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 새끼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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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만 켜면 온갖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궁금해하는 것을 즉각 알아 볼 수 있는 디지털 사회에서, 과연 요즘 어린이들은 어떤 꿈을 꿀까? 요즘 어른들은 또 어떤 꿈을 꿀까? 그 어떤 미지의 세계를 바라볼까?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파랑새의 꿈은 우리 세대에게 익숙하다. 어릴 적의 나 역시 산 너머의 세상, 그 미지의 세계를 궁금해하며 보이지 않는 파랑새를 꿈꿨다.


언젠가는 산 너머의 파랑새를 보리라 믿는 작은 가슴은 기대감에 들떴다. 배고프고 누추한 삶에 그 꿈은 밥이 되고, 옷이 되고, 집이 됐다.


안데르센의 저 유명한 동화 '미운 오리 새끼'도 그런 꿈의 문법에 충실하다. 유난히 큰 미운 오리 새끼는 다른 오리들로부터 구박을 받는다. 그 오리들을 떠나 이곳저곳을 떠돌지만, 세상 그 어디를 가나 미운 오리 새끼에게는 고통과 슬픔이 더해질 뿐이다.


그렇게 추운 겨울을 보내고 맞이한 어느 봄날,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도 모르게 하늘로 날아오른다. 미운 오리 새끼가 실제는 아름다운 백조의 새끼였던 것이다. 오리가 사실은 백조이다? 꿈의 문법에는 충실한지 모르지만, 현실의 문법으로 보면 황당한 구석이 없지 않다.


오리는 오리대로 살고, 백조는 백조대로 사는 것이 현실이다. 어느 날 갑자기 오리가 백조가 되고, 백조가 오리가 되는 일은 꿈의 영역에 속한다. 꿈은 삶을 살찌울 수 있다. 삶의 고통을 견디게 할 수 있다. 삶의 희망을 샘솟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꿈과 현실의 혼동은 삶을 곤란하게 만들기도 한다.


꿈을 앞세워, 인위적으로 현실을 본래의 모습과 다르게 비틀어 버리는 일들이 세상에 비일비재하다. 그럴 듯한 말을 앞세워, 오리를 오리로 살게 하지 않고, 백조를 백조로 살게 하지 않는 사람들의 기막힌 작품들이다.


백조들이 무리 지어 있는 곳에 미운 오리 새끼 한 마리가 있다. 그 오리 새끼는 나중에 백조로 밝혀지는 동화 속의 오리 새끼가 아니다. 실제로 오리인 것이다. 다리가 짧은 오리 새끼는 긴 다리를 뽐내는 백조들로부터 구박을 받는다.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오리 새끼에게 백조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조롱을 퍼붓는다.


"아, 너무도 괴롭고 슬퍼."


오리 새끼가 한탄한다. 왜 그러하지 않겠는가. 있는 그대로의 자기가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 된다면, 부처이건 예수이건 그저 웃어넘길 수 있겠는가.


어느 날,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백조 한 마리가 오리 새끼에게 말한다.


"왜 웃음거리가 되어 그렇게 사니? 머리를 써야지. 내가 너라면 하이힐이라도 신겠다. 네 다리를 길게 늘이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려우면 하이힐이라도 신으란 말이야."


귀가 솔깃해진 오리 새끼가 묻는다.


"하이힐? 그걸 신으면 정말 너희들과 잘 어울려 살 수 있을까? 나는 그게 꿈이야."


백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물론이지! 나도 너를 놀린 건 사실이지만, 네가 보기에 딱해서 이런 말을 해주는 거야."


"알았어! 정말 고마워. 네가 나를 살린 셈이야. 나는 정말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웠어."


오리 새끼는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부근에 있는 마을로 간다. 마침 청소부가 수거해 온 온갖 쓰레기들을 정리하고 있다. 오리 새끼는 청소부에게 사정을 털어놓고 부탁한다. 청소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이렇게 말한다.


"내가 생각해 낸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말이 있어.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자를 수 없고,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늘일 수 없는 거야. 그런 인위적인 선택은 자연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너를 행복하게 하기는커녕, 불행을 더욱 깊게 할 뿐이야."


그러나 오리 새끼 귀에는 그런 말이 들어오지 않는다. 오리 새끼는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말하며 눈물로 호소한다. 마음이 약한 청소부는 오리 새끼의 부탁을 들어준다. 청소부는 쓰레기 더미에 있는 하이힐 가운데 굽이 가장 높은 것을 골라 오리 새끼에게 준다.


"고마워요."


오리 새끼는 날아갈 듯 기쁘다. 하이힐을 신으니 다리가 쭉 늘어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몇 걸음 걷지 않아 자꾸 하이힐이 벗겨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오리 새끼는 청소부에게 다시 부탁한다.


"이렇게 자꾸 벗겨지면 더 큰 웃음거리가 될 거예요. 내 발과 하이힐을 강력 접착제로 붙여 주세요."


"그건 안 돼. 그렇게 하면 나중에 마음에 들지 않아도 벗을 수 없잖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청소부는 오리 새끼의 끈질긴 부탁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다. 물갈퀴가 있는 오리의 발과 하이힐이 강력 접착제로 한 몸처럼 붙는다. 하이힐 신은 오리 새끼가 백조의 무리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잔뜩 기대를 갖고 백조들을 둘러보는 오리 새끼 이내 참담한 심정이 된다.


뒤뚱뒤뚱하던 오리 새끼의 걸음걸이에 위태위태한 모습까지 더해져 보기가 참으로 딱하다. 그 모습을 보고 백조들은 예전보다 더 심하게 조롱한다.


"대단한 변신이군!"


특히 하이힐을 신으라고 권유한 백조가 어찌나 웃어대는지, 곧 숨이 넘어갈 것 같다. 더 이상 그 백조들과 어울릴 수 없게 된 오리 새끼가 길을 떠난다. 어딜 가도 하이힐 신은 오리 새끼는 웃음거리가 된다. 그 가운데서도 동족인 오리의 무리를 만났을 때 받은 조롱과 비난이 가장 가슴을 아프게 한다.


"너는 오리의 자존심을 버렸어. 꼴도 보기 싫으니 여기서 당장 꺼져 버려!"


이제 하이힐 신은 오리 새끼에게는 단 하나의 꿈만이 남아 있다.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품질이 뛰어난 강력 접착제 탓에 그 꿈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우리 주변에 하이힐 신은 오리 새끼들이 차고 넘친다. 본 적이 없다? 나는 수시로 본다. 직업이 정치가이니 정치 문제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직업병이 아니라 직업윤리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이 정부가 쏟아내는 설익은 정책들, 그것들이 오히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을 수시로 본다. 그 인위적인 정책들을 볼 때마다, 하이힐 신고 뒤뚱뒤뚱하게, 위태위태하게 걷는 오리 새끼가 떠오른다. 안타까운 모습이다.


양극화의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정책이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집값을 잡겠다며 쏟아내는 대책이 집값을 더욱 올리고, 비정규직 문제를 풀겠다는 방안이 비정규직을 더욱 양산하,고 말끝마다 내세우는 개혁이 오히려 참다운 개혁을 가로막는 현상을 신물나도록 본다. 어디 이뿐인가?


더 이상은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다. 하이힐 신은 오리는 아름답지 않다.


글/배일도 의원(한나라당,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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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6-08-03 17: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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