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의 맑은 실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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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호 책임연구원(한국종합환경연구소)


요즘 도심에는 실개천을 볼 수 없다. 도심지역에 있던 실개천은 도로 혹은 주택이나 건물 아래로 사라졌을 것이다.


도심에서 조금 벗어나면 실개천을 만날 수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숨부터 나온다. 퇴적물이 심하게 쌓여 냄새가 진동하고, 잉크빛 보다 진한 검은 물빛을 보이는 곳도 있다. 실개천 주변에는 버려진 쓰레기도 눈에 띈다.


일부 실개천은 하수와 공장 폐수가 내려오는 듯 악취가 진동한다. 이런 실개천에는 번식력이 좋은 외래종 수생식물과 장구벌레가 실개천을 떡하니 지키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긴 실개천들을 그냥 하수구로 알고 있다.


얼마 전 필자는 화성 지역을 지나다. 오리 10여 마리가 실개천에서 노니는 것을 목격했다. 도심주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라 차에서 내려 다가갔다. 사료 그릇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누군가 키우는 모양이었다.


알고보니 실개천 인근에 위치한 자동차 경정비센터 주인이 오리를 키우고 있었다. 정비소 주인은 "실개천에 물고기가 전혀 보이지 않아, 다른 곳에서 물고기를 잡아 개천에 여러번 풀어봤는데, 모든 물고기가 죽은 채 수면 위로 떠올랐다"면서 "물고기가 떠오른 것이 주변 농경지에서 농약을 살포한 시기와 같다고 판단해 물고기를 풀어놓는 것을 포기하고 오리를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정비소 주인이 키우는 오리는 주변 농경지에서 농약을 살포해도 죽지 않고, 지금까지 잘 자라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오리가 먹을 물고기가 없어 사료를 먹여 키우고 있다고.


정비소 주인은 "과거에는 실개천에서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참 여유로웠는데, 지금은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야만 그런 곳을 찾을 수 있다"면서 "물고기가 살지 않는 하천의 물을 어떻게 물이라고 할 수 있냐"고 반문했다.


사실 요즘 실개천에서는 예전에 주로 관찰됐던 우렁, 미꾸라지, 각종 수서곤충, 토종어류 등은 도통 보이질 않는다. 1970년대 이후 취수 위주의 하천정비사업으로 실개천이 시멘트 블록으로 둘러 싸여지면서 우리 주변에서 자연하천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자연하천이 있다고 해도 농경지에서 사용하는 농약과 비료는 실개천을 오염시킨다.


최근 친환경이 강조되면서 농약 사용량도 줄이고 자연형하천으로 바꾸기 위해 엄청난 재원을 투입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형태는 비슷하게 만들 수 있지만 떠난 생물은 어쩌란 말인가?


강과 하천은 각종 동식물의 생육 공간이자 시민들의 정서적 휴식 공간이다. 지금 남겨져 있는 실개천이라도 보호에 더 신경을 써야 하고 망가진 실개천은 당연히 생물이 살도록 복원해야 한다.


실개천이 망가지면 강과 하천, 바다도 망가진다. 그리고 생물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른 생물이 살지 못하는 곳에는 결국 인류도 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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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7-09-11 22: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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