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비티, 존재의 실존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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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그래비티는 지구 상공 600km에서 작업을 하던 과학자 닥터 스톤으로 분한 산드라 블럭의 우주 표류기이다.


정전으로 세상이 암전이 된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다면, 순간적으로 허둥대며, 잠깐 동안이나마 새삼 빛의 소중함이 절실하다는 걸 안다. 그런데, 그런 암흑 속에서나마 옆에 누군가가 있고, 그와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깟 일시적 암흑쯤은 견뎌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이런 암흑이 지속적이라면? 그리고 그 암흑의 공간엔 산소도 소리도 없고, 발 닿을 땅조차 없다면? 더구나 끝도 알 수 없는 공간에 대화할 상대도 없이 둥둥 떠다녀야 한다면?


♠존재의 실존을 묻는 '그래비티'

이 영화 '그래비티'는 바로 그런 막막한 공간, 즉 우주가 배경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우주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자 설정한 하나의 화두다.


"만약 이와 같이 막막하고 두려운 우주가 네가 직면해야할 삶의 진실이라면, 넌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다. 짐작했겠지만 영화 '그래비티'는 재난 영화도 SF영화도 천체물리학에 관한 영화도 아닌 철학 영화다. 즉 우주와 중력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실존을 드러내기 위한 메타포다.


여주인공 닥터스톤(산드라블록)은 우주선 익스플러로호를 타고 지구 상공으로 6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위성과 도킹해 위성을 점검하고 장비를 교체하는 임무를 맡은 전직 의사다.


지구와 교신을 하며 임무를 수행하던 중 지구로부터 임무를 포기하고 귀환하라는 긴급명령이 떨어진다. 러시아가 파괴한 인공위성 잔해들이 부근 궤도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것이다.


♠홀로 우주로부터 귀환 그린 단순 플롯

이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위성 파편들이 익스플러로호와 위성을 덮쳐, 닥터스톤은 중심을 잃고 우주로 낙하한다. 이때, 연신 사사로운 농담으로 우주에서의 두려움과 긴장을 풀어주던 익스플로러호의 선장이자 임무 지휘관인 남자 주인공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가 사력을 다해 닥터스톤을 구한다.


자신의 몸과 연결된 선을 닥터스톤의 몸에 연결하고, 몸에 장착된 연료 추진체를 발사해 위성으로 낙하했으나, 닥터스톤만 착지에 성공한다. 닥터스톤의 산소게이지가 위험상태에 이른 것을 안 코왈스키는 그녀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에 연결된 그녀와의 줄을 과감하게 놓아버린다.


여기까지가 영화 전반부의 내용이다. 이후 영화의 전개는 코왈스키가 사라진 우주에 홀로남은 닥터스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소유즈를 몰고 지구로 귀환하는데 성공한다는 내용이다.


우주 미아가 된 주인공은 천신만고 끝에 우주 정거장 소유즈를 이용해 귀환에 성공한다.


이처럼 영화의 전체적인 플롯은 아주 단순하다. 우주에서 우주선과 동료들을 잃고 우주 미아가 된 주인공이 천신만고 끝에 지구로 돌아간다는 뻔한 스토리다. 그런데 이 단순한 플롯 안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다. 그것은 사건들이 아니라, 코왈스키와 나눈 대화 속에 녹아있다.


처음 코왈스키가 우주로 낙하하는 닥터스톤을 구해 위성으로 돌아가면서 하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간의 교전에 대한 중요성

코왈스키는 닥터스톤에게 지구와 계속 교전을 시도할 것을 권하면서 "누군가 듣고 있다면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대화는 주어진 맥락에서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지구와의 교전에 대해 중요성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전체적 주제 속에 보자면 지극히 실존적 주문이다.


'누군가와 소통하라!',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네가 존재함을 피력하라!', '누군가 수신하고 있다면 너의 실존은 유지된다'


이 영화의 주제는 '소통 가능한 존재의 실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것은 너무 뻔하고 진부한 주제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오브제와 대화들은 이러한 주제의식을 상징적으로 변주하면서 주제를 부각시킨다.


이 영화의 주요한 두 가지 이미지는 '부유 혹은 열림과 묶임 혹은 닫힘'이다. 전자는 무중력 상태의 우주에서 낙하나 착륙이 불가능한 상황에 주인공이 우주로 표류하는 것으로 이미지화되며, 후자는 주인공과 코왈스키가 연결된 선, 위성에 연결된 낙하산의 선, 혹은 위성으로의 착지 내지 소유즈 안으로 복귀 같은 것으로 이미지화 된다.


즉 전자가 '열린 공간의 공포'를 상징한다면, 후자는 '닫힌 공간의 안정'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안정을 도모해주는 것이 바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끈' 즉 '연결'의 이미지다.


♠'열린 공간의 공포' vs. '닫힌 공간의 안정'

코왈스키는 닥터스톤을 구하기 위해 자신과 연결된 선을 놓아버리지만, 우주로 밀려나는 순간조차도 끝없이 무선교신을 통해 그녀에게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비록 물리적인 선은 끊어졌지만, 교신을 통해 그녀와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다.


'너는 살 수 있다', '너는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 '너는 살아야 할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의 끈들을 끊임없이 우주공간에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비티는 '살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우주공간에 던지고 있다.


이러한 코왈스키의 메시지의 끈은 닥터스톤이 마지막 순간에 자살을 시도하고 있을 때조차 환영으로 나타나서 그녀에게 살아야할 의미를 자각하게 함으로써 그녀와 우주공간 어디를 떠돌고 있을 코왈스키가 계속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믿음을 던져준다.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우주의 미아로 태어난 것인지 모른다. 자발적 의지로 이승에 온 것이 아니라, 어떤 철학자의 말처럼 던져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이러한 비자발적 탄생에 회의하며, 삶의 의미를 놓아버린다면, 우리는 우주를 부유하는 공포에 찬 주인공과 다를 바가 없다.


♠우주 미아로 던져진 존재 '인간'

무의미와 관계맺음의 상실, 이것이야 말로 삶의 무대를 암흑과 공포의 우주로 탈바꿈하게 만든다. 여주인공 닥터스톤은 현재는 위성을 고치는 닥터이지만, 이전에는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닥터였다.


그런 그녀에겐 4살 먹은 딸이 있었지만, 학교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해 죽고 만다.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자신의 가장 소중한 딸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자 그녀는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부유한다.


그녀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로지 직장과 집을 오가며 정처 없이 의미 없는 드라이빙을 하는 것이다. 바로 그녀에게 삶의 무대는 곧 무한한 암흑의 우주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그녀가 바로 그 상징이 된 우주를 물리적 현실로 부딪치면서, 자신을 낙하시켜줄 물리적 중력이 너무도 절실해지는 국면에 이르게 된다.


소통의 끈을 잃고 살아간다면 끝도 알 수 없는 공간에 대화할 상대도 없이 둥둥 떠다니는 우주미아와 다르지 않은 인생일 것이다.?


♠끝없는 소통 망, '삶의 그래비티'

그러면서 영화는 다시 말한다. '너를 낙하시켜줄, 너를 붙들어 매줄 중력을 찾아라!' 그것은 다름아니라 새로운 '끈', 새로운 연결고리들을 찾아나서는 것일 게다. 그것은 새로운 송신과 수신이며, 새로운 소통이며, 새로운 의미의 장이다. 그 끝없는 소통의 망, 그 무한한 송신과 수신의 네트워킹, 그것이 바로 '삶의 그래비티', '삶의 중력장'이다.


뉴턴은 말한다. 낙하하는 사과와 궤도를 돌고 있는 행성은 동일하게 낙하하는 물리적 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그것이 달라 보이는 것은 바로 중력 때문이라고. 우리는 끊임없이 삶 속에서 좌절하고 좌표를 잃고, 방황하며 낙하운동을 한다.


그러나 우리를 삶의 심연속으로 내다 꽂지 않고, 삶의 궤도를 계속 운행하게 하는 힘은 이 우주의 심연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끈, 즉 누군가와 소통으로 연결된 무수한 의미의 망들이 내게 중력이 되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섣불리 삶의 좌표를 잃지 말 일이다. 인력이 미치는 중력장 안에서 땅에 발을 딛을 수 있는 무거운 행복에 안도할 일이다.



(글 /배진 교육 칼럼니스트·작가)


필자는 대치동 박학천 논술학원 본원 대표 강사 및 대원외고 모의논술 출제위원, 메가스터디 인터넷 입시논술 강의 등 입시 논술 강사로 활동했다. 현재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토론연구소와 페이스북 '책과 사유' 등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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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2-20 15:5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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