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노자의 ‘상선약수’ 일깨우는 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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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노자의 ‘상선약수’ 일깨우는 섬진강 섬진강 530리를 걷다(14)
  • 기사등록 2023-07-02 07:54:32
  • 기사수정 2023-12-24 10: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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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지리산과 백운산 깊은 계곡사이를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은 바다와 소통하는 유일한 강으로, 자연산 송월 재첩이 나오는 곳이다.


                                 ▲섬진강의 재첩길.


섬진강 재첩은 맛이 시원하고 담백함은 물론 필수 아미노산이 골고루 함유돼 있어 체내 흡수율이 좋고, 단백질 등 영양이 풍부하다. 얼마나 많은 재첩을 잡아먹었는지, 껍질로 길바닥을 두껍게 다 깔아 놓았다.


하동 송림공원 쪽으로 가까이 다가서니 ‘해박한 역사의식’으로 늦게 등단해 짧은 기간에 작가적 지위를 인정받은 소설가 나림 이병주(那林 李炳注, 1921∼1992) 문학비가 섬진강을 배경으로 서있다. “하동포구 팔십리에 물새가 울고(중략)/쌍계사 종소리를 들어보면 알께요/개나리도 정답게 피어 줍니다” 하동포구 노래(남대우 작사)비가 복사꽃 그늘 아래 섬진강을 지킨다.


하동송림공원에 도착하니 오전이 후딱 지나간다. 소나무 아래에서 준비한 쑥떡으로 요기를 달래고 숨을 고른다. 하동송림(천연기념물 445호, 2005년 2월 18일)은 1745년(영조 21) 당시 도호부사(都護府使) 전천상(田天詳)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을 목적으로 섬진강변에 식재해 조성됐다고 한다. 노송의 수피(樹皮)는 거북의 등처럼 갈라져서 소나무의 건강을 알려준다.


섬진교를 건너 섬진강 최종 목적지인 망덕포구를 향해 광양시 다압면으로 이동해 다시 힘차게 걷는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하동송림은 소나무로 만든 성곽 같으나 좌측의 고층아파트가 ‘개발에 편자’ 같다. 자전거 길을 따라 내려가니 전라남도 송정리역과 경상남도 삼량진역을 잇는 경전선(慶全線) 섬진강철교가 보이고, 바로 옆으로 보이는 다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섬진강의 갈대밭.


‘국토종주 섬진강 자전거길(맹고불고불길)’ 옆 하천에는 갈대밭이 잘 조성돼 있다. 하천에 수초가 무성하면 ‘하천의 자정능력(自淨能力)’이 우수하다는 증거다. 그 속에는 수 많은 생명체들이 둥지를 틀고, 그들만의 아주 절실한 존재의 이유가 있음을 알려준다.


남해고속도로 섬진강교 밑으로 하여 하류로 내려간다. 고속도로와 나란히 있는 섬진강매화로도 꽃이 진 벚나무가 터널을 이룬다. 망덕포구 2km 표지판이 왜 이리 반가운지 ‘섬진강 530리 길’의 최종목적지가 눈에 보인다. 망덕포구는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에 위치한 섬진강 하구(河口)다. 망덕포구의 지명은 망덕산(望德山)에서 유래됐는데, 왜적의 침입을 망(望)보았다는 데서 생겼다는 설과, 전북의 덕유산(德裕山)을 바라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망덕포구는 전북 진안군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의 강물이 그 여정을 마무리하면서 광양만을 거쳐 남해바다로 흘러간다. 섬진강은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큰 강 중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기수역(汽水域)이 잘 발달된 지역이다. 기수역은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역으로, 바다와 내륙이 소통하는 유일한 수역이다. 생태계의 숙려(熟廬) 공간이기도 하다.


                                   ▲섬진강의 기수역.


연어와 숭어 등 민물에 산란하는 어종과 뱀장어와 참게 등 바다에 산란하는 어종들이 기수역에서 적응훈련을 한 다음 이동을 하고, 실뱀장어 등 치어들이 바다에서 민물로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다. 전어와 섬진강에서만 잡히는 벚굴과 재첩 등 맛있는 어패류들이 많이 서식하는 곳이 또한 기수역이다. 경제적 생태적 가치는 경작지 환경의 250배에 달하며,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희귀해 가장 보호받아야 할 자연환경이다. 해수와 담수의 여과장치 역할도 매우 크다.


망덕리는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친필 원고가 보존돼 있다가 세상에 빛을 보게 한 정병욱(1922∼1982)의 가옥이 있는 곳이다. 윤동주는 1941년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발간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 하숙집 후배였던 정병욱에게 이 원고를 맡겼다.


정병욱도 학병으로 끌려가기 전에 어머니에게 소중하게 보관해줄 것을 당부해 보존해오다가 8·15광복 후 1948년에 시집으로 발간돼 세상에 나왔다. 정병욱은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로 한국의 국문학 발전에 공헌한 인물이다. 1925년에 지은 정병욱 가옥은 양조장과 주택을 겸한 건물로 문화재청에서 ‘대한민국 근대 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341호)’으로 지정했으나, 관리는 제대로 되지 않는 듯하다.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고, 바다는 강물을 가리지 않는다. 물은 거만하지 않고 자신을 낮추며 아래로 흐른다.


섬진강을 걸으면서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가 자꾸 생각나는 이유는 왜일까?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으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는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여기어 이르던 말이다.


물은 스스로 성내지 아니하고

물은 스스로 다투지 아니하고


물은 스스로 형체를 만들지 아니하고

물은 스스로 낮은 곳으로 찾아간다.

아침에 마시는 한 잔의 물은


우리의 심신을 시원하게 하고

새벽 풍경소리와 어울려 흐르는 물소리는

온갖 풍상을 잊게 한다.


나를 나타내려 애쓰지 말고

굳이 남을 가르치려 덤비지 말고

작은 일에 다투어 승부를 걸지 말고

구름 가 듯 물 흐르듯

그저 물처럼 유유자적하며

흘러가는 물이 되거나.

많은 물을 흐르게 할 수 있는

큰 그릇이 당신이었으면…(完)


-다음 회차부터는 '영산강 물길 따라' 연재로 이어집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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