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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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대만】청년시절 방랑벽으로 인해 떠돌이 생활을 많이 한 탓인지 특별한 목적이 아니면 여행을 하지 않는 필자가 대만 행을 하게 된 것은 평소 살갑게 지내온 토요포럼 식구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기 때문이었다.


지천명을 지나면서부터는 자연을 감상하기보다는 사람의 깊이를 관찰하는 것을 즐겨하는 관계로 함께 동행한 10명의 포럼회원들은 나의 또 다른 여행목적지나 다름없었다. 처음 방문한 놀이공원 소인국은 대만과 중국 유럽의 모형까지 실감 있게 조성돼 있었고 일본의 대판성과 경주의 불국사까지 전시되어 있었는데 자금성과 만리장성의 모형이 당연 압권이었다.


1925년 노벨문학상을 거부한 대문호 버나드 쇼가 만리장성을 관광하자는 권유에 "내 영혼 속에는 이미 더 길고 높은 성을 쌓아 놓았는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면서 인간의 하찮은 모조품을 왜보러 가느냐"고 거절해 세인들을 놀라게 했다는 생각이 떠올라 모조품의 복제품에 감탄하는 자신이 좀 민망해지기도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저녁을 먹은 뒤 타이페이 최초의 사원 용산사를 방문했다. 용산사는 1738년에 세워진 사찰로 여러 재해를 거치면서 수 차례 재건축됐다. 관음보살과 마조대사, 무사의 사표인 관우장군 등 많은 신들을 모셔 놓았는데 그 신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고 한다. 고해바다를 건너는 수많은 중생들이 저마다 향불을 손에 들고 지극 정성으로 신들에게 소원을 빌고 있었다. 도심에 있는 관계로 늘 참배객들이 북적인다고 한다.


다음 날 여정은 3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야하는 동해바다 쪽 '화련'이다. 차창 밖으로 전개되는 산과 바다 그리고 평원이 조화를 이루며 뻗어있는 자연경관에 도취되다 어느 듯 대리석과 옥 광산의 고장인 화련역에 도착했다. 대리석 공장에서 제공하는 중식을 먹고 진귀한 공예품들을 감상했다. 옥과 대리석의 빛깔이 너무나 오색찬란해 색을 칠해 구운 도자기 같기도 햇다.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원주민 아미족의 민속춤을 관람하면서 함께 어울려 잊혀져간 세월에 망중한을 달래고 대만 국립공원 대협곡으로 향했다. 장개석 총통의 아들 장경국씨가 군인과 죄인들을 동원해 협곡을 따라 화련과 대중시(대만 중부 내륙지방)를 있는 동서 관통도로를 건설했다. 이 도로에는 제비가 집을 짓고 산다는 제비굴과 창자처럼 굽이도는 구곡동 협곡을 지나 자모교까지 약 20km까지 관광코스가 됐다. 산자수려해 바깥세상과는 단절된 듯 자연과 인간의 노력이 어우러진 장관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도끼로 찍은 듯한 수 백m의 단애 절벽의 간격이 겨우 10여m 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수억만년의 세월동안 폭풍우와 홍수로 인한 침식작용에 의해 형성된 대자연의 신비였다. 연자 곡 천길 절벽 건드리면 무너질 듯했고, 도로 건설에 희생된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창건한 장춘사의 갈라진 폭포는 누가 그린 그림만 같았다. 영겁으로 이어지는 대자연의 위용 앞에서는 허우적거리는 내 삶의 부피가 너무나 초라하게 여겨졌다.


3일째는 타이뻬이 북쪽 기륭이라는 해안도시에 있는 아류 해상공원을 돌아보았다. 1100만년의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셀 수도 없는 버섯 모양의 바위가 다양한 자태를 뽐내면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폭풍우와 거친 파도에 의해 기괴한 형태를 하고 있었는데 아직도 진행중인 상태여서 수 십 년 후면 해상공원 자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전언이다. 자연이 만들어낸 장관을 자연이 도로 가져가겠다는데 한낱 인간들이 어찌 하겠는가...


공원을 나오는 길에 핸드폰을 들고 있는 대만의 청소년들을 만나 제품을 확인해보니 삼성의 '애니콜'이다. 정말 자랑스러웠다. 저 대영제국의 콧대 높은 수도 런던에서도 삼성전자가 30%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고 해 '기적 같은 일'이라고 놀랐는데 5대양 6대주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는 모양이다.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영토를 확장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그간의 피로를 풀기 위해 장춘곡에 있는 유황 온천장으로 향했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금새 산악지대로 접어드는 듯 하더니 유황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휴화산처럼 온천수가 분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런 온천이 발견되면 고급스런 건물을 짓고 위락시설을 만들고 난리 법석을 폈을 법하건만, 이곳은 제대로 된 옷장도 없었다. 작은 칸막이 수납장이 있었는데 대만 사람들은 대부분 열쇠를 채우지 않아 우리 일행은 사용료 20원(한화 약 800원)을 주고 열쇠를 채우기에 바빴다. 대범하면서도 검소하게 사는 대만 사람들의 모습에서 대국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었다.


다음 코스는 세계 4대박물관의 하나인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무려 70여만점의 유물이 소장돼 있다고 한다. 국공 내전시에 용케도 대만으로 이동했는데 원시시대부터 석기시대 당(唐), 송(宋), 원(元), 명(明), 청(淸), 중화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8000년 역사는 물론 찬란했던 대제국의 면모를 알 수가 있었다.


각종 도자기에 새겨진 문양, 정교하고 섬세한 각종 조각품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진귀한 보물들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도자기 등 소장품들에는 어김없이 용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이들 중 용의 발가락이 5개인 것은 임금님이 사용한 물건이며, 4개 이하는 신하가 사용했던 물건 즉, 발가락 숫자는 신분의 서열을 의미한다고 한다.


주나라 시대 영토 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직경 30cm정도의 청동기 쟁반에 토지 계약서를 새긴 것은 주나라 시대의 청동기 문화를 알 수 있게 했다. 공주가 결혼할 때 임금이 하사 했다는 비치로 만든 비치배추, 작은 올리브 씨로 조각한 배,(현미경으로 만이 확인가능) 상아로 만든 찬합 등 정교한 조각술에 넋을 잃고 말았다.


마지막날 1980년 4월에 완공했다는 중정(장개석 총통의 호) 기념당을 찾았다. 기 당 앞에서 남녀 고등학생들이 우리의 최신 유행가인 '노바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면서 한류의 열풍이 대단함을 실감했다. 이곳에서 우리나라 배우 배용준의 인기는 가히 천정부지다. 배용준이 호텔에서 사용한 1회용 칫솔 하나가 무려 30만원에 경매된다고 한다. 바야흐로 문화와 정보가 지배하는 시대 한민족이 대웅비의 나래를 펼칠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만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이번 대만 여행은 얻은 것이 너무 많아 함께 한 토요 포럼 이종춘 회장님과 회원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김병관(토요저널 주필) 수필문학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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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9-11-14 19: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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