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섬‘에서의 하룻밤과 이틀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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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는 '제1회 해양수산부장관상 어촌체험기'를 공모, 5개 부문에서 총 161명이 응모자 가운데 입상자 28명을 최종 선정했다. 해양부가 올해 처음으로 시행한 이번 어촌체험기에서 대학·일반부 최우수상을 수상한 박정순 씨(46·여, 인천시 부평구)의 '춤추는 섬에서의 하룻밤과 이틀 낮'을 소개한다.


휴가철 끝나기 전에 가까운 곳에라도 떠나보자는 남편 말은 의외였다. 결혼 21년, 아이들이 사춘기 시절을 넘나들고 있지만 핑계를 하자면 파도마냥 끊임없이 덮쳐오는 삶의 굴곡 때문에 남들 노는 때가 돼도 같이 어울려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해온 터다.


'형편이 필 때까지'란 하기 좋은 말막음으로 여행은커녕 번듯한 외식 한번 나서지 못하며 가족 모두 체념하듯 살아온 세월이었다. 일부러 그러고 싶진 않았으나 힘겨운 고비가 너무 많았다. 어른들이야 그렇다 쳐도 아이들한텐 해마다 미안한 노릇이었다.


그날 저녁밥상 머리에서 우린 8월 6일, 무의도엘 다녀오기로 합의를 보았다. 그 일대 섬들에서 한창 해양축제를 연다고 했다. 인천에 오래 살면서도 가까운 무의도(舞衣島)가 초행길. 하늘과 바다뿐이라 볼게 없다는 말을 그동안 들어와서 별로 마음이 닿지 않았었지만 아직 승용차를 마련 못했기에 쉽게 결정 났다.


짐을 줄이자니 웬만한 건 현지에서 사기로 하고 텐트, 배낭이며 허드레옷을 챙긴 다음 대중교통 사정을 고려해 아침 일찍 서둘렀다. 영종대교를 이용한 노선버스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지만 전통적 코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월미도 선착장을 벗어난 용주호가 등 푸른 바다의 각질을 하얗게 벗기며 영종도를 향한다. 국제공항이 들어서고 대교가 놓이면서 섬에 대한 설렘은 전보다 많이 삭아졌어도 오래 전부터 이름 익숙한 이 뱃길은 승객들로 북적인다.


모두들 화사한 모습이기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들뜬다. 일상에서야 삶에 휘둘릴망정 쉴 때만이라도 마음을 가볍게 갖고 싶었다. 무리 이룬 갈매기가 뭐라 지껄이는데 누군 알아듣고 대부분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 새우깡 내놓으라고 조르는 말인 줄을 늦게야 알긴 했다. 원래 머리 검은 놈이나 부리 끝 검은 놈이나 모두 염치가 없는 법인가. 얻어먹은 놈은 우쭐대며, 허탕 친 놈은 아쉬운 대로 입맛 다시며, 사람보다 더 약아빠진 갈매기들이 무임 승선해 함께 건넌다.


작을망정 네 개의 섬을 거쳐야 무의도다. 버스가 잠진도 선착장에 닿았다. 모듬발로 훌쩍 뛰어 건너도 될 만큼 만만한 물길사이로 빤히 건너다 보이는 섬. 작은 동생 하나를 돌보고 사는 정이 많은 형, 대무의도.


휴가철이어서 사람들이 넘쳐나고, 배야 점잖게 내려놓았지만 저절로 마구 어질러진 사람과 차가 오르고 내리느라 섬이 흔들리는 느낌이다. 무의도의 모든 것들은 살찌지 않았다. 이 섬에 올 줄 알았으면 내 비만의 살도 미리 줄일 걸 그랬다. 넘치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는 이 섬한테 아주 미안한 일. 섬이 내게 나이를 묻는다면 스무 살쯤 떼어내 주고 싶다. 여기선 나이도 무거운 짐이다.


놀고 먹는 거라곤 없는 섬에 내가 놀고 먹으러 굴러 들어온 셈이니 겸연쩍지만, 이맘땐 섬사람들의 섬이 아니라 뭍사람들 기다리느라 떠있는 섬이란 주민 말에 조금은 마음 가볍다.


문만 열면 온통 바다여서 지겨울 사람들한테 바다 이야기를 시킬 순 없다. 아까 안내소에서 얻어 둔 팸플릿을 폈다.


거잠포(巨蠶浦): 큰 누에 포구.


잠진도(蠶津島): 누에나루 섬.


상엽도(桑葉島): 뽕나무 잎사귀 섬...


그렇다면 여기엔 사람살기 이전부터 누에가 살고 뽕나무가 자랐을 것이다. 그 누에고치로 선녀가 베틀 놓고 명주실을 잣고 비단옷을 짰을 것이다. 그 옷을 누가 입었을까. 혼자 날개옷 지어 입고 훌훌 날아갔을까.


칠게들이 외지 것들을 구별하느라 구멍 진지를 파고 망원경 내밀어 감시하고 있었다. 짝짝이 손에 빨간 장갑을 낀 도둑게도 섬 방식대로여서 산기슭까지 올라와 망루를 만든다. 부는 바람도 섬스럽게 부지런하다.


배냇 이름들을 아직 쓰고 있는 무의도. 호룡곡산, 국사봉, 하나개, 재빼기, 떼무리, 큰무리, 샘꾸미, 실미,


영화 '실미도' 덕분에 유명해진 해수욕장 쪽으로 넘어가는 기슭은 비석도 없는 무덤들의 자리다. 바다에 나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왔을, 혹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을 섬지기의 무덤들. 섬은 맘만 먹으면 자살하기에 딱 좋지만 오히려 아무도 생목숨 내놓진 않았으리라.


개펄엔 폐선이 누웠다. 늙어죽은 배가 풍장(風葬)당하고 있다. 섬엔 저렇게 죽은 거 빼곤 다 살아있다. 섬이어서, 바다는 시작도 끝도 아니다. 일등도 꼴찌도 가리지 않는 멍석말이 파도들의 놀이판이 되어준다. 수평선 자국 그어놓고 손닿기 놀이를 하지만 아직 그 금을 넘어보진 못한 듯이....


바다가 비린내를 피우는 건 너무나 싱싱하기 때문이다. 죽어도 썩지 말라고 소금물 간수를 딱 맞춰 놓았기 때문이다. 그런 섬에서는 감출 것도, 숨길 것도 없다. 네가 알고 내가 다 보았다.


한낮 가까웠대서 번데기처럼 벌거벗은 사람들이 두개의 해수욕장만 아니라 섬을 몽땅 차지하였다. 여름 한철 통째로 빌려서는 염치없이 살고 있다. 남길 것은 가져가고 가져가야 할 건 남겨놓고 간다.


바다 위로 해가 떨어지는 장관을, 지글거릴 듯한 그 바닷물에 잠긴 채 감상한 우린 좀 떨어진 해변 바위 밑에 자리잡아놓은 텐트로 갔다. 우리 식구들만 오롯이 남아 차린 뜨내기살림. 이제 하룻밤 묵을 준비는 다 끝났다.


자루가 긴 뜰채를 가지고 왔다면 건져낼 수 있을 듯이 만만한 팔미도의 등대 불빛. 점점 뻗어오는 육지의 추근거림에 꽁무니를 빼며 손사래 치지만, 육지와 너무 가깝게 붙어 앉았다는 죄 아닌 죄 때문에 몇 년쯤 뒤엔 육지의 한 귀퉁이로 덧붙을지 모를 작약도.


먼발치에서 늘 그립게 바라보아야하는 애달픈 숙명을 이젠 거역하고자 하는 섬. 섬. 섬. 조각 섬들.


그 섬 중 하나의 해발 1m 기슭에 우린 앉아있고, 해발 0m인 바다를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우리는 해발 -50Cm 물속에다 함께 발을 담근다. 이윽고 붉은 낙조를 밀쳐내며 어둠이 거들먹대고 찾아왔다. 바다 건너편 월미도부터 연안부두, 송도 신도시에 이르는 해안도로와 건물들의 불빛이 야하다싶게 곱다.


외딴 섬의 밤은 조용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 잎이라고 달린 건 죄다 흔들어대는 사시나무 숲의 아우성. 졸고 있는 바위를 깨우듯 뺨 후려치는 파도소리. 어느 낯선 나라로부터 날아왔는지 모르지만 긴 여행을 접으려고 고도를 낮추는 국제선 여객기. 밤과 낮을 뒤바꿔 사나 싶게 요란한 풀매미 노래. 그 온갖 소리들은 그러나 소음이 아니고 화음(和音)이다.


낮에야 서로 적수가 되어 싸웠을 밤게와 동죽이 지금 함께 누워 자고 있는 바다 속은 어떤 모습일까. 무슨 꿈들을 각각 꾸고 있을까. 우린 불을 피워놓고 아까 선착장에서 푸짐하게 산 조개를 풀었다. 바다 냄새를 맡았는지, 물기 말라버린 채 꼭 닫았던 대합이 가장 먼저 입을 벌린다. 바로 앞에서 철썩거리는 물결이 조개들을 어서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방생을 예정하고 가져온 게 아니었지만 남편과 딸이 작은 것들 절반을 추려 바다에게 돌려주고, 난 나머지에 대한 마지막 배려처럼 바닷물에 잠깐 담가주기라도 하려다 생각을 바꾼다. 세상 운이 나쁜 것들이라 하여 두 번씩이나 고통을 줄 이유가 무엇인가. 제 바다를 바로 눈앞에 두고 큰 조개들은 숯불 위에서 빠각빠각 껍질을 부수고 몸부림치며 억울한 생을 마감 짓고 있다. 그것들의 슬픈 유언에 모질게 귀 막은 채 남편은 소주병을, 그리고 아이들은 음료수 병을 땄다.


바다가 화를 내며 달아나고 있었다. 첫잔 가득 따른 술을 멀찌감치 도망치는 썰물 끝에다 고수레 삼아 뿌려주었다. 술은 바다에서, 아니, 섬에서 아주 천천히 오르는 가보다. 50 앞둔 나이 먹으며 세파에 시달리다 보니 나도 몇 잔의 술은 거들 주량이라 벌써 두 병째 비었다. 심심하다던 아이들은 곧 저들 또래문화를 찾아 백사장 인파 속으로 뭉쳐져 가버렸다. 푸른 별구경을 핑계하여 우리 부부는 나란히 모래에 눕는다. 손을 뻗어 서로를 잡는다.


바다가 아니, 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섬이 가라앉고 있는 중이다. 순식간에 쑤욱 잠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물들을 고문하듯이 아주 서서히 물과 뭍은 합쳐진다. 어디론가 떠났던 바다가 다시 돌아온다. 이미 맞을 준비 끝내놓은 빈 갯벌을 향해 천년만의 재회인양 반갑게 포옹하며 덮쳐든다. 단 한 숟가락만 떠내도 푹 줄어들 것 같던 썰물 때의 오만한 자세는 아니었지만, 어느새 밀물은 밤 외박에서 본래의 제 영역으로 돌아와 있었다. '모처럼'이 아니라 처음 밤바다 경험에 상기된 아이들도 제물에 지쳤는지 텐트로 왔다.


파도가 깨워준 아침, 잠귀 여린 내가 먼저 일어났으니 이 아름다운 광경을 나만 볼 수는 없다. 가족들을 깨운다. 기습한 동녘 햇살에 서쪽 바다가 물들기 시작했다. 높이 뜬 갈매기 날개도 분홍빛이었다. 저 멀리 배들도 다시 꿈틀대고 변함없는 하루를 시작한 섬사람들은 하루 일정을 좇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우린 인간들끼리 엮어놓은 일상의 규범에서 이틀 말미나마 벗어났으므로 자연의 섭리에 내맡겨 진 채, 아주 오랜만에 느긋한 일출을 맞이하였다.


원시인처럼 웃어가며 어설픈 아침을 지어먹고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갔다. 모두들 행복해 보이는 시간. 섬 이름처럼 모두들 마음속으로는 춤을 추고 있다. 표시내질 않지만 저들 더러는 휴가비도 못 탄 채 왔고, 누군가는 근심걱정의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힘과 바다처럼 큰 희망을 충전하여 돌아갈 것이다.


석양을 등에 지며 무의도와 헤어졌다. 그 자락 안에 안겨있을 땐 바다에 맞서 당당해 보이던 섬은 멀어질수록 연민이 느껴질 만큼 작아지면서도 끝까지 나와 눈을 맞춘다.


좀 거친 풍랑에도 무너질 것 같지만 수억 년 굽히지 않으며 태고이래 단 한 뼘도 옮겨 앉지 않은 채, 제 자리를 지키는 늙은 섬의 화장기 없는 맨 얼굴을 나는 보았다. 생각나거든 꼭 다시 오라며 무의도는 우리를 끝까지 배웅하고 있다.


아침 출근 지하철에서 밀려나오는 사람들 표정은 천차만별이지만 휴가지 섬의 귀로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하나인양 모두 닮은 얼굴이다.


지나간 여름, 비록 1박2일일망정 우린 그렇게 섬이 되어보았다.

 

글/박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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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5-11-18 23:3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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