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부자(父子) 전설 깃든 ‘갓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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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부자(父子) 전설 깃든 ‘갓바위’ 영산강 물길 따라(26)
  • 기사등록 2023-10-01 07:09:03
  • 기사수정 2023-12-23 23: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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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영산강 물길 따라 걷기’를 마치며 덤으로 하굿둑에서 가까운 목포의 다른 명소를 더듬어 본다. 우선 출렁거리는 평화교를 건너 ‘연인의 거리’를 따라 갓바위로 향한다. 천연기념물(제500호)로 지정된 목포 갓바위는 서해와 영산강이 만나는 강의 하구에 위치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풍화작용과 해식작용을 받아 만들어진 풍화혈(風化穴, tafoni)이다. 갓바위 일대는 저녁노을이 비치는 바다와 입암산의 절벽에 반사되는 노을빛이 아름다워 일찍이 ‘입암반조(笠岩返照)’라고 했다.


                                         ▲갓바위.


한 쌍으로 이뤄진 갓바위에는 몇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에 병든 아버지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양지바른 곳에 모시려다 실수로 관을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다. 불효를 저질러 하늘을 바라볼 수 없다며 갓을 쓰고 자리를 지키던 아들도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는데, 훗날 이곳에 두 개의 바위가 솟아올라 큰 바위는 ‘아버지바위’, 작은 바위는 ‘아들바위’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이는 바위의 모양이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삿갓을 쓴 사람의 모양 같아서 유래한 것 같다. 또 하나는 부처님과 번뇌를 끊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성자인 아라한이 영산강을 건너 이곳을 지날 때 잠시 쉬던 자리에 쓰고 있던 삿갓을 놓고 간 것이 바위가 되어 이를 ‘중바위’(또는 ‘스님바위’)라고 부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갓바위는 두 개로 이뤄져 있다. 크기는 큰 것이 8m고, 작은 것이 6m 정도다. 목포8경의 하나며, 2008년 4월에 영산강변을 따라 해상보행교가 설치돼 있어 바다 위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보행교의 길이는 298m이며, 밀물 때 약 1m 정도 올라왔다가 썰물 때에는 바닷물을 따라 내려가는 부교(浮橋)로 되어 있다고 한다. 부교를 따라 주변에 ‘목포문학관’이 있어 그곳으로 발길을 향한다.


목포문학관까지의 거리는 약1㎞ 남짓으로 갓바위산 아래로 ‘갓바위 근린공원’이 조성돼 있고, 해안 쪽으로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와 목포문화예술회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산비탈 쪽으로는 문예역사관,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도자생활박물관, 남농기념관 등이 있어 그 앞을 지나는 도로명이 ‘남농로’로 되어 있다. 맨 끝에 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김우진, 극작가 차범석, 문학평론가 김현 4인의 삶과 문학을 기리는 유품, 친필원고, 서적 등을 소장 및 전시하는 목포문학관이 있다.


목포문학관은 원래 목포시 대의동에 1991년 개관한 박화성문학기념관이 그 전신이다. 박화성문학기념관이 용해동 갓바위 문화타운으로 이전하면서 김우진, 차범석, 김현 3인을 추가로 확장한 것이 목포문학관이다. 규모는 대지면적 2825.94㎡에 이르며, 지상 2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지상 1층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장편소설을 집필한 소설가 박화성과 사실주의 극작가 차범석 전시실이, 지상 2층에는 극작가 김우진과 평론가 김현의 전시실이 있다.


                                       ▲목포문학관.


소설가 박화성(朴花城, 1903~1988)의 본명은 경순(景順), 화성은 아호이자, 필명이다. 목포에서 태어나 12세 때 목포 정명여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숙명여고보를 거쳐 1926년 한국여성으로는 최초로 일본여자대학교 영문학부에 입학했다. 21세 때 최초의 단편소설 ‘팔삭동’을 <자유예원>에 발표했고, 이광수(李光洙)의 추천을 받아 1925년 <조선문단>에 ‘추석전야’로 문단에 데뷔했다. 1958년 목포시문학상, 1966년 한국문학상, 1970년 대한민국예술원상, 1984년 3·1문화상 등을 받았다.


극작가 차범석(車凡錫, 1924∼2006)은 목포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서중학교와 광주사범학교를 거쳐 1966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했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밀주’가 가작 입선되고, 1956년 같은 신문에 ‘귀향’이 당선됨으로써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전쟁을 겪은 전후문학 세대로서 사회현실에 대한 풍자와 비판 의식이 강한 작품을 주로 발표했다.


                                          ▲차범석.


극작가 겸 시인인 김우진(金祐鎭, 1897~1926)은 당시 장성군수였던 아버지 김성규(金星圭, 1863∼1936)의 장남으로 태어나 목포에서 활동했다. 한국 연극의 개척자였다. 시는 표현적 자유와 표현의 창조를 강조하면서, 다른 길을 걸었다. 한 개인의 삶 속 절망적인 내면적 상황을 낭만적으로 노래하는 듯이 표현했다.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尹心悳)과 일본 유학 중 사랑에 빠져 현해탄에서 동반 자살했다는 설이 있다.


평론가 김현(金炫, 1942~1990)은 본명이 광남(光南)으로 진도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 불문과를 졸업해 1971년 서울대학교 전임강사가 된 뒤 1990년까지 불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1962년 평론 ‘나르시스의 시론(詩論)’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프랑스의 현대문학과 사상, 특히 실존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아 실존적 정신분석 방법에 비평의 기초를 두었다. 한국문학사에도 관심을 기울였으며, 1989년에 제1회 팔봉비평문학상을 수상했다.


♠영산강을 마지막으로 5대강 걷기 연재가 끝났습니다. 다음 회부터는 ‘한탄강과 임진강’이 계속됩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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