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에코저널=서울】며칠 전부터 포탄이 오고가고 분위기가 심상찮다. 오늘도 접경지역을 지나갈 수 있나 하는 걱정뿐이다. 아침 일찍 양구군 동면 월운리에 있는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 앞에서 묵념하고, 일정을 시작한다.
피의 능선 전투전적비.
월운저수지 제방 길과 그 밑으로 이어진 논길을 따라 아침 이슬에 발목을 적시며 걷는다. 팔량리에 있는 ‘펀치볼 전투전적비’ 앞에서 다시 묵념으로 38도선 이북인 이곳에서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치열했던 공방전으로 희생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며,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다시 생각한다.
피의능선 전투가.
‘피의 능선 전적비’는 한국전쟁 당시 보병 5사단 36연대가 미 2사단에 배속돼 북한군 제2군단과 제5군단 예하 4개 사단과 5일간에 걸쳐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아군이 적군 1480여명을 사살하고, 70명을 생포해 탈환한 전적을 기념하기 위해 2001년 6월 양구군과 백두산부대, 참전 36전우회가 격전지 입구인 동면 월운리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펀치볼 전투전적비’는 1951년 8월 29일부터 10월 30일까지 가칠봉, 피의 능선, 1211고지, 무명고지 일대를 중심으로 한 전투에서 육군 제3사단·제5사단·해병 제1사단과 미 제2사단·제7사단·제25사단·제45사단 용사들이 자유와 평화를 위해 용감히 싸우다 산화한 피나는 조국애와 영웅무쌍한 투혼을 천추만대에 길이 남기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1958년 3월에 육군 제3군단에서 건립했다고 한다.
펀치볼지구 전투전적비 설명.
지금은 접경지역을 접근할 수 없어 부득이 일정을 바꿀 수밖에 없다. 당초 계획은 ‘역사와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곳’ 양구군 방산면 송현리 ‘두타연 계곡’을 가려 했다. 발길을 돌려 대암산 솔봉 광치계곡의 옹녀폭포까지만 가고, 오후에는 인제 백담사로 바꿨다.
광치계곡 안내도.
소지섭의 길 안내.
광치계곡 입구에는 자연휴양림 푯말도 보이고 ‘소지섭의 길’ 조형물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소지섭의 길은 지난 반세기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신비의 비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이곳 DMZ 일대를 배경으로 2010년도에 포토에세이집(소지섭의 길)이 출간되면서 자연경관이 뛰어난 6개 코스, 51km가 조성됐다고 한다.
광치령전투 설명문.
광치계곡도 1951년 4월에 적 12사단과 국군 제5사단이 치열한 공방전을 실시해 아군이 승리함으로써 전술적 요충지인 인제(원통)지역을 재탈환하는데, 결정적 여건을 조성한 현장이라고 한다.
호랑이 상.
바쁘고 혼탁한 도심 속 일상을 벗어나 잠시나마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계곡에는 다래가 익어 성큼 가을이 왔나 싶다. 길목에는 노루와 호랑이 모형이 실물 같아 정겹다. 바위 틈새로 힘차게 쏟아지는 옹녀폭포의 물줄기도 밑의 강쇠바위가 강하게 받쳐준다.
옹녀폭포.
옹녀폭포는 옹녀와 변강쇠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에서 정분을 나누다가 이를 보고 크게 노한 산신령의 지팡이에 얻어맞아 옹녀는 그 자리에 엎어져 바위가 됐고, 변강쇠는 50m 지점 아래에 굴러 바위가 됐다는 전설이 있다. 엎어진 바위 가운데 골로 물이 흘러 떨어져 폭포가 되어 옹녀폭포라고 한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예부터 광치계곡을 ‘연애골’로 부르고 있다고도 한다.
백담사 극락보전.
오후에는 인제 용대리로 이동해 백담사로 간다. 이 사찰은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이곳에 창건했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潭)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웠다고 해서 ‘백담사’라고 한다. 한국전쟁 때 소실됐다가 1957년에 재건해 오늘에 이른다.
독립 운동가이며, 시인인 만해 한용운(韓龍雲)이 수도 정진하던 곳으로 사찰 곳곳에 만해의 흔적이 어려 있다. 만해는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며, ‘불교유신론’으로 개혁을 시도했다. ‘님의 침묵’ 등 저항문학 활동에도 앞장섰다.
만해 한용운 상.
만해당 앞의 동상에는 “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임만 임이 아니라 그리운 것은 다 임이다)라고 새겨 있는데, 이는 만해의 시집 ‘님의 침묵’ 서문에 해당하는 ‘군말’에 나오는 글이다. 만해기념관, 만해교육관, 만해연구관, 만해수련원 등 만해의 이름을 딴 전각들이 많다.
삼일운동 33인 중 유일하게 변절하지 않은 분으로 만해기념관에는 그의 사상과 정신이 전시돼 있다. ‘제12대 대통령이 머물렀던 곳입니다’라고 표시된 곳이 있는데, 혹시 만해의 정신이 훼손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