정하게 한다.
어쩌랴 우리가 매 순간순간 부딪히며 만나는 게 운명인 것을..., 걷고 싶고, 보고 싶지만, 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이다. 속는 줄 뻔히 알면서도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