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생태에 더욱 신중한 자세 필요
기사 메일전송
기사수정

                               이승호 수석연구원(한국종합환경연구소)


【에코저널=서울】자연에 다가가기 쉽다고 해서 자연을 함부로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면죄부는 존재하지도 않고, 결코 존재해서도 아니 된다.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에게 지켜야할 도리인 윤리(도덕, morality)가 있듯이 환경과 인류사이에서도 꼭 지켜야할 윤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환경윤리'다. 환경윤리는 자연의 큰 테두리 안에 있는 인간의 역할을 주시해야 한다. 그 사이에서 성립하는 도덕적 관계에 관심을 갖으며, 전 지구적인 자연환경과 그 속에서 생육하는 모든 동식물들에 대한 인간의 의무와 책임을 규정한다. 환경윤리란 내 스스로가 갖아야 하는 자연에 대한 작은 예의인 것이다.


필자는 어제 오랜만에 집에 일찍 들어와 텔레비전을 보며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방송을 시청하다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모 방송국의 오락프로 중 석모도 갯벌에서 이뤄진 게임은 정말 환경윤리를 무시한 처사였기 때문이다. 방송 중 갯벌에서 행해진 게임은 굳이 갯벌에서 할 필요가 없는 게임이었다. 그 갯벌에는 얼핏 봐도 엄청난 양의 칠면초 군락이 생육하고 있었다. 칠면초 군락 주변에는 농게를 비롯해 다양한 저서무척추동물이 생육한다. 지금시기는 칠면초가 씨앗을 내리는 시기다. 갯벌에 사는 생물은 염분이라는 제한적 생육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생존경쟁을 한다.


그런데 방송을 위해 그 갯벌에서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하며 칠면초 군락을 짓밟았다. 주변에 있는 게구멍과 갯지렁이 구멍들도 훼손됐을 것이다. 칠면초가 무엇이고, 그 속에서 숨쉬고 있는 생물이 있다는 것을 과연 알고 있었을까? 제발 몰랐기를 바란다.


갯벌을 연구하는 연구진들도 갯벌에 들어갈 때는 아무 곳에나 발을 디디지 않는다. 식물이 많은 곳은 까치발을 디디기도 한고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식물과 동물을 피해 다니며 갯벌에 들어 갈 때나 나올 때 한 길로 나온다.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해서 함부로 해서는 결코 않된다.


자연에 대한 환경윤리를 지키지 않고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만을 강조 할 수 있겠는가? 인간도 자연에 속해 있는 것이다. 자연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도 무시한다는 것이다. 환경이 파괴되면서 반폐륜적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필자는 염생식물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방송에서 단 몇 시간에 짓밟은 염생식물을 복원하기 위해 13년이 넘도록 연구했고, 지금도 그렇다. 각종 인위적 간섭으로 훼손된 염생식물을 복원시키기 위해, 추운 날이고 더운 날이고 바람 부는 날이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뛰어왔다. 그렇게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 이유는 오직 갯벌에 사는 염생식물을 복원하기 위함이다.


염생식물은 연안생태계에서 생산자의 역할, 다양한 해양생물의 서식지제공, 갯벌 정화기능, 토양침식 방지와 태풍과 해일과 같은 외파에 대한 완충역활, 관광자원으로써의 가치 등, 그 역할이 무궁무진하다. 염생식물이 서식하는 염습지는 그래서 중요하다. 하긴 "생물이 이래서 중요하다"라고 단정짓는 자체가 모순점이 있긴 하다.


"생물은 모두 중요하고 소중하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생물이 없어졌을 때 나타나는 결과를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다.


자연에 다가갈 때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 그리고 존중 해줘야 한다. 우리는 우스개 소리로 잘하는 말이 있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가 한 생명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고. 생명에 다가 갈 때는 제발 신중에 신중을 기하길 바란다.

0
기사수정
  • 기사등록 2008-12-08 21:32:10
나도 한마디
※ 로그인 후 의견을 등록하시면, 자신의 의견을 관리하실 수 있습니다. 0/1000
확대이미지 영역
  • ‘동해 품은 독도’ 촬영하는 박용득 사진작가
  • <포토>‘어도를 걸을 때’
  • 설악산국립공원 고지대 상고대 관측
최신뉴스더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