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우리나라 최초 주자학자 ‘안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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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우리나라 최초 주자학자 ‘안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산사·서원을 따라(7)  
  • 기사등록 2024-08-04 08: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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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부석사를 빠져나와 소수서원으로 향하는데, 마침 점심때다. 영주시 단산면은 지나가는 길목으로 식사를 하기 위해 중국식당을 찾았다. 알고 보니 ‘자장면’ 요리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소문난 음식점이라고 한다. 

 

자장면으로 식도락(食道樂)을 하고 나오니 길거리를 지키고 있는 ‘情鄕丹山(정향단산)’ 표지석이 다정하게 안기고, 영주의 지붕이 되는 소백산 줄기가 더 정겹게 다가온다. 

 

영주시 단산면의 정향단산.

사적(제55호)으로 지정됐으며, 유네스코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소백산 죽령(竹嶺)에서 흘러내려 이름이 된 죽계천(竹溪川) 변에 자리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소수서원 표지석.

1542년(중종 37)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순흥 출신 고려의 유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사묘(祠廟)를 세웠고, 다음 해에 백운동서원을 건립한 것이 서원의 시초다. 원래 이 자리는 신라 후기 사찰인 숙수사(宿水寺)가 있던 자리로 안향이 젊은 시절 공부했던 곳으로 당시 유물로는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 

 

소수서원 당간지주.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李滉)이 1549년(명종 4)에 왕에게 건의해 ‘소수서원’이라는 친필 현판과 서적을 하사받는 등 국가의 공인과 지원을 받음으로써 서원제도의 정착에 디딤돌을 놓았다. 

 

‘소수(紹修)’라는 이름은 ‘학문을 이어 닦게 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서원의 일반적인 배치방식인 전학후묘(前學後廟)가 아니라 동학서묘(同學西廟)의 독특한 배치로 지어졌고, 개개 건물의 배치도 자유롭다. 이러한 현상은 서원이 정착되기 이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으로 추정된다. 

 

소수서원 은행나무.

소수서원 소나무 숲.

소수서원의 입구에는 소나무 숲이 낙락장송(落落長松)을 이루고 있다. 이 소나무 숲은 수백 그루의 소나무가 가지를 운치 있게 길게 축축 늘어뜨리고 서원에 가까운 것일수록 서원 쪽으로 숙이고 있어 마치 공경을 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죽계(竹溪)와 닿은 평지에 있는 소수서원이 풍수적으로 뒤쪽이 허하다는 단점이 있어 소나무 숲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숲의 소나무들은 겉과 속이 모두 붉은 금강송(金剛松)으로 수령이 수백 년에 달하는 것이 많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푸르름이 선비의 기개(氣槪)와 닮았다고 하여 ‘학자수(學者樹)’로도 불린다. 

 

소수서원 백운동.(강학당)

정문으로 들어서면 먼저 강당인 명륜당과 마주하게 된다. 강당은 유생들이 모여서 강의를 듣는 곳으로 넓은 마루를 중심으로 온돌방이 달려 있다. ‘白雲洞(백운동)’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는 강학당(講學堂)은 동향을 하고 있는데 규모가 정면 4칸, 측면 3칸이며 팔작지붕이다. 강당 안의 대청 북쪽 면에 명종의 친필인 ‘紹修書院’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뒤에 있는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齋)는 선비들의 기거공간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로 나뉘지만 집은 이어진 한 채다. 

 

서원의 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은 제향을 드리는 일이다. 서원마다 누구를 모시느냐에 따라 그 서원의 품격과 세력이 달라질 수 있어 서원들은 되도록이면 영향력 큰 선비를 모시려 한다. 소수서원은 처음에는 안향을 모시는 사묘로 출발하였는데, 안향 외에도 안보(安輔)와 안축(安軸), 주세붕을 함께 모시고 있다. 사당 뒤로는 장서각(藏書閣)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典祀廳)이 있다. 

 

소수서원 안향 영정.(국보 제111호)

안향(安珦, 1243~1306)은 ‘안유(安裕)’라고도 하는데, 고려시대 사람으로 흥주 죽계 상평리에서 태어났다. 안향은 왕과 원나라 공주인 왕비를 호종해 원나라에 가게 됐는데, 원의 지배를 받는 현실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 주자학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주자를 추모해 그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해 호를 ‘회헌(晦軒)’이라고 지을 만큼 주자학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 원나라에 가서 그곳 학풍을 직접 느끼고 주자서(朱子書)를 베껴와 보급해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로 불린다. 

 

소수서원 제향영역.(문성공묘)

안향은 주자학을 만난 후 주자학이야말로 새 시대를 열어가기에 합당한 사상, 새로운 철학이라고 여겼고, 그의 노력 덕분이었는지 백 년여 뒤에는 마침내 주자학을 수양과 치세의 원리로 삼은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고 유교를 통치원리로 삼는 나라가 나타난다. 

 

소수서원 영정각.

조선시대에 안향을 공경하고 추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영정각에 모신 안향의 영정은 고려 때 그린 것을 조선 명종 때에 다시 고쳐 그린 것으로 국보 제111호로 지정돼 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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