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가슴 찡한 사연 ‘권춘섭집앞 버스정류장’
기사 메일전송
<와야(瓦也) 연재>가슴 찡한 사연 ‘권춘섭집앞 버스정류장’ 한강의 시원(始原)을 따라(3)
  • 기사등록 2021-12-18 08:30:49
  • 기사수정 2023-12-23 08:08:22
기사수정

【에코저널=서울】원동을 지나면 태백시 상사미동(上士美洞)이다. 골지천을 따라 도로를 걷다보면 좌측 산기슭에는 조성된 지 얼마 안 되는 자작나무군락지가 나오고 아치형 좁은 다리가 걸쳐있으며, 그 옆에는 ‘권춘섭집앞’ 버스정류장이 있다.


다리 아래로는 장마철 외에는 얼마든지 통행이 가능할 것 같아 ‘선심성예산의 낭비가 아닌 가’ 하는 생각도 해보며 다리 위도 올라가 본다. 마을이라고는 한 가구 주택만 보일 뿐 이용자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권춘섭집앞 버스정류장.


그러나 이 정류장에는 가슴 찡한 사연이 있다. 원래 정류장 이름은 ‘권상철집앞’이었다. 농사를 짓던 권상철은 1999년 아내가 암으로 병원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거리가 먼 이웃정류장까지 걸어 왕복하는 아내를 보며 가슴 아파하다가 태백시에 건의했고, 태백시는 주민과 버스회사를 설득해 버스정류장을 세우게 됐다. 그런데 딱히 대표할만한 건물이 없어서 ‘권상철집앞’으로 했다. 그러던 중 부부가 세상을 떠나자 장남 권춘섭이 그 집에 남아 농사를 이어가자 명칭을 대물림하게 됐다고 한다.


                                        ▲보리밭.


아스팔트길만 걷다가 파릇파릇 봄기운이 물오른 보리밭을 거닐 때는 마음도 몸도 가뿐해진다.


다시 제35호 국도(백두대간로)로 접어들어 상사미1교를 건너면 치매안심치료를 전문으로 돌보는 ‘태백시 사조보건진료소’가 맞이한다. 상사미동과 하사미동은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와 경계를 이루는 덕항산(德項山, 1,071m) 자락의 고지대에 자리 잡은 마을로, 태백시 삼수동의 법정동이다.


허목(許穆)의 <척주지(陟州誌)>에는 현재의 하사미동과 상사미동을 ‘삼(蔘)’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옛날 이 지방에서 인삼을 공물로 상납하는 삼공(蔘貢)이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후에 ‘삼(蔘)’은‘사미(士美)’로 변형됐다.


                                       ▲심밭골가는길.


나뭇가지에 메달아 놓은 ‘심밭골가는길’ 이정표가 심마니들의 숨결을 이어주는 삼공(蔘貢)의 표시 같다. 고향 같은 평화스럽고 포근한 마을에는 사람의 훈김이 빠져나가 금방 폭삭 주저앉을 것 같은 빈집이 짠하다.


옛날 같으면 더없이 반가웠을 장승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맥이 풀린 듯 기운이 없어 보인다. 어린학생들이 재잘거리며 희망을 속삭이던 초등학교도 눈에 띄는 대로 폐교상태다. 이대로 시골은 젊음이 사라지고 고향도 묻히는 것일까?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관련기사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21-12-18 08:30:49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확대이미지 영역
  • ‘동해 품은 독도’ 촬영하는 박용득 사진작가
  • <포토>‘어도를 걸을 때’
  • 설악산국립공원 고지대 상고대 관측
최신뉴스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