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금오서원 ‘원계칠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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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금오서원 ‘원계칠조’의 교훈 낙동강 천 삼백리길을 따라(23)
  • 기사등록 2022-12-03 08:15:06
  • 기사수정 2023-12-24 08:4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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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경상북도기념물 제60호(1985년10월15일)인 금오서원(金烏書院)은 고려 말 학자 야은 길재(冶隱 吉再, 1353∼1419)의 학문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1570년(선조 3) 금오산 밑에 건립한 서원이다.


                                      ▲금오서원.


금오서원은 1575년(선조 8)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됐으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돼 1602년(선조 35)에 지금의 선산읍 자리에 옮겨지었다. 1609년(광해군 1)에는 다시 사액돼 중수했다. 길재의 출생지인 봉계리를 향해 남향으로 서 있는데, 앞쪽으로 감천(甘川)과 낙동강이 만나는 물길이 내다보인다.


길재는 고려 말 성균관박사(成均館博士)를 지냈다. 1389년(창왕 1)에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임명됐으나, 이듬해 고려의 쇠망을 짐작하고 노모의 봉양을 구실로 사직했다. 1390년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충절에서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낙향해 금오산 기슭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다. 서원에는 성리학의 대통을 이어받은 김종직(金宗直), 정붕(鄭鵬), 박영(朴英), 장현광(張顯光) 등을 추가로 배향해 5현의 위패를 모셨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은 47개의 서원 가운데 하나다.


                           ▲원계칠조(院戒七條).


금오서원에는 원계칠조(院戒七條)가 있다. ▲汚穢窓壁(오예창벽: 서원주위는 더럽히지 말 것) ▲損傷書冊(손상서책: 서책이나 기물을 손상하지 말 것) ▲遊戱廢業(유희폐업: 서원에서 노래하고 춤추지 말 것) ▲群居無禮(군거무례: 때지어 무례한 짓 하지 말 것) ▲干索酒食(간색주식: 술과 고기는 삼갈 것) ▲說話亂雜(설화난잡: 대화는 조용하고 음담패설을 하지 말 것) ▲衣冠不正(의관부정: 의관은 부정하게 하지 말 것) 등 하지 말 것 등 7가지를 정해 놓았다. “이 칠금을 범한 자는 이미 왔으면 돌아가고, 아직 오지 않았으면 아예 오지를 말라(犯此七禁者 己來卽歸 未來卽莫來 기래칠금자 기래즉귀 미래즉막래)”고 타이른다.


구미시(龜尾市)는 1995년 선산군과 통합해 도농통합시라는 새로운 형태의 구미시가 됐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龜尾)는 원래 선산군(善山郡)의 면(面)지역이었다가 1961년 5·16 이후 1963년 읍(邑)이 됐다. 산업화과정에서 공업지역으로 발전하면서 1978년 시(市)로 승격됐다. 선산은 물산과 인구가 풍부하고, 사육신의 한사람인 하위지(河緯地)를 비롯해 길재(吉再)·김종직(金宗直) 등 많은 인물이 배출돼 영남 인물의 보고로 손꼽히는 지방이었다.


오후에는 태조산(太祖山, 692m, 일명 냉산) 중턱에 있는 도리사(桃李寺)로 향한다. 창건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도리사(桃李寺)는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전해진다. 중국에서 불도를 닦고 귀국한 고구려의 아도(阿道)가 신라 소지왕(炤知王)의 신임을 얻어 불교를 일으키게 됐다. 이 무렵 왕궁에서 돌아오던 아도가 이곳 태조산(太祖山) 밑에 이르자 때가 겨울인데도, 산허리에 복숭아꽃과 오얏(자두)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고 했다.


“해동최초가람태조산성지도리사(海東最初伽藍太祖山聖地桃李寺)”라고 쓰인 일주문에서 4.5㎞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도리사는 본당 밑 주차장까지 구절양장(九折羊腸) 산길이다. 계단을 올라가 처음 대면하는 것이 ‘선실(禪室)과 승방(僧房)’으로 사용하는 설선당(說禪堂)이다.


개인의 소원을 적어 연줄처럼 걸어 놓은 석벽을 지나 다시 계단으로 접어들어 활짝 웃는 ‘천진동자불’을 뒤로하고 올라가면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이 나온다. 전각 뒤에는 진신사리를 모신 높이 8m의 웅장한 보탑을 세워놓고 전각 안에는 불상 대신에 기도를 올릴 수 있는 단을 만들어 놓았다.


                                    ▲아도화상 좌상.


적멸보궁에서 측면 계단을 이용해 내려오면 아도화상의 좌상이 있고 향을 피울 수 있는 향로가 설치돼 있다. 아도화상은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하신 분으로 “향의 의미와 치유 효능에 대해서도 처음 알게 해주었다”는 의미에서 이곳에 오는 사람들에게 ‘아도화상 앞에 향을 피워 몸과 마음을 맑히는 아름다운 불교의 향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도리사의 본당인 극락전(極樂殿)과 일반 석탑과는 전혀 그 형태가 다른 특이한 모습의 도리사 석탑(石塔) 나온다. 지면 위에 길게 다듬은 돌 10매를 놓고 그 위에 탑의 기단부분을 세웠다. 기단은 사면에 네모난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의 각 면에 직사각형 판석을 병풍처럼 둘러 세웠다. 탑신부분은 3중으로 각층마다 작은 석재를 중첩해 얽거나 짜서 탑신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벽돌탑을 모방한 모전석탑(模塼石塔)과 비슷하며, 건립 시기는 고려중엽으로 추정되고 높이는 3.3m다.


극락전 우측계단으로 내려오면 아름드리 소나무 숲에 아도화상이 앉아 도를 닦았다는 좌선대가 있다. 뒤편에는 ‘아도화상 사적비 및 도리사 불량답 시주질비(阿道和尙 事跡碑 및 桃李寺 佛糧畓 施主秩碑)’가 서있다. 다시 극락전 마당으로 다시 올라오면 승려들이 수행하는 선방(禪房)이 있는 56칸(정면7칸 측면8칸) 규모의 ㄷ자형 건물인 태조선원(太祖禪院)이 있다.


다시 낙동강 변 구미해평청소년수련원 입구로 이동한다. 습문교 아래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초목이 우거진 낙동강 해평습지는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 재두루미, 고니 등 겨울 진객인 철새가 매년 10월 중순부터 다음 해 3월 말까지 월동을 하는 철새도래지역이다. 소음과 불빛에 예민한 이들 철새에게 편안하게 쉬었다 갈 수 있게 하려면 주민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구미의 진산 금오산(金烏山)은 가까이 갈수록 더 큰 산으로 다가온다.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 산지에서 발원한 한천(漢川)이 만나는 구미시 구포동의 낙동강은 덧없이 넓어만 보인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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