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무당개구리는 지금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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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무당개구리를 찾아온 밥

로버트 카플란. 1980년대 중반, 실험실을 찾아온 그는 자신을 '밥'으로 불러달라 했다.


대학원생이던 우리는 미국에서 온 학자에게 다짜고짜 '밥!' 하기 민망해 그가 떠날 때까지 '미스터 카플란'이라 했고, 그는 우리에게 친근감을 느끼지 않았을 것 같은데, 무당개구리를 채집하러 한국에 왔다고 했다.


미국 애리조나 주 일부 산악지역에 드물게 분포하는 무당개구리가 어떻게 미국과 한참 떨어진 한반도와 그 북쪽인 만주와 시베리아의 일부에 대량으로 서식하는지 이유를 찾고 싶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말하는 무당개구리는 'Oriental Firebellied Toad'로, 직역하면 '동양 붉은배 두꺼비' 쯤 되려나. 우리는 개구리라 하는데 피부가 오돌토돌해서 그런지 영어는 두꺼비 범주에 놓았다.


아무튼, 미국 학위를 가진 지도교수의 당부 조의 명령에 의해 그를 데리고 무당개구리를 찾으러 간 곳은 강원도 춘천시 강촌이었다.


떠들썩한 스키장과 농약이 난무하는 골프장이 들어선 지금이야 버림받았지만 예전의 강촌은 구곡폭포 이외에 한적하고 깨끗한 시골이었고, 야외실습 과목의 조교를 담당하면서 몇 차례 다녀와 산기슭과 주변 다랑논에 무당개구리가 무지 많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점심을 위해 들른 강촌의 허름한 식당은 메뉴가 매운탕뿐이었다. 젊은 부인은 처음 대하는 외국 손님을 위해 고추장을 넣지 않은 비빔밥과 계란을 특별히 내놨는데, 그게 감동을 주었거나 우리와 달리 젊은 부인은 그를 금방 '밥'이라 불렀나 보다.


이듬해와 그 이듬해에도, 거의 해마다, 우리에게 연락도 없이 강촌의 그 식당을 찾은 '밥'이 '밥'을 먹었다고 한다.


로버트 카플란, 아니 밥은 무당개구리의 암수를 피부로 구별했다. 등의 오돌토돌한 작은 돌기의 끝에 구멍이 있으면 수컷 아니면 암컷이라며. 우린 반신반의했고.


♠흔하디흔한 그놈

1970·1980년대 강원도에서 군 생활한 이는 다 기억하는 무당개구리. 흔하디흔한 그놈은 비가 오면 내무반이나 식당, 심지어 화장실까지 들어오는 바람에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다.


낫으로 분지른 싸리를 대충 묶어 만든 빗자루로 쓸어내려고 하면 몸을 획 뒤집어 붉은 바탕에 검은 점이 선명한 배를 드러낸 뒤 부들부들 떨어, 기분 섬뜩하게 만들던 놈.


구슬픈 비가 밤새 내린 장마철, 아침 점호를 마치고 부대 밖으로 구보할 때면 자동차 바퀴에 짓눌린 사체가 발 놓을 데 없이 널리던 녀석이었다.


시원한 계곡의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 펴고 오수를 즐길 때, 입을 너무 크게 벌리지 않아야 했다. 가슴을 타고 넘어오는 무당개구리란 놈이 쏙 빠질 수 있었다.


무당개구리는 순간 발을 허우적거릴 거고, 자던 이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다물고 쩝쩝거리다 확 뱉어내겠지만, 무당개구리 처지에서 생각해보자.


어둡고 후끈거리는 입속에서 얼마나 당황하겠는가. 본능적으로 피부의 독샘은 희고 끈적끈적한 액체를 내보낼 테니 무당개구리 독소의 쓴맛을 감당하지 못하는 인간은 혀를 한참동안 내두를 게 틀림없다.


그래서 고추개구리라고 말하기도 하는 무당개구리의 독소는 사람에게 위험하지는 않고 오히려 피부의 화농을 제거하고 욕창을 방지하는 약에 쓰는 이도 있다고 한다. 한데, 무당개구리가 요즘 통 보이지 않는다.


♠멸종위기에 처했다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은 2004년 우리 무당개구리를 멸종위기 적색목록에 기재했다. 서서히 서식지를 잃으며 줄어드는데, 민간요법의 약재로 중국인들이 남획하고 유럽과 미국에서 애완용으로 많지 않은 개체를 수입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제자연보전연맹은 보호를 외치건만 우리 환경부는 보호대상으로 지정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많다고 여기는가. 얼마 전까지 지겹도록 많았다지만 현장에 나가보라. 누가 마술을 부린 것처럼 한 마리도 없는 계곡이 태반이 아닌가.


물론 원인은 첨벙대는 사람이 제공했다. 계곡의 나무를 베어내면 수온이 오르고, 산간에 길을 내면 흙탕이 들어와 먹이를 잃기 때문이다.


초록 바탕에 검은 점과 띠무늬가 산재한 등이 4에서 5센티미터인 무당개구리는 피부의 독 뿐 아니라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붉은 배를 과신하는지, 거만하다 싶을 정도로 행동이 느리다.


혼난 적 있는 천적이 경험을 학습했는지 덩치 큰 동물도 무당개구리를 거들떠보지 않는데, 못자리를 차지하는 이른 여름의 올챙이들은 다가오는 그림자에 놀라 부리나케 달아난다.


올챙이 시절의 공포를 기억하는지 아닌지, 무당개구리는 대담하게 50여 개의 알을 낳고 그만이다.


볕이 뜨거워지는 늦은 봄, 뒤에서 사타구니를 꼭 끌어안은 수컷과 흐름이 정체되는 계곡 가장가리의 낙엽이나 물이 고인 논의 볏짚에 포도송이처럼 알을 붙여 낳는 무당개구리는 한 번에 천여 개의 알을 낳는 참개구리처럼 새끼들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 믿는 구석이 단단한 모양이다.


♠애완용으로 수출

계곡 주변의 돌이나 낙엽 아래, 그 주변의 양지바른 땅속에서 동면하다 봄이 완연할 때 드러낸 무당개구리의 등은 흙과 구별되지 않는 갈색이지만 햇살을 받으면서 밝은 녹색으로 바뀐다.


울음주머니가 없으니 턱을 들썩이며 '윙∼윙∼윙∼' 높은음으로 작게 울어대는 번식기 때의 소리는 듣는 이의 귀를 쫑긋하게 하는데, 그래 그런가. 물 온도를 잘 맞춰주면 알을 잘 낳고, 먹이만 잘 주면 탈 없이 오래 사는 무당개구리를 서양인들은 애완용으로 즐겨 키운다.


햇빛을 받은 어린 성체는 꽤 예쁜데, 집에서 잘 키우면 10∼30년 살아남은 경우도 있다니 놀랍기도 하다.


마리당 10달러, 해마다 1억원 정도 외화벌이를 약속해서 그럴까. 당국의 허가를 받으면 얼마든지 공식적으로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한다.


그게 자랑인지 여부는 따지지 말고, 수출을 허가한 관료는 왈! "그 정도 수출한다고 생태계에 별 영향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무당개구리가 남의 나라 거실의 유리 테라리엄에 넣자고 몇 푼에 팔아넘겨도 되는 우리의 야생동물이던가.


이역만리에서 졸지에 구더기 축내야 하는 신세로 전락한 미국의 무당개구리를 대신해 책상머리의 관료를 원망해본다.


추운 곳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무당개구리는 아직 한라에서 백두까지 분포하는데, 지구온난화는 개구리의 분포지역을 북으로 밀어낸다.


무당개구리! 미국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이산가족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인데, 요즘도 강촌을 찾는다는 밥, 아니 로버트 카플란도 같은 생각이겠지.



(글 박병상 환경 칼럼니스트, 이학박사)

필자는 인하대학교 이과대학 생물학과, 동 대학원 생물학과,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질병관리본부 연구윤리위원을 지냈으며 환경단체, 시민단체 활동을 해오고 있다. 녹색전환연구소 이사, '녹색평론' 편집자문위원이며 인천 도시생태ㆍ환경연구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1985년부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현재 명지전문대학 초빙교수로 언론과 잡지에 환경에세이를 기고하고 있다.


<기사제휴-인사이트>

(http://www.insigh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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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5-21 11: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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