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멘토; 미래의 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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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청소년들의 진로 탐색은 대개 본인의 적성이나 희망 직업을 정한 다음 그에 맞는 학과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판검사를 원하면 법대, 의사가 되고 싶으면 의대, 소설가를 꿈꾸면 국문과나 문창과, 연예인이 꿈이라면 연극영화과…. 그렇다면 '21세기의 대세'라는 환경 분야는 어떨까?


오래 전부터 유망 분야로 꼽혀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환경'을 미래의 진로로 생각하는 청소년은 드물다. 관련 학과가 많지 않고 선택할 수 있는 직종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환경공학을 전공한 엔지니어나 공무원, 시민단체에서 일하는 환경운동가. 그밖에는 선뜻 떠오르는 게 없다. 분야별 전공이나 진로를 줄줄이 꿰는 베테랑 교사들도 이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학생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


진출 분야의 협소함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환경'을 진로에서 일찌감치 배제해 버리게 만든다. 딱히 가슴 뛰지도 않고 유망해 보이지도 않는 환경 분야 대신 청소년들이 꿈꾸는 직업은 이런 것들이다. 변호사, 의사, 교수, 사업가, 정치인, 작가, 또는 영화감독.


하지만 그 직업들 앞에 수식어를 하나씩 붙여 보면 어떨까? 이를테면 환경전문 변호사, 리사이클링 사회적기업가, 생태주의 작가, 환경다큐 감독.... 그렇게 되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각자가 속한 영역들이 모두 환경 분야가 되고, 직업인으로서의 일상 자체가 곧 환경운동이 된다. 서너 개가 아닌 수십 수백 개의 직종이, 나아가 세상의 모든 직업들이 다 '환경 분야의 진로'에 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린 멘토; 미래의 나를 만나다'는 바로 그런 관점에서 기획됐다. '환경'이란 특정 분야나 직종의 이름이 아닌 세계관의 이름이라는 것! 누군가의 직업이 녹색인지 아닌지는 전적으로 당사자의 생각과 실천에 달려 있다는 것! 그러므로 환경 분야의 진로는 협소한 게 아니라 오히려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미래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알려주는 게 이 책의 목적이다.


한국환경교사모임에서 선정한 50명의 멘토들을 전국의 청소년들이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멘토들, 녹색 삶을 말하다


책에 소개된 멘토들의 면면은 다양하다. 교수, 정치인, 언론인, 의사, 기자, PD 같은 인기 직종이 있는가하면 초등학교 중퇴 학력의 적정기술자도 있다. 영화감독, 화가, 디자이너 같은 문화예술인들도 있고,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기업가들도 있다. 생협을 비롯한 협동조합 활동가들도 있다. 다들 각자의 분야에서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는 전문가들이다.


멘토들은 단순히 자기 분야의 특징이나 본인의 활동 내용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지금과 같은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그것이 지구생태계에서 갖는 의미, 그리고 활동을 통해 느끼는 보람을 설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탄자니아에서 흙탕물을 먹던 아이들이 간단한 장치로 깨끗한 식수를 얻는 걸 봤을 때 가슴이 벅찼어요. 나의 작은 기술이 한 마을을 행복하게 한다는 사실에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사람들이 읽지도 않는 논문을 위해 평생을 바치느니 여러 생명을 살리는 연구를 하고 보람을 느끼며 살고 싶어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연구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연구하느냐는 거예요" (한무영, 서울대 교수)


진로 탐색에 도움을 주기 위한 기획이니만큼,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조언도 빠지지 않는다.


"좋은 과학자는 다양한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있는 통섭형 인재이지요. 그러니 개인적인 성공에만 매달리지 말고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공동체를 위한 의미 있는 일에도 뛰어들 줄 알아야 합니다"(최재천. 국립생태원장)


"기자는 흩어진 정보들을 모으는 정보의 소매상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모으기만 해서는 안 되고, 그 분야의 지식이 충분해야만 올바른 뉴스가 나옵니다. 그리니까 기자는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해요. 지식 못지않게 중요한 건 전달 능력이에요. 사회비판이라는 언론의 기능에 충실하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과 글로 보도를 해야 합니다"(박수택. SBS 환경전문기자)


평생을 바쳐 정립해 온 묵직한 학술적 개념들을 청소년 눈높이에서 알기 쉽게 설명해 주기도 한다.


"낱생명은 개별적인 생명들 하나하나를 일컫는 말이고, 보생명은 우리를 둘러싼 모든 생명들을 뜻하지. 낱생명은 독자적으로는 살 수 없고, 낱생명들끼리 또는 보생명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공존하는 것이다. 수많은 낱생명과 보생명이 촘촘히 짜인 관계사슬 전체가 바로 온생명이고, 거기엔 사람과 동식물뿐 아니라 물, 공기, 태양 등이 모두 포함된다. 생명을 논할 때는 하나의 낱생명이 아닌 전체 온생명을 봐야만 한다"(장회익. 녹색대학 총장)


그밖에도 멘토들은 때로는 주요 현안에 대한 격정적인 비판으로, 때로는 환경과 생명에 대한 확고한 철학으로 독자들을 끊임없이 몰입시킨다.


이렇듯 저마다의 방식으로 녹색의 세계관을 설파하며 친환경적 삶의 정수를 보여주는 멘토들 앞에서, 독자들은 비로소 깨닫게 된다. 환경과 무관한 분야는 세상에 없다는 것, 지속가능한 세상은 훗날 자신들이 저 멘토들처럼 주변을 녹색으로 물들여 갈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 진로 탐색이란 단순히 직업의 이름을 정하는 게 아니라 직업인으로서 삶의 색깔을 고민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멘티들, 녹색 꿈을 꾸다


여러 번의 추가 인터뷰와 서면 문답, 자체 정리 및 토론을 거쳐 완성된 멘티들의 글은 배움과 깨달음과 감동, 그리고 다짐의 연속이다. 하지만 여느 신문이나 잡지의 인터뷰처럼 무겁고 진지한 문답으로만 구성된 건 아니다. 청소년다운 재기와 발랄함으로 최대한 재미있는 글을 만들기 위해 애쓴 흔적들이 책 곳곳에서 묻어난다.


빗물박사 한무영 교수와의 인터뷰는 멘토와 함께 여러 곳을 탐방하는 '로드 토크' 방식으로 구성됐다. 극지연구가 강성호 박사와의 인터뷰는 뉴스 앵커와 남극특파원의 대화 방식으로, 우포늪 지킴이 이인식 대표와의 인터뷰는 멘토와 멘티의 페이스북 대화 방식으로, 환경재단 이미경 총장과의 인터뷰는 청소년 강연회 방식으로 꾸몄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스승으로 손꼽히는 녹색대학 장회익 총장과의 인터뷰는 은둔한 현자를 찾아온 제자들과의 대화록으로, 공정여행 사회적기업 변형석 대표와의 인터뷰는 여행상품을 판매하는 홈쇼핑 형식으로, 생태경제학자 우석훈 교수와의 인터뷰는 멘토가 '생태요괴전'이라는 연극을 연출하는 가상 상황으로, 전방위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와의 인터뷰는 라디오 방송 형식으로 각색돼 전해진다. '원전마왕'에게 고향을 유린당한 외계 행성의 청소년들이 지구의 '탈핵 고수'를 찾아온다는 설정의 만화로 꾸며진 김익중 교수와의 인터뷰는 다채로운 구성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각자 만나고 싶은 멘토를 정하고, 직접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고, 녹음한 내용을 몇 번씩 다시 들으며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은 글쓴이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 나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렇게 그려 낸 50개의 꿈들이 모인 꿈의 지도인 셈이다. 지도의 내용이 궁금하다면 일단 책의 목차를 한번 훑어볼 것을 권한다. 지속가능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수많은 길들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을 터이니.


지은이: 한국환경교사모임·에코주니어/판형 153*224(신국판)/출간일: 2014년 3월 29일/가격: 1만5000원


한국환경교사모임(http://cafe.daum.net/ecoteacher)은 전국의 환경교사들이 2004년에 만든 단체. 학교에서의 보편적 환경교육을 통해 학생들에게 생태적 가치관과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실천 의지를 심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013년 환경부에 민간환경단체로 등록됐다. 에코주니어는 한국환경교사모임 소속 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대규모 개체군. 개인, 학교, 지역 그리고 전국 차원에서 다양한 환경탐구 활동을 벌이는 열혈 청소년들의 모임이다.


<이정성 기자 jungsung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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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4-02 21:4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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