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당주민들 질곡의 삶이 낳은 ‘특수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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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 1998년 9월 2일, 양평군 강상체육공원에는 양평군을 비롯해 당시 시 승격 이전이었던 광주군·여주군과 가평군, 이천시, 용인시, 남양주시 등 팔당상수원 주변에 위치한 경기동부권 10개 시·군 주민들이 가득 모였다.

 

정부의 ‘팔당특별대책’이 추진되면서 경기동부권 10개 시·군 주민들이 경기연합대책위원회(수석대표 김학조 이하 ‘경기연합’)를 구성,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받는 것에 대해 항의하는 집회였다. 

 

작은 체구의 박종진 광주군수(1934년생)가 연단에 오른 뒤 묵묵히 서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용해질 무렵 박종진 군수는 한 손을 높이 치켜들면서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는 한 마디를 내뱉는다. 집회에 모인 이들이 모두 숨을 죽이고, 다음 연설을 기다렸다. 그는 잠자코 3분 정도 뜸을 들인 뒤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고 소리친다. 똑같은 말 두 마디에 큰 박수소리가 진동했다.

 

집회에 모인 이들의 마음은 한결같았다. 오랫동안 규제를 감내하고 억눌렀던 감정이 폭발 직전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었던 박 군수는 다른 일체의 말 대신 오직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는 내용을 세 번 외친 뒤 연단에서 내려왔다. 그날 그는 다른 어떤 연사보다도 많은 박수와 호응을 얻었다.

 

제 45대 광주군수와 제1대 광주시장을 지낸 그는 2013년 생을 마감했다.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그의 연설은 아직도 팔당 주민들의 뇌리에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다. 

 

규제 일변도의 정부 정책에 맞서 투쟁하는 과정에서 2003년 11월 11일, 민·관정책협의체인 팔당호수질정책협의회(이하 ‘팔수협’)가 태동했다. 팔수협은 현재 특별대책지역 수질정책협의회(이하 ‘특수협’)로 명칭을 바꿨고, 곧 출범 20년을 맞는다.

 

특수협의 전신인 팔당호수질정책협의회 명칭에 포함된 ‘팔당호’. 1974년 완공된 팔당댐으로 생긴 인공호수(흐르는 강에 조성된) ‘팔당호’는 현재까지 수도권 2600만 주민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해오고 있다.

 

특수협은 질곡(桎梏)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팔당호 인근 주민들은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식수로 사용하는 ‘상수원 보호’라는 거역할 수 없는 대전제에 눌려 중첩된 환경규제로 억압받으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이어왔다. 

 

정부는 팔당호 물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정책과제였다. 이에 환경처(현 환경부)는 1990년 7월 11일, 고시를 통해 한강 상류지역 일부를 ‘팔당호 상수원 수질보전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공포했다. 환경처는 1993년 “팔당상수원 수질이 1991년 이래로 최악”이라고 발표한 뒤 수질개선 대책을 고민한다. 1998년 5월 15일, 환경부는 ‘팔당호 특별대책 수립기획단’을 구성해 상수원보호구역 등에 대한 규제 강화 등을 모색한다.

 

물론 상수원 ‘보호’와 인근지역 ‘규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팔당호 인근 지역주민들에게 팔당댐을 짓기 시작한 시기부터 규제의 움직임은 시작됐고, 완공 이후에 체감도는 더욱 높았다. 

 

팔당 주변지역에 대해 한층 강화된 규제를 담은 ‘팔당특별대책’을 만들던 시기, 주민들의 반발은 최고조에 달했다. 1998년 11월 19일 경기연합 주도로 진행된 ‘올바른 환경정책 수립을 위한 전국연합 투쟁위원회’ 여의도 상경집회에서 312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10명 가량이 부상을 입었다. 집시법 위반으로 1명이 구속되고, 10명은 불구속 상태로 조사를 받았다.

 

정부도 큰 충격을 받았다. 수질정책을 믿고 따라줬던 한강 상류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예상보다 컸기 때문이다. 뒤늦게 환경부 차관을 비롯해 수질보전국장, 수질정책과장 등 실무진들이 주민대표들은 만나 이해를 구하고, 달래는 작업이 이어졌다. 2003년 7월 28일, 환경부는 팔당특별대책 고시개정(안)을 유보하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팔수협은 주민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당근’ 정책으로 환경부훈령에 의해 만들어졌다. 2003년 12월 팔수협 사무소가 양평군에 현판식을 갖고, 정식 개소했다.

 

팔수협은 특수협으로 명칭을 변경, 20년 동안 여러 노력을 펼쳤다. 민·관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협의하는 특수협이야 말로 선진국형 협의체다. 특수협 설립 근거는 2020년 4월 2일 개정된 한강법에 명시돼 있다. 특수협 운영본부는 운영국장(공석)과 정책국장 밑에 수질보전팀장, 지역발전팀장 등 현원 6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수협 정책국은 인력·예산의 한계를 넘는 연구를 이어오고 있다. 팔당호 주변 7개 시·군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홍보는 물론 상·하류 상생을 위한 협력사업도 지속해왔다. 특수협 정책국의 고충은 서로 상충되는 사업을 합리적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 대표적인 것이 팔당상수원 ‘수질 보전’과 지역발전을 위한 ‘규제 개선’이다.

 

팔당호 주변 7개 시·군의 여건과 입장도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에 조율이 쉽지 않다. 환경부 정책 기조도 어느 정도 맞춰야 하고, 하류지역 서울시·인천시와의 상생도 고민해야 한다. 한강 상류 지역인 충청도·강원도와 협력도 필요한 부분이다. 

 

특수협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환경부와 경기도, 7개 시·군에서의 적극적인 참여가 우선되어야 한다. 예산과 사업비만 던져주는 기존 방식에서 과감하게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특수협 운영본부는 조직을 정비하고, 인력도 확충해야 한다. 인력과 예산의 뒷받침도 절실하다.

 

지난 20년을 이어 온 특수협이 앞으로의 20년, 40년, ‘지속가능한 팔당 상수원’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지금 즉시 과감한 혁신을 시작해야 한다. 

 

이 원고는 2023년 11월 발간된 ‘특별대책지역 수질정책협의회 20년사(2003-2023)’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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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3-11-11 01: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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