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 공존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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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태 (자연다큐멘터리 감독)



【에코저널=서울】야생의 공간, 야생 생물의 천국 아프리카.

자연다큐를 하는 사람들의 로망이 아닐까. 아니 나에게는 성지 같은 곳이다. 드넓은 야생의 땅에서 한곳에 조용히 자리 잡고 그곳에 서식하는 생물의 처절한 약육강식 세계와 공존의 아름다움 등 야생의 생태를 관찰하고 기록하고 촬영하고….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야생의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가끔 한다. 그런데 부족하지만 나의 이러한 바람을 채워 주는 곳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DMZ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냉전과 갈등, 지뢰밭의 상징인 DMZ는 아프리카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생물들이 서식을 하는 종 다양성이 높은 곳으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힘든 사향노루, 산양, 담비 등 대형 포유류들과 다양하고 귀한 조류들이 서식하고 겨울에는 많은 철새들이 찾아 든다. 또한 대형 고양잇과의 포유류들의 흔적이 발견돼 호랑이나 표범의 서식이 기대되기도 하는 매력적인 곳이다. 그런데 나에게 DMZ가 처음부터 이렇게 매력적인 곳은 아니었다.


DMZ을 한글로 치면 '읔'이 된다. 외마디 비명소리. 나의 DMZ 첫 인상은 '읔'하는 외마디 비명 소리처럼 실망 그 자체였다. DMZ 내의 산은 손톱에 할퀸 것 같은 군사도로로 벌건 살을 드러내놓고, 능선을 따라 날카로운 가시를 드러내며 동에서 서로 길게 드리워져 남과 북을 가로 막은 철책은 생명을 단절시키는 죽음의 선으로 보였다. 또한 시야 확보를 위해 강가의 수변공간과 DMZ 철책 주변의 수목이 다 제거되어 황량함이 더했다.


♠야생의 땅 DMZ

반세기가 넘는 오랜 시간을 인간의 간섭에서 벗어난 DMZ의 자연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에 실망도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DMZ라는 공간을 이해하게 되고, 황량함과 실망은 기대와 설렘으로 바뀌었다.


DMZ는 거의 대부분 비포장도로이며, 경사가 심해 4륜 차가 아니면 이동하기 힘들다. 때문에 비포장도로의 굉음은 주변에 있던 생명들을 다 내쫒을 것 같았다. 연기 같은 먼지를 길게 드리며 지나가는 군용트럭도 마찬가지였다. 골짜기마다 숨어있는 듯한 초소나 막사는 군인들로 인해 상당한 위협 요소로 보였다.


그런데 촬영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러한 걱정은 궁금증으로 이어졌다. DMZ 곳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야생에서 산양, 노루 등 야생생물을 보는 건 상당히 힘들다. 그런데도 이곳 DMZ에서는 의외의 시간과 장소에서 야생생물을 자주 마주친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굉음과 함께 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가는데 저만치 앞에 뭔가 움직이는 동물이 보인다. 산양, 노루, 삵 등 경계가 심하고 깊은 산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짐승이다. 그런데 그 야생생물들이 군인이나 차를 경계하지 않고 무심히 지나가거나 먹이 활동을 한다.


군 시설물 주변에도 마찬가지이다. 야생생물들은 군 시설물인 초소, 교각 등 구조물위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군인들조차도 아랑곳하지 않고 쉬고 있다.


산양을 촬영 할 때의 일이다. 평소 고라니, 노루 등은 초지나 들에서도 자주 보지만 산양은 고지대에 서식하며 나타나더라도 금방 사라져 촬영이 쉽지 않은 생물 중 하나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산양을 촬영을 하여 DMZ의 야생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도망갔을 산양이 DMZ에서는 도망가지 않고 한가로이 먹이활동을 한다.


최전방 철책 주변을 촬영하던 중 제초 작업을 하는 병사 옆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짐승이 있었다. 최전방인데 군인들이 염소를 키우나 했는데, 자세히 보니 염소가 아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산양이다. 산양이 제초 작업을 하는 군인 옆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것이다.


굉음을 내며 제초기를 휘둘러 대는 군인 옆에서 먹이 활동을 하다니. 눈앞에 벌어진 광경이 믿어지지 않았다. 촬영을 위해 우리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산양은 경계를 하더니 산으로 향했다. 아쉬움에 뒤따라갔지만 산양은 사라지고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어 멍하니 서있었다.


♠공존의 열쇠

군인들 옆에서는 자유롭게 먹이활동을 하던 산양이 왜 우리를 보고 경계를 하고 사라졌을까. 그건 군인이 야생생물에 대한 무관심과 익숙함으로 자연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DMZ내에는 통제되는 지역이 많다. 지뢰, 미확인 폭발물, 군사 시설 등으로 인해 휴전 이후 아무도 들어가 보지 못한 금단의 지역도 많다. 또한 DMZ 내에는 많은 군인들이 있지만 산과 들 아무 데나 있는 것이 아니라 작전지역이나 안전이 확보된 일정한 곳에서만 활동을 한다.


즉 반세기가 넘는 60여년의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DMZ 내 야생 생물들은 DMZ지역의 시설, 장비에 익숙해졌다. 또한 군인들은 야생생물의 서식지나 보금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안전이 확보된 일정한 공간만을 이동한다. 야생 생물들에 무관심하다보니 야생 생물들도 군인을 생물을 해치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같은 공간 내에서 살아가는 생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DMZ의 생리를 알고 나니 다른 지역에서는 촬영 할 수 없었던 귀한 장면을 촬영할 수가 있었다. 사람(군인)들에 의해 파괴된 DMZ의 산야에 실망을 했지만 군인과 야생동물이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보존과 개발이라는 대립에 한 가닥 해법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위기의 DMZ

갈등과 대립의 상징인 DMZ가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생물자원의 보고로 알려지면서 DMZ의 자연을 보호한다며 곳곳에서 DMZ개발의 바람이 불고 있다. 올레길 열풍으로 경기도와 강원도는 경쟁적으로 DMZ 내에 생태관광 코스를 개발하고 있다. 동에서 서로 DMZ를 가르는 자전거 길을 만드는가 하면, 박근혜 정부의 역점사업의 하나로 DMZ 내에 세계평화공원을 계획하고 있어 오랜 시간 통제 속에 살아난 DMZ의 생명이 훼손될 위기에 처해있다.


DMZ투어 열풍으로 이미 양구 두타연은 생태관광지로 개방되며 탐방로와 데크 등으로 인해 많이 훼손됐고, 많은 사람이 출입하면서 그곳에 서식하는 노루, 수달 등 야생생물은 더욱 깊숙한 계곡으로 숨어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DMZ를 동물원의 사파리처럼 눈앞에서 다양한 생물을 볼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오지 않을까. 그러나 DMZ는 다른 곳보다는 다양한 생물을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그만큼 많은 인내력을 가지고 시간에 투자해야한다. 60여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DMZ만의 독특한 환경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DMZ의 참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자연을 위한 자연 상태의 공간 없이 지금처럼 사람만을 위하여 개발한다면 60여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야생의 공간은 사라질 것이다. DMZ의 생명들이 전해주는 60여년의 교훈이 공존과 개발이라는 대립을 풀어갈 수 있는 한줄기 빛이 되길 희망해 본다.



<기사제휴-인사이트>

(http://www.insight.co.kr)


필자는 군산대 수산과학과 박사 과정 수료.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주머니속 민물고기도감'을 출간했고, '금강에 살어리랏다'로 제6회 대한민국영상대전 지역영상부문을 수상했다. 지인들이 '들판'이라고 부를 정도로 매일 자연을 찾아다니고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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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2-26 10:5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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