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호 명장, ‘도자기 빚는 일, 자아와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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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호 명장, ‘도자기 빚는 일, 자아와 싸움’
  • 기사등록 2017-04-16 09:07:46
  • 기사수정 2023-12-26 21: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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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광주】“도자기(陶磁器)를 빚는 일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며 “꾸준한 인내와 자연에 순응하는 자세가 필수다”


경기도 광주시로부터 지난달 22일 ‘제8대 광주왕실도자기 명장’으로 선정된 조민호(58) 명장의 말이다.


광주시 도척면에서 단원요를 운영하는 조민호 명장은 “도자기를 만드는 일이 결코 만만치 않기도 하지만, 요즘 도자기를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휴일도 없이 작업에 매달리는 경우가 잦은데, 젊은 친구들이 작업장에 갇혀 생활하다 보면 갑갑한 마음이 들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도예(陶藝)의 길은 빠른 시간에 경제적 자립기반을 다지고 싶은 욕심이 앞서는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외면받기 쉽다는 것. 실제로 조 명장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많이 보냈다.


조민호 명장은 “도자기는 경기에 아주 민감해 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장 먼저 영향을 받게 된다”면서 “과거엔 이런 이유로 고비를 자주 겪었지만, 이제는 매니아층이 늘면서 점차적인 경제적 안정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조 명장은 단국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한 뒤 지난 1987년 광주의 한 요장(窯場)에서 본격적으로 도자기 빚는 일을 시작했다. 스승에게 도자기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전승자기’와 달리 조 명장은 전통자기에 현대화기법을 접목한 ‘근대자기’를 주로 만들기 시작했다.


‘분청사기’는 전통기법인 ‘박지기법(剝地技法)’과 ‘상감기법(象嵌技法)’ 등의 단일기법으로 기물(器物)의 표면에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제작방법이다. 이에 반해 조 명장의 ‘근대자기’는 두 가지 이상의 기법을 동시에 적용해 작품을 만든다. 특히 전통문양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자체 개발한 디자인만 적용해 작품을 만들기도 한다.


▲조민호 명장이 광주시 도척면 진우리의 작업실에서 자신의 작품인 ‘분청 터짐항아리’를 들어 보이고 있다.


조 명장의 도자기 만드는 과정의 첫 순서는 기본 재료인 분청토를 용도에 맞게 재작업하는 일부터 시작된다. 이어 흙에 색을 입히거나, 질감을 달리하기 위한 별도의 작업이 이뤄진다. 흙 작업이 마무리되면 물레에서의 성형작업을 거쳐 조각 또는 투각, 문양을 넣는 작업을 진행한다. 작품 크기에 따라 7일∼15일 정도의 건조과정을 거쳐 초벌구이를 한다.


초벌구이를 끝낸 도자기는 기물(器物)의 특성에 따라 알맞은 유약을 바른 다음 2차로 가마에 굽게 된다. 이때 가마의 온도는 1250도∼1260도 정도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 다음 마지막 선별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남는 작품은 70% 가량이다. 30%의 작품은 가마에 굽는 과정에서 온도 차이, 산소의 양, 가마 컨디션 등에 좌우돼 온전한 작품으로 탄생하지 못한다.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70% 중에서도 명장의 마음에 드는 작품은 1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조 명장은 20년 전 무리하게 일을 하다 왼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의 신경이 끊어져 두 손가락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


도예가는 ‘손’이 곧 ‘연장’이다. 보통 왼손은 도자기의 형태를 흐트러지지 않게 하고, 흙을 늘리는 역할도 한다. 따라서 오른손 한 손 만을 사용하면 흙을 늘리기도 어렵고, 온전한 형태를 만들기가 매우 어렵다.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다.


양 손을 온전하게 사용치 못하고, 왼손 일부 손가락만 사용해 도자기를 만들면서 터득한 기술이 ‘터짐 기법’이다. 이 기법은 두 손을 다 사용하지 않고, 한 손으로만 물레를 돌릴 수 있는 기술이다.


‘터짐 기법’을 개발하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도 거쳤다. 초창기에는 도자기의 재료가 되는 흙을 물레에 올려 중심을 잡는 것조차도 거의 불가능했다. 중심을 잡는 방법을 터득하는 데만 6-7개월 이상 소요됐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물레에 있는 흙을 끌어올리면서 형태를 잡는 과정이 필수인데, 흙을 받혀주는 왼손의 역할까지 오른 손 하나로 감당해야 했다. 끝없는 연습을 통해 결국 오른손이 왼손의 역할까지 일부 감당해내는 기술을 터득하게 됐다. 현재 조 명장의 ‘터짐 기법’은 두 손으로 사용하는 것 못지않게 한 손으로 물레 성형이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했다.


조 명장이 ‘터짐 기법’으로 빚어낸 작품인 ‘분청 터짐합’은 지난 2008년, ‘유네스코 우수 수공예품(UNESCO SEAL)’으로 선정, 등재되기도 했다.


조 명장이 제일 많이 만드는 작품은 ‘터짐 기법’을 적용한 다기류다. 관상용도자기를 비롯한 다양한 생활도자기를 주로 만들고 있다,


조 명장은 “광주시는 왕실에 진상하는 어기(御器)를 만들던 관요(官窯)가 있던 곳으로, 조선백자 500년의 역사를 지닌 고장”이라며 “인근에 도자기를 생산하는 고장으로 알려진 이천시와 여주시와는 차별화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조 명장은 후학 양성에 관심이 많다. 지난 1996년부터 17년 동안 광주지역의 경화여자중고등학교 특별도예반 학생들을 가르쳐 왔으며, 2013년부터는 충주 성심학교 청각장애우들에게 ‘재능기부’ 형태의 강의를 4년째 이어오고 있다.


조 명장에게는 최근까지 16년∼17년 정도를 가르친 여자 제자 2명이 있었는데, 모두 결혼과 함께 떠났다. 한 명은 별도로 도자기 작업장을 꾸려 운영하고 있고, 다른 한명은 손을 놓은 상태다. 조 명장은 단국대 도예과를 나온 후배이기도 한 아들(34)에게 틈틈이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조 명장은 “지금까지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지도해 온 방법에서 벗어나 소수 전문 후학 양성을 하고 싶다”면서 “단순히 도자기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나 자신의 모든 노하우와 삶의 경험까지 전수하는 ‘전인교육(全人敎育)’을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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