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태고종 총본산 선암사…종조 보우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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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태고종 총본산 선암사…종조 보우국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사·서원을 따라(29)  
  • 기사등록 2024-10-20 08: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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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해질 무렵 화엄사를 출발해 순천시 승주읍에 있는 선암사계곡으로 들어와 저녁식사를 하고, 숙소인 한옥에 도착했을 때는 캄캄한 밤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 분간할 수 있는 것은 어둠뿐이다. 

 

선암사계곡.

석류.

동창이 밝아 밖을 살펴보니 조계산을 병풍 삼아 선암사계곡은 포근한 고향의 품이로다. 숙소 주변의 과수 밭에는 영글어 가는 배, 사과, 석류 등 과일들이 가을 냄새를 확 풍긴다. 

 

선암사 가는 길.

선암사 매표소를 거쳐 들어가는 길은 조계산 자락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어우러진 천상의 목소리다. 햇살을 받은 나무들이 눈 비빌 때 선암사 승선교(昇仙橋)가 기지개를 편다. 

 

선암사 승선교.

승선교는 마치 땅과 하늘을 잇는 무지개다리처럼 조선 때 화강암으로 만든 아름다운 홍교(虹橋)다. 계곡의 폭이 넓어 홍예(虹霓) 또한 유달리 큰 편이고, 아랫부분에서부터 곡선을 그려 전체의 모양이 완전한 반원(半圓)형을 이루고 있어 물에 비춰질 때는 완벽한 원을 이룬다. 

 

승선교 가운데 아래로는 용머리가 조각돼 있다. 이 돌다리도 임진왜란 이후 사찰을 중창할 때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1698년(숙종 24)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을 보려고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뜻을 이룰 수 없어 자살하려고 하자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했다. 대사는 이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圓通殿)을 세우고 절 입구에 승선교를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승선교는 보물(제400호)로 지정돼 있다. 

 

선암사 강선루.

예전 선암사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승선교를 건넜는데, 이는 오욕과 번뇌를 씻고 선계로 들어간다는 성스러움의 상징이다. 이 다리를 지나면 나타나는 강선루(降仙樓)는 팔작지붕으로 아래는 네 기둥 사이를 지나가는 통로였고, 위는(2층) 청마루로 된 중층 문루다. 

 

선암사 일주문.

일반적으로 절의 문루(門樓)는 일주문 안에 세우는 것이 보통이나 일주문 밖에 문루를 세운 것은 강선루가 승선교와 빼어난 어울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강선루는 1929년 일제 강점기에 창건됐다.

 

일주문 입구에 홀로 있는 조각돌.

강선루를 지나 일주문 부근의 길가에는 부도비의 파편 같은 조각돌이 상형문자인지 그림인지를 새긴 채 홀로 서 있다. 볼수록 정감이 간다. 조금 더 올라오면 ‘曹溪山仙岩寺(조계산선암사)’라고 편액(扁額)된 일주문을 지난다. 일주문은 절에서 속계와 법계를 구분하는 경계에 세운 첫 번째 정문으로 문(경계)을 들어서는 순간 부처를 향해 한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조계산 너머에 있는 송광사가 우리 불교계의 최대 종단인 조계종의 근본 사찰이라면 선암사는 조계종 다음으로 큰 교세를 가진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불교 말살정책의 결과로 대처승이 급증했다. 해방 후 1954년 이승만 정부는 대처승을 절에서 몰아내는 불교 정화정책을 내놓자 비구와 대처간의 다툼이 격해졌으며, 1962년 군사정부는 비구와 대처를 통합한다는 형식으로 조계종단을 새롭게 출범시켰다. 

 

이때 대부분의 전통 사찰에 있던 대처승들이 밀려나게 되어 이들이 반발하면서 불교계는 비구승의 조계종과 대처승의 태고종(太古宗)으로 나뉘게 된다. 결국 대처승들은 1970년 고려시대 태고 보우국사(1301~1382)를 종조(宗祖)로 하여 태고종으로 등록하고, 선암사를 태고종의 총림(叢林)으로 발족시켰다. 태고종은 사찰의 개인소유 인정과 승려의 결혼문제를 자율에 맡기고 있다. 출가를 하지 않더라도 사찰을 유지 운영할 수 있는 재가교역자제도인 교임제도를 두고 있다. 

 

선암사 범종루.

선암사는 다른 사찰과 달리 천왕문이 없고 범종루 밑으로 통과하면 바로 대웅전 마당이다. 선암사는 신라 말기 도선이 호남을 비보하는 3대 사찰인 3암의 하나로 창건했다는 설과, 529년(백제 성왕 7)에 아도화상이 세운 비로암(毘盧庵)을 742년(신라 경덕왕 1)에 도선이 재건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로 비춰볼 때 신라 말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도선이 세운 세 암자는 광양 백계산 운암사, 순천 조계산 선암사, 영암 월출산 용암사를 말한다. 

 

선암사 대웅전과 동서 삼층석탑.

고려 중기로 들어서면서 선암사는 1092년(선종 9)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크게 중창된다. 의천(義天)은 문종의 넷째 왕자로, 출가한 뒤 천태종을 개창했다. 선암사를 중창할 때 의천은 대각암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종이 의천에게 하사한 금란가사, 대각국사 영정, 의천의 승탑으로 전하는 대각암 승탑이 선암사에 전해오고 있다. 한때 화재가 자주 발생하는 것을 산강수약(山强水弱)한 지세 때문으로 봤다. 화재 예방을 위해 1761년(영조 37)에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으로, 절 이름을 ‘해천사(海泉寺)’로 바꾸기도 했었다. 

 

선암사 대웅전 석가모니불.

선암사의 주축을 이루는 대웅전 영역 뒤쪽으로 원통전 영역, 응진각 영역, 각황전 영역이 있다. 이들 영역을 이루는 여러 전각들은 조금씩 비껴있으면서도 이가 물린 듯 줄짓고 있다. 전각과 전각 사이에는 작은 화단이 마련돼 갖가지 꽃나무가 사시사철 피고 지며, 경내를 치장한다. 전각들 대부분이 전면 증축되거나, 개축되지 않고 있다. 보수가 필요한 부분들만 조금씩 손을 보며 가꾸어진 덕택에 선암사에서는 남다른 격조와 고풍스러움을 풍긴다. 

 

선암사 경내에서 가장 개성적인 건물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전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 정방형을 이루는 몸체에 중앙 한 칸만 합각지붕을 내밀어 전체적으로 ‘丁’자형 평면을 이루게 했다. 후사가 없던 정조는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해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순조(純祖)다. 순조는 자신이 태어나게 된 데 보답한다는 뜻으로 선암사에 대복전(大福田)이라는 현판을 써주었다. 이 현판은 지금도 원통전에 걸려 있다. 이후 다시 천(天)과 인(人)자를 한 자씩 더 써주었다고 하는데, 두 글자의 편액은 선암사에서 따로 보관하고 있다. 

 

선암사 선암매.(홍매)

선암사 무우전 담밖 매화길.

원통전 담장 뒤편의 백매화와 각황전 담길과 후문 길의 무우전 담 밖으로 홍매화 여러 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원통전 앞의 선암매는 천연기념물(제488호)로 지정됐으나, 정확히 기록된 문헌이 없어 수령은 알 수 없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 년 전에 천불전 앞의 와송(臥松)과 함께 심어졌다는 설만 있어 선암사의 역사와 함께 한 것으로 짐작한다. 선암사 매화를 보기 위해 매년 초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선암사 무량수각(추사체)

불교강원(佛敎講院)에는 ‘无量壽閣(무량수각)’이라는 추사체(秋史體) 글씨의 편액이 걸려 있어서 혹시 추사가 다녀갔나 했는데, 이는 해남 대흥사에 있는 추사의 글씨를 집자(集子)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설선당 뒤뜰에는 은목서 세 그루가 자태를 뽐낸다. 

 

은목서.

은목서는 상록활엽소교목으로 중국이 원산지고, 남부지방에서 정원수로 심는다. 생장이 빠르며, 꽃은 9월에 황백색으로 엽액(葉腋)으로 뭉쳐 달리고 향기가 진하다. 

 

선암사 뒷간.

뒷간 내부.

선암사에서 독특하게 눈길을 끄는 것은 해천당 옆에 자리 잡은 뒷간이다. 입구에 ‘뒤깐’이라고 쓰인 간판이 걸려 있다. 규모가 크고 깊다. 깔끔하고, 냄새도 없다. 고풍스러운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丁’자형 뒷간이 선암사의 분위기를 한마디로 대변한다. 바닥의 짜임새도 우수하다. 내부를 남녀 구분한 것도, 많은 사람을 수용하도록 2열로 배치한 것도 특이하다. 벽의 아랫부분에는 살창을 내어 환기구 역할도 한다. 

 

언제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100년 이상 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절집 뒷간 같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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