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드 옐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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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노랑과 함께 온다. 개나리, 노란 솜털이 보송보송한 병아리, 새싹과 어린이로 이어지며 생기발랄한 새봄의 정취는 밝고 부드러운 느낌의 노란색 계열의 색깔로 상징된다. 하지만 노랑은 연약하고 유아적인, 무언가 안심되지 않는 무엇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안전지대를 나타내는 코드 그린과 위험을 의미하는 코드 레드의 중간에 자리 잡은 코드 옐로우는 그래서 위험의 소지가 있음을 의미한다.


올 봄, 남녘의 꽃소식에 마음이 부풀어 목련 가지의 움을 아침마다 올려다 볼 즈음, 반갑지 않은 황사(黃砂)가 맹위를 떨쳤다. 만주 상공에서 시시각각 한반도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이동하는 적황색의 먼지구름은 부산까지 그 꼬리를 걸쳤다. 올해 3월, 부산지역의 분진 침전량 6.8톤중 황사에 의한 것이 약 5톤을 차지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황사 주요 발생지역은 고비사막과 네이멍구(內蒙古) 모래사막 등 중국 북서부와 북부로 알려져 왔다. 이들 먼지가 한반도 상공까지 날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24∼48시간. 지난 4월 8일의 황사는 여느 때와 달리 만주를 발원지로 해서 약 18시간만에 한반도를 공습했다. 이 먼지바람에는 이산화황을 필두로 한 각종 오염물질이 곁들여져 수송된다.


중국에서 한국까지 하루도 걸리지 않았으니, 여간 기특한 택배(宅配)가 아닐 수 없다. 유체(流體)의 이동을 바탕으로 오염물 또는 여러 성분이 수송되는 현상을 해양학이나 대기학에서는 소포(小包, parcel)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봄철마다 받아야 하는 반갑지 않은 선물, 황사는 늦봄부터 여름, 가을에 이르기까지 연중 남해안에서 발생하는 적조(赤潮)와 방불한 수송과정의 일종이라 하겠다.


푸른 바다위로 검붉은 적조가 해류나 조류를 따라 길게 번져 나가는 그림, 한반도의 상공에 펼쳐져 시간에 따라 이동하는 황사를 적나라하게 추적하는 위성화상을 생각해 보자. 수도권 대기오염을 잘 나타내 주는 지표인 오존도 이렇게 수송된다. 강원대학교 환경과학과 이종범 교수 연구팀은 서울 및 수도권 지역의 하루 최고 오존농도 발생시각이 인천과 부천이 오후 2시, 서울 정동과 구리는 오후 3시, 춘천은 오 6시로 점차 지연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보고한 바 있다. 이것은 경인지역에서 발생한 오존이 남서풍을 따라 춘천지역까지 수송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원주, 제천 등 인위적 오염원의 직접적인 영향을 덜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청정한 지역에도 고농도의 오존이 관측되는 이 현상으로 경인지역의 동쪽, 한강 수계를 따라 산성안개와 산성비가 내리게 된다.


여름철 대량강우기에 하천으로 유입되는 누런 흙탕물도 집중강우 결과 발생한 비점오염(비 點汚染)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water parcel의 일종이다. 하천을 따라 이동하는 부유토사와 오염물질이 수송되며 접속수역에 확산되고 있는 양상이 바로 그것이다. 이 그림을 바탕으로 캐나다, 호주, 스코틀랜드 등지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이뤄지고 있는 비점오염 교육·홍보캠페인을 '노란 물고기 캠페인'(Yellow Fish Campaign)으로 이름붙이고 있다.


환경부와 건교부는 이달 6일 올해부터 '07년까지 신도시개발사업에 시범 적용할 '생태면적률'지침을 발표하고 이를 시범사업이 완료되는 '08년부터 전면 시행한다고 밝혔다. 생태면적률은 공간계획 대상지 면적 중에서 '자연의 순환기능을 가진 토양' 면적의 백분율로, 도시공간의 생태적 기능을 유도하기 위한 환경계획 지표로 도입됐다. 도시지역 안의 지표면 및 건축물 등에 퇴적된 먼지, 쓰레기, 공업지역 내의 퇴적물 등이 강우시 집중 유출되기 때문인데, 불투수층이 2배 증가할 경우 오염부하는 1.7∼2.0배 증가한다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비점오염원은 전체 수질오염 부햐량의 1/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황사, 비점오염으로 태어나 하천을 따라 바다로 천천히 헤엄쳐 들어가는 노란 물고기, 남해안에서 발생해 동해안으로 확산되는 적조, 서울 도심이 아니라 도봉산 남벽에서 발령되는 오존경보 등등 이 모든 것이 동일한 현상을 이야기하는 셈이다. 환경현안을 다룰 때, 오염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설명하며 도입되는 '상류(上流)와 하류(下流)' 의 개념이 절묘하게 역전되는 현장이 여기에 있다.


한국, 일본 등 황사의 직간접적인 피해에 노출된 이웃나라들의 항의와 주의 촉구에 당면해 중국은 황사를 타고 한반도로 이동할 수 있는 자극성 대기오염 물질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부 고백을 흘리고 있다. 중국환경계획원의 쩌우서우민(鄒首民) 부원장은 "근년 중국의 이산화황 배출량은 지난 '00년에 비해 27%나 늘어났다"며 "이는 경제성장에 따른 에너지 소비가 늘어나면서 이산화황 배출 통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중국에 고도성장 산업사회의 경제적 유인을 수출했고, 그 결과 날로 심각해지는 황사 피해에 직면하고 있다.


4월 8일 맹위를 떨쳤던 황사의 고통을 씻은 듯 가시게 한 봄비를 기억하는가? 그 봄비를 따라 한반도에 내려앉았던 먼지와 유해물질들이 노란 물고기가 돼 하천을 천천히 헤엄쳐 바다로 향했다. 그들은 어느 날 우리의 식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지구상에서 환경위해로부터의 안전지대는 더 이상 없는 듯 하다. 이제 그 누구도 상류(上流)에 터 잡았다고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닌가. 코드 옐로우. 오버.


글/전득산 박사<마이크로오션(주)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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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06-04-21 11:5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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