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지 바로알기 강좌‘ 강의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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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해 보다 유난히 길게만 느껴졌던 가을, 늦은 단풍의 행렬이 마치 짝지어 소풍가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처럼 아름답다. 십여년 동안 이 지역에 살면서 내 마음에 다가오는 청주의 이미지는 아무래도 남에서 북으로 유유히 흐르는 무심천, 사계절 아름다운 옷을 바꿔 입는 가로수길, 그리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인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 이 세 가지로 남아있다.


주민자치센터에서 수년째 서예를 배우던 나는 사회에 무엇인가 봉사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우연히 청주대학교 평생교육원 직지대학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이 대학에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를 청주시민이 바로 알 수 있도록 직지의 가치와 우수성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기 위한 지도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 일 년 동안 참여함으로써 직지의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과정을 수료한 후 청주시로부터 '직지지도사'라는 인증서도 받게 되었다.



그 후 '직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함께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청주시민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홍보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청주시에서도 큰 관심을 가져 주었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단체가 '직지문화연구원'이다. 2006년 10월, 이 연구원은 청주시 직지세계화추진단으로부터 초등학교 학생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52차례의 직지 교육을 의뢰 받았다.


금년 2월부터 청주시로부터 '직지 지도사' 인증서를 받고 나서, "언제나 강의가 시작될까?"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차에 이 소식을 접하고 보니 소풍가기 전날의 어린아이 마냥 한없이 들뜬 마음이었다. 내가 아는 조그만 지식으로 누구를 가르친다는 것이 이토록 설레는 흥분인지 나이 들어 처음 알았다.



잘해야 된다는 다짐과 함께 연구원 회원들은 매주 수요일 밤마다 직지문화연구원에 모여 그동안 공부해온 내용을 발표해 가며 교수님의 지도를 받았다. 잘못된 부분은 지적을 받고나서 다시 깁고 고치고 회의하면서 토론하다 보면 가을밤은 깊어만 갔다. 때로는 피곤하기도 했지만 밤새와 풀벌레 소리 들으며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왠지 가볍기만 했다. 우리 지도사들은 시민들에게 '직지'의 다양한 면모를 어떻게 인식시킬지에 대하여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보면 어느새 밤이 깊었다.


직지는 다양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얼굴은 '직지'가 종교개혁과 시민혁명 그리고 산업혁명과 근대 자본주의의 성공에 밑거름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독일의 구텐베르크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앞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점이다. 또 다른 얼굴은 고려 말 원나라의 지배 아래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의 민간 사찰에서 금속활자본을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백운 경한이 스승 석옥 청공 선사로부터 받은 한권의 불조직지심체요절을 두 권으로 증보해 스승의 뜻을 전하려 했던 정신 또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또 다른 '직지'의 얼굴이다. 그 정신을 이어받아 백운의 제자인 석찬과 달잠은 백운의 뜻을 기리고자 비구니 묘덕의 후원을 받아 스승이 써놓은 직지 두 권을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를 해 오늘날 우리의 자랑이 된 '직지'를 탄생시켰다.


드디어 강의가 시작됏다. 이처럼 '직지'에 대한 다양한 모습들을 올바로 알려야 된다는 생각으로 나름대로 강의 준비했으나, 강의를 하면서 부족한 것이 많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직지'에 대한 폭넓은 지식은 기본이고, 누가 강의를 듣느냐에 따라 가르치는 방법도 달리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린 직지를 이미 배운 어린이들에게는 직지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하도록 돕고 직지의 고장 청주에서 살고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일반 시민에게는 직지를 바로 알게 하고 다른 지역주민들에게 보다 체계적으로 직지의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여 청주지역을 홍보할 수 있도록 이해시킬 필요가 있었다. 이 점이 강의의 포인트라는 것을 서서히 느끼게 되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직지 퀴즈에 재치 있게 대답하는 초등학교 학생들, 직지 노래로 강의를 시작하자 이에 박수치며 즐거워하던 주민차치센터 노래교실 회원들, 강사가 사용하는 언어가 맘에 안 든다고 지적해주는 시민들을 접하면서 나 또한 가르치는 자가 아닌 배우는 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번 강좌를 통해 우리는 직지세계화사업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 직지의 중요성과 가치를 홍보할 수 있는 전도사가 되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


'직지' 영인본을 보며 청주에 사는 것이 자랑스럽다던 초등학생의 모습에서, "직지가 우리에게 준 게 뭐유?"라던 중년 아저씨의 질문에서, 음료수를 건네며 직지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던 아주머니의 열정에서, 수고했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던 수강생 할머니의 훈훈한 마음에서, 직지의 정신을 이웃사랑, 청주사랑, 나라사랑으로 이어 나가겠다고 다짐해본다. 강의를 하면서 스스로도 더 많이 배우게 된 점도 인상적이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서문에서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고 했다. 이번 강의에서는 아는 만큼 전달하려고 노력했으나, 다음 강의에서는 '알고', '보고', '느낀' 만큼 전달하는데도 치중할 생각이다.



올해의 직지 강좌는 마무리됐다. 내년에 시작되는 새로운 강좌에서는 이번 강의에서 느낀 경험을 살려 시민들이 직지를 보다 쉽게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강의를 해야겠다. 강의가 잘 될 수 있도록 노심초사 염려해 주셨던 박문열 교수님, 찾아가는 직지 바로 알리기 강좌 현수막 걸어주며 따뜻한 마음으로 성원해 준 직지세계화 추진단 직원님들, 함께 격려해 준 직지문화연구원 회원님들과 직지대학 2-3기 후배들 모두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영국 속담에 '세상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있다(There are a lot of fish in the world)'고 한다. 이 말은 세상에는 다양한 삶이 있는데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함축하고 있다. 지금의 나는 그냥 헤엄치며 살아가는 여러 모습 중의 하나일 테지만, 언젠가는 직지 교육자로서의 가치를 키우며 크게 헤엄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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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6-12-12 08: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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