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금강호반서 ‘금강천리 길 걷기’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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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금강호반서 ‘금강천리 길 걷기’ 마무리 금강 천리 길을 걷노라면(23)
  • 기사등록 2023-05-14 08:00:35
  • 기사수정 2023-12-23 2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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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어제는 비도 내리고 해서 걷기보다는 주변 명소를 탐방하는데 더 주력한 것 같다. 그리고 아마 내 고향에서 가까운 곳들이라 더 가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어려서 봄·가을로 소풍갈 때 빠지지 않고 원족(遠足)을 했던 숭림사를 찾아간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던 입구에는 잎이 진 가지들만 앙상하다. 숭림사란 명칭은 선종의 창시자인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중국 하남성(河南省) 숭산(崇山)의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 동안 면벽좌선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숭산의 ‘숭’자와 소림의 ‘림’자를 따왔다는 설이 있다.


또한 함라산숭림사(咸羅山崇林寺)는 금산사의 말사로 금강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익산시 웅포면에 있는 작은 고찰이다. 이 사찰은 고려 충목왕 원년(1345년) 선종(禪宗) 사찰로 창건되었다고 전할 뿐 그 뒤의 변천은 확실하지가 않다. 대웅전 대신 보광전(보물 제825호)이 있고 그 안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木造釋迦如來坐像) 등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확실하게 달라진 것은 어려서 소풍 때 보았던 건물의 수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아마 중창불사(重創佛事)를 많이 했나 보다.


웅포면 고창리 금강변으로 이동하여 웅포중학교 부근에서 제방 자전거도로에 올라 ‘곰개나루’를 향해 본격적인 걷기를 시작한다. 골프장 앞으로 금강 수면이 뿌연 안개 속에 넓게 펼쳐지는데 강 건너 충남 서천군 신성리 갈대밭은 전혀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수면 위는 정적이 흐를 만큼 고요하고 이미 찾아온 철새들은 자맥질을 하며 한가롭다.


웅포(熊浦)라는 지명은 “옛날 금강의 빼어난 경치에 반한 큰 곰 한 마리가 이곳에 살면서 맑게 흐르는 강물을 보면 하늘에 있는 해가 금강 위에도 또 하나가 생기는 것을 보고 무척 신기해하며 이를 갖고 싶어 궁리 끝에 물을 다 마시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머리를 내밀고 강물을 마셨는데, 전혀 줄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곰이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고 해서 ‘곰(熊)개(浦) 나루’라고 부른 데서 연유했다. 순수한 우리말인 ‘곰개’를 한자화 하면서 웅포가 됐다.


강변에는 웅포관광단지가 마련돼 오토캠핑 나온 캠프족들로 붐빈다. 금강을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자전거들도 캠핑장 옆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선착장에는 유람선이 손님을 기다린다. 용왕제를 모시는 용왕사(龍王祠)에 올라 금강을 걷는 동안 보살펴 주심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원래 곰개나루는 강경나루로 오고가는 중간 기착지로서 많은 물산이 풍부해 자연스레 시장(市場)이 열렸던 곳이다. 인근 주민들은 강경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보다 곰개장에서 사는 것이 더 신선하고 값이 싸다고 여겼으며, 그래서 소리 소문 없이 실속을 챙기는 시장이었고, 새로운 문명이 들어오는 창구역할을 한 곳이다.


곰개나루를 지나 커브길 언덕 정상은 군산시가 시작되는 나포면(羅浦面)이다. 이 언덕을 넘어 다시 평지의 강변길을 걸어가면 공주산(65m)이 나온다. 이 산은 공주에서 떠 내려왔다고 하여 ‘공주산(公州山)’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또 고조선 준왕이 위만에게 패해 처음으로 도착한 곳으로 준왕의 딸이 머물렀다고 해서 ‘공주산(公主山)’으로도 불린다. 서해바다와 금강을 함께 조망할 수 있어서 맑은 날 해넘이는 일품이다.


                                  ▲원나포마을 표지석.



공주산을 지나자마자 ‘원나포마을’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원래 이곳은 조선조 때 임피군 하북면에 속했던 ‘나리포’란 마을이었다. 1720년(숙종45년) 조창이 설치되고, 관영포구가 열리면서 나리포가 언젠가부터 나포로 줄여 부르게 됐다.


제주도를 비롯한 도서지역의 해산물과 수공업제품을 내륙의 곡식 등과 교류되는 시장으로 활기를 띠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 때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나포면이 되면서 면소재지가 옥곤리로 되자, 나리포가 본래의 ‘나포’라는 뜻으로 ‘원나포’로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옥곤리로 접어들자 십자들이 넓게 펼쳐지고 강변 제방에는 철새를 바라볼 수 있는 시설들이 죽 늘어서 있다. 초입에는 대나무로 발을 만들어 울타리처럼 쳐놓고, 중간중간에 눈으로만 볼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대나무 발 철새 탐조대.


조금 떨어진 곳부터 회랑(回廊)식 건물을 만들어 실내에서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돼 있다. 이는 사람에 민감한 철새들에게 사람의 실체를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고, 사람에게도 추운 강바람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방법이다.


나포십자들은 원나포에서 서포리까지 갈대가 무성했던 갈대밭이었는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간척사업을 통해 총 530ha의 농경지로 바뀐 곳이다. 십자들 인근은 강폭이 넓고 사람들의 접근이 비교적 적어 경계심이 강한 가창오리들이 주로 생활하는 곳이다. 가창오리는 군집성이 강한 철새로 금강에서만 약50만 마리가 월동을 한다고 한다. 겨울 석양하늘에 가창오리가 연출하는 군무(群舞)는 자연이 선물하는 최고의 황홀한 예술이다.


나포면 서포리에는 장류(醬類) 음식만 고집스럽게 만들어 식당을 운영해 오다, 폐교를 개조해 더 넓게 만든 식당에서 오전을 마무리했다. 서해안고속도로 금강대교 밑에서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 오전의 안개는 다 걷히고 시야가 트인다. 금강하굿둑으로 호수가 된 금강호에는 철새들이 무리 지어 노닌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금강성산지구 생태습지’로 들어선다. 갈대와 억새가 어우러진 생태습지는 훨씬 밝은 햇살에 더 아름답게 빛난다. 넓은 하천부지에 띠풀, 달뿌리풀, 수크렁, 꽃창포, 연꽃 등이 연못과 습지에 골고루 식재돼 있어, 새싹이 돋아나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싱그러운 생태습지를 만끽하며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 것 같다.


걸어갈수록 금강천리 길의 종점인 금강하굿둑이 점점 가까워 온다. 금강하굿둑은 전북 장수군 뜬봉샘에서 장장 401㎞를 흘러나와 서해바다로 들어가는 금강하구 안쪽인 전북 군산시와 충남 서천군을 잇는 둑으로 각종 용수 확보와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다. 하굿둑이 건설된 후 금강의 종점이 되어 금강의 연장거리도 395㎞로 6㎞가 짧아졌다.


하굿둑은 총연장 1841m로 1990년에 완공돼 연간 3억6천만 톤의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둑 위로는 왕복4차선 도로가 개설됐으며, 장항선과 군산선이 연계돼 전북 익산까지 철도가 연결돼 사람의 왕래는 쉬워졌다. 부근에는 철새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어도(魚道)가 설치돼 바다와 민물로 왕래하는 통로가 있다. 하지만 바다와 민물이 소통이 안 되어 자연은 답답해하는 것 같다.


                                      ▲신성리갈대밭.


하굿둑을 건너 충남 서천 금강호반에서 ‘금강천리 길 걷기’를 마무리하고, 한산면으로 이동해 신성리갈대밭을 거닐며 금강의 처음과 끝을 조용히 정리해 본다.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을 빼 먹지는 않았는지? 사전 계획대로 제대로 실행을 했는지? 같이한 도반(道伴)들에게 언행으로 실수를 하여 부담을 주지 않았는지? 등등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리고 강 건너 멀리 아침에 걸어왔던 전북 웅포의 곰개나루가 어머니의 포근한 품처럼 따뜻하게 다가온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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