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도심 출몰, 공존의 길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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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수석연구원 (한국종합환경연구소)



【에코저널=서울】최근 멧돼지의 도심출몰이 빈번해지고 있다. 멧돼지는 활엽수가 우거진 깊은 산을 좋아한다. 모든 야생동물이 그러하듯 멧돼지도 경계심이 많다. 그런데 왜? 경계심이 많은 멧돼지가 사람이 살고 있는 곳까지 내려오는 것일까?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오는 이유는 산에서 부족한 부분을 도심에서 채우기 위해서다. 현재 멧돼지의 도심출몰 원인은 서식지 감소, 먹이원 부족, 멧돼지 개체수 증가, 생태축 단절 등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멧돼지는 산에 먹을 것이 부족하므로 먹이를 찾아 이동을 하게 된다. 또한 현재 멧돼지는 생태계의 교란으로 상위 포식자가 없으므로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먹이원이 더욱 부족해졌다. 먹이가 부족한 멧돼지는 먼 거리라도 이동해 먹이를 찾으려 한다. 후각이 발달한 멧돼지가 위험을 무릅쓰고 도심까지 내려오는 것이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이 지난해 전국의 멧돼지 서식밀도를 조사한 결과, 1㎢당 4.1마리로 농작물 피해 예방을 위한 적정 밀도(1.1마리)보다 훨씬 많았다. 더군다나 11월부터 1월까지는 번식시기로 멧돼지가 예민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멧돼지의 도심 출몰이 잦아져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도시 시민들이 멧돼지 출현에 놀라고 있으며, 멧돼지와 차량이 충돌해 물적피해 사고도 일어나고 있다. 농가에서는 논과 밭작물 피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해 야생동물에 의한 전체 농작물 피해는 139억원 이었으며 이중 멧돼지가 40%를 차지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멧돼지를 인위적으로 제거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언론에서는 야생동물의 출현 원인 보다 시민 피해에 초점을 맞추는 이슈성 보도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에 시민들은 멧돼지에 대한 이해보다는 막연한 공포감과 거부감이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가 도시를 세운 이 터는 우리 인류만의 터가 아니라 야생동식물의 터이었고 인류와 공존하던 그 터였다.


우리 인류가 그 공존의 터에 있던 산을 없애고, 산을 끊어 도로를 만들었고, 산림을 파괴하면서 야생동식물의 서식공간을 제한적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제한적인 공간에서 부족함을 느껴 간혹 내려오는 멧돼지를 그냥 사살하고만 있다.


그동안 인류는 야생동물과의 공존의 터에서 야생동물을 몰아내고 우리 인류만의 공간을 만들었다. 엄밀히 따지고 보면 야생동물을 몰아내었던 땅에 단지 몇 마리의 멧돼지가 다시 찾아 온 것일 뿐인데, 우리는 결국 사살로 맞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터를 내어준 야생동물들에게 사살로 보답하는 것은 환경윤리적 측면에서 보아도 참 한심한 일이다.



야생동물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면서 환경부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2월까지 19개 시·군의 순환 수렵장 개설을 승인, 최근 고시했다. 수렵이 허용되는 지방자치단체는 삼척시, 영월군, 충주시를 비롯한 19개 지자체며, 그 면적은 무려 7천527㎢, 포획 가능한 야생동물은 36만5천56마리로 고시했다. 수렵할 수 있는 동물은 멧돼지와 고라니, 청설모, 꿩, 멧비둘기, 참새, 흰뺨 검둥오리, 어치, 까치, 청둥오리, 떼까마귀, 까마귀, 홍머리 오리, 고방오리 등 14종이다. 이제 우리는 인류의 이기주의로 야생동물을 몰아내었던 그 협소한 땅까지 총을 들고 들어가 야생동물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우리는 도시화와 각종 개발을 위해 바다를 메우고 산을 통째로 바다로 집어넣고, 도로 건설을 위해 산을 일부 혹은 반을, 심지어는 전부를 없애기도 했다. 이렇게 사라진 생물은 과연 얼마나 될까?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생물이 사라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한 예로, 작년에 길에서만 차에 치여 죽는 로드킬(road kill)로 죽은 야생동물이 총 82종, 5700여 마리가 넘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중 고라니는 2200마리가 넘는다. 확인된 것만 이 정도니 한정된 야생동물의 조사가 한정된 곳에서 이뤄진 것을 감안한다면 아마도 수십만 개체가 죽었을 것으로 보인다.


로드킬로 죽는 종류도 다양해 고라니, 멧돼지, 다람쥐, 청솔모 등의 포유류, 뱀, 개구리 등의 양서파충류, 독수리, 꿩, 매 등 각종 조류들도 심각하게 죽고 있는 실정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멸종위기종, 보호종, 감소추세종 등의 귀중한 생물들이 무차별적으로 죽음에 내몰려 있다. 분명 앞으로 더 많은 야생동물들이 우리의 눈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책으로 혹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심으로 내려온 야생동물을 죽이고, 도로로 이입된 야생동물을 죽이고, 이제는 수렵을 확대해 전국을 야생동물 수렵장으로 만들고 있는데, 과연 누가 이 땅의 피해자라 말인가?


인류가 살아가면서 개발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앞으로 수많은 개발로 다시금 야생동식물이 사라질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의 과학기술로 야생동식물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시킬 수는 있다. 도심의 멧돼지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제한적인 서식처이지만 멧돼지가 필요한 요인이 충족된다면 멧돼지는 위험한 도심 가운데 혹은 도로로 결코 뛰어들지 않을 것이다.


야생동물들에게는 단지 생육할 수 있는 공간과 먹이원이 필요할 뿐이다. 생육할 수 있는 공간이란, 생태축의 연결, 먹이원, 식수원 등이다. 물론 그대로 두면 자연적으로 멧돼지 개체군은 언젠가 감소할 것이다. 먹이원이 감소하면 개체의 감소는 자연의 섭리다. 야생동물의 사살로 초점을 맞추지 말고 야생동물들이 잘 살수 있도록 생태축을 연결하고 도심에 야생동물이 출몰되지 않도록 이입 차단 시설을 한다면 도시와 도로, 농장물 피해는 줄어들지 않을까 ? 물론 예산이 많이 들어 갈 것이다. 하지만 야생동물의 터를 빼앗은 대가로 그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무엇이고 이기적인 일방적 행동은 스스로 자멸을 만들어 낼 뿐이다. 인류와 야생동물의 공존은 선택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늘 우리는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잃고 살며 나중에 없어지고 난 후 때늦은 후회를 하는 누를 범했다. 특히 '환경'이 그렇다.


이 글을 읽으면서 혹자는 "멧돼지나 야생동물 몇 마리 죽는 것이 무슨 대수야!"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질병이 그래왔고 동물의 생존이 그러했다. 균형이 맞은 상태에서는 안정된 생태계가 유지되지만 균형이 깨진 생태계는 인류의 피해를 가중시키고 결국 인류가 멸종되는 것이다.


"인류가 멸종될 수도 있지 그게 뭐 대수이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이상필자도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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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0-01-06 10: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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