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도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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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슈퍼에서 있었던 일이다. 바로 앞에 있는 서양여자가 청키(음식 등이 씹히는 감이 있도록 덩어리진 상태) 통조림 여러 개를 쇼핑카트에 밀어 넣은 채 계산대에 섰다.


캐셔가 카트를 살피며 "왜 그 캔들은 올려놓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당황해하면서 "내가 수술한 뒤라 경황이 없어 그랬다"고 답했다. 나는 무심히 쳐다보며 남의 쇼핑카트 밑에 있는 12개의 통조림 숫자를 일없이 세고 있었다. 캐셔는 재차 그녀의 카트에 담긴 통조림 수량을 물었고 그녀는 태연하게 '텐(10)'이라고 답한다.


이번에 당황한 것은 오히려 지켜보는 필자였는데 표정을 들키지 않게 고개돌리며 "정확한 숫자를 말해야되나 말아야 되나"하면서 내심 딜레마에 빠졌으나 그냥 묵과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절도방조를 하고 만 것이다.


알게 모르게 한 많은 도둑질. 도둑질은 정말이지 형무소에 살고있는 절도범들이나 하는걸까? 사람들은 일생동안 얼만큼이나 많은 도둑질을 할까? 한번도 안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런 통계는 있을 수 없을 터인데 행여 누구한테 "실례지만 그동안 살아오시면서 몇번이나 도둑질을 하셨나요?"하고 묻기란 더욱 어렵다.


필자의 경우, 최초의 도둑질은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동네와 개울을 하나 사이에 두고 언덕배기에 자리했다. 또, 학교 뒷부분은 모두 과수원으로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어 철마다 열매 맺는 포도, 사과, 배, 복숭아 등의 과실들은 우리들의 어린 마음들을 늘상 유혹했다.


어느날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교실 밖에 삼삼오오 모여 있던 우리반 친구들은 어느 순간 불과 몇 걸음 건너편에 있는 잘 익은 사과나무 쪽으로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들 군침만 흘리고 있을 뿐 아무도 감히 그 사과를 따려고 시도하는 아이는 없었다.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대낮에 행하는 사과 서리가 옳지 않은 일에다 발각될 위험도 크기에 서로 눈치만 살폈다.


순간적으로 영웅심이 발동한 나는 쏜살같이 어리숙한 철조망을 헤집고 올라가 잘 익은 사과 몇개를 움켜잡았다. 그때 사과를 따서 내 작은 호주머니에 쑤셔 넣었는지 아니면 한입먼저 깨물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뚜렷하게 기억나는 것은 유령처럼 갑자기 나타나 내 앞에 우뚝 서 계시던 무서운 과수원 주인 할아버지 모습이다. 아우성치며 혼비백산 줄행랑을 쳐버린 아이들, 고양이 앞에 쥐처럼 벌벌 떨며 잘못을 빌고 있었던 나. 이후 과일 서리는 쓸데없이 넘쳐나는 나의 호기와 영웅심을 자제하려고 노력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이듬해였던 것 같다. 교실 안에서 도시락이 심심찮게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여곡절끝에 범인이 드러났는데 학교에서 약 십오리쯤 떨어진 산골마을에 사는 아이였다. 운좋게도 배고픈 것을 모르고 자랐던 필자는 그 아이의 행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친구를 진짜 도둑놈 취급하기 시작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과거 '벌건 대낮 사과 도둑질'은 은근슬쩍 덮어 버리고 친구의 잘못에는 매섭도록 가혹했다. 그 아이를 보면 슬금슬금 뒷걸음쳤고 어쩌다 급우들이 모여 그 친구 얘기를 할라치면 앞장서 그 아이를 목청 높여 성토했다. 그것이 그 친구에겐 얼마나 잔인하고 치사한 짓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똑같은 도둑질이라도 차이가 있었다. 그 친구는 도시락을 챙겨올 형편이 아닌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으며 먼길을 걸어 등하교하는 상황이었다. 한창 커야 할 나이에 먹고 싶은 욕구는 오죽했겠는가?, 그친구의 도둑질은 허기진 배를 채우려 시도한 그야말로 생계형(?) 도둑질이었다. 이에 반해 반하여 필자는 배가 고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호기심반 영웅심 반으로 도둑질을 한 것으로 지금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만일 그 친구만큼이나 배가 고픈 상태에서 사과를 따려 했었다면 부끄러움 정도는 덜 했으리라.


다행히 늦게나마 배가 고파본 때가 있었다. 군대생활 훈련병 시절이 그랬고 사업실패 후 어려운 시절이 그랬었다. 그렇다, 늦게나마 배고픈 사람들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하고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누군가의 말을 이제 어느 정도 이해 할 수 있다.


키가 유달리 큰 초등학교 때의 그 친구, 운동을 유독 잘했던(그래서 더 배가 고팠을지도) 그 친구에게 이제는 진실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캐나다 캘거리=이병구 byungkool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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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5-06-19 22: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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