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수중으로 사라진 고향, ‘수양개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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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수중으로 사라진 고향, ‘수양개마을’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27)
  • 기사등록 2022-03-12 07:51:06
  • 기사수정 2023-12-24 10: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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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출발점은 단양군 단성면 애곡리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 앞이다. 이 전시관은 1983년 충주댐 수몰지구 문화유적 발굴조사의 일환으로 발굴을 시작해 2001년까지 총 8차례의 조사로 중기 구석기시대로부터 원삼국시대까지의 문화층에서 발굴된 유물과 연구자료들을 정리, 전시하고 있다.


                           ▲수양개 선사유물전시관.


바로 옆에는 일제강점기 때 파놓아 방치됐던 터널에 영상과 음향시설, LED조명 등 빛의 테마로 조성한 ‘수양개 빛터널’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수양개 망향비.


충주댐이 준공된 후 마을 전체가 수몰된 수양개마을의 망향비(望鄕碑)가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목을 잡는다. 수몰되기 전 가옥의 배치와 당시 살았던 가옥 주인들의 이름을 새긴 석판이다.


1980년대 중반 이곳 출장 중에 만난 어느 할아버지는 “북한 실향민들은 통일이 되면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지만, 누대를 이어온 정든 고향을 저 물 속에 묻어야 하는 나는 통일이 되어도 영원히 갈 수 없는 신세”라며 장탄식을 하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그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우리가 사는 지금이 있지 않았을까?


                                    ▲단양대교.


남한강 위로는 중앙고속도로 단양대교와 적성대교가 하늘을 받친다. 중앙고속도로는 강원도 춘천시에서 대구를 경유해 부산까지 이어주는 중부 내륙지역의 자원개발 및 지역 간 균형개발을 촉진하며 관광도로 역할을 한다. 2001년 12월에 개통된 단양대교의 교각 높이는 103m로 국내 다리 가운데 가장 높다. 중앙고속도로를 대표하는 구조물로 2006년 정부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포함됐다. 단양8경에 덧붙여 단양 제9경으로 불리기도 한다.


적성대교는 단양군 적성면과 단성면을 연결하는 교량이다. 단양군 적성면은 예로부터 적산(赤山)이라 불러왔다. 온 고을이 ‘붉은 빛을 띠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적성면에는 금수산을 비롯한 문화유적지가 많이 있으나 외지와 단절된 교통 낙후지역으로 머물러 있었다. 1969년 다릿발 두 개로 시작해 선거 때마다 정치꾼들의 선거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 됐다. 주민들의 모금으로 추진하다가 충주댐 건설로 물거품 된 것을 1989년 주민번영회를 중심으로 재추진해 2009년 3월에 준공했다.


적성대교를 건너면 단성면이다. 면역이 거의 월악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산수가 아름다운 고장 단성면(丹城面)은 단양군의 남서쪽에 위치한 면으로 면 소재지는 상방리다. 월악산 줄기의 영향으로 면 전체가 험준한 산지를 이루며, 도락산·용두산·사봉·두악산 등이 솟아 있다. 충주호를 이루는 남한강이 북쪽 경계를 따라 흐르며, 단양천과 죽령천이 충주호로 흘러든다. 국보인 신라적성비와 단양 8경 중 5경(구담봉·옥순봉·상선암·중선암·하선암)이 있으며, 현재 상방·하방·중방리 등의 14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적성대교를 건너서 마을로 접어들면 단성보건지소 앞에 딘양 봉서정이 있다. 봉서정(鳳棲亭)은 말 그대로 ‘봉황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 정자는 1602년(선조35)에 단양군수 이준이 창건하고, 영조 때 군수 조정세와 철종 때 군수 심원택이 중수했으며,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첩인 구학첩(丘壑帖)에 그려져 있다. 일제강점기(1912) 때 이곳 지명을 봉화면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단양을 상징하는 봉서정이 있어서다. 단양군에서는 지역의 역사성 회복을 위해 2013년 6월에 현재의 자리에 복원했다고 한다.


단성면사무소 뒤편에는 단양향교가 있다. 1415년(태조15)에 세운 단양향교(丹陽鄕校)는 명종(明宗) 초기 퇴계 이황(李滉)이 군수로 있을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영조 때 두 차례 고쳤으며,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수리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 등과 부속건물이 있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었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만 지낸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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