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에코저널=서울】장재교를 건너면 안양면 사촌리 율산마을 앞에 펼쳐진 여다지해변에 있는 ‘한승원 문학산책길’은 작가인 한승원의 문학작품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됐다.
한승원 문학산책길.
여기에 문학산책길이 조성된 것은 한승원의 집필실인 ‘해산토굴’이 율산마을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평소 “내 소설의 9할은 고향 바닷가 마을 이야기”라고 말하며, 고향의 언어로 창작활동을 해왔는데, 솔숲을 품은 해안과 아름다운 백사장, 물 빠진 갯벌의 활력이 생명력 넘치는 작품세계와 같다.
한승원 시비 ‘시인의 무덤’.
한승원(韓勝源, 1939년 10월 13일∼)은 장흥군 회진면 신상리 신덕마을에서 아버지 한용진(韓瑢鎭)과 어머니 박귀심(朴貴心) 사이에서 10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위로 누나 두 명과 형 한 명, 아래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각각 세 명 있었다. 장흥중학교와 장흥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 장동서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가증스런 바다’가 입선해 등단했다.
한승원 문학공원.
그 후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木船)’으로 당선한 뒤 소설가와 시인으로 수많은 작품을 펴냈다. 단편 ‘해변의 길손’과 장편 ‘그 바다 끓며 넘치며’·‘포구’ 등 고향 바다를 소재로 한 작품을 잇달아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 큰 궤적을 남겼다. 1968년 광양중학교, 1969년 광주춘태여자고등학교 등에서 1979년까지 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 후 고향인 장흥군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한승원의 내 할아버지 이야기.
한승원에게 남해 바닷가는 한국 근대사가 압축된 곳이며, 그 안에 존재하는 억압과 해소를 표출하는 원형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바다와 마찬가지로 운명에 구속된 채 그에 맞서는 과정에서 비극을 구현함으로써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운명과 대면하는 상태를 지향하고 있다. 그가 구사하는 토속적인 언어는 삶의 구체적인 감각과 섬세함을 극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됐다. 이후 그는 ‘생명력’을 주제로, 인간 중심주의적 문명에 대한 반성과 극복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승원 문학의 길.
여다지 해안을 따라 600m 남짓 이어진 산책로 위에는 한승원의 시비 30여개가 세워져 있다. 이 시들은 모두 해산토굴이 있는 여다지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율산마을에서 한승원이 내려온 뒤 쓴 작품들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책장을 넘기듯 새로운 시를 마주하니, 마치 시집 한 권을 읽는 것 같다. 한승원은 이곳에 문을 연 ‘한승원 문학학교’에서는 작가와의 만남의 시간도 가질 수 있으며, 문학의 담론을 나누는 시간을 마련할 수도 있다고 한다. 장흥의 문학현장을 지나면서 지나칠 수 없는 문학의 명소가 될 것 같다.
아제아제바라아제의 고 강수연.
한승원의 작품 중 영화로 만들어진 ‘아제아제바라아제’의 주연배우 강수연(1966∼2022)은 1989년 ‘제16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감독 임권택은 성조지 금메달을 획득했다. 아제아제바라아제는 반야심경의 가장 마지막 부분으로 ‘가자가자 넘어가자’라는 의미의 범어 문구다.
한승원의 첫째인 한규호도 작가로 ‘받침없는 동화’를 썼다. 셋째 한동림도 등단한 작가다. 둘째인 외동딸은 소설가 한강이며, 부녀가 모두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인터내셔널상(2016년 5월 17일)’을 수상한 한강 작가는 아버지의 필력을 고스란히 이어받았으며, 2024년에는 대한민국 최초로 노밸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강 작품 ‘채식주의자’ 표지.
이미 한강은 국제적으로 위상이 높은 맨부커상을 비롯해 여러 국제 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으로 인해 한국 문단에선 가장 노벨문학상에 가까운 인물로 계속 평가돼 왔다. 다만 노벨문학상은 평균 수상자 나이가 60대~70대인데 한강은 겨우 53세에 불과했다는 점, 역대 아시아 수상자가 거의 없는 점 등의 작품 외적인 측면으로 보아 수상자 발표 직전까지 한강이 가까운 시일 내에 수상할 가능성은 낮게 점쳐졌다. 그러나 스웨덴 한림원은 이 모든 예측을 뚫고, 한강에게 상을 안길 정도로 그녀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한강 작품 ‘소년이 온다’ 표지.
스웨덴 한림원(18명) 정회원이자 노벨문학상을 심사하는 노벨위원회(6명) 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스티브 셈 산드베리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관련한 후일담을 공개했다. 제35회 호암상 시상식 참석차 방한한 그는 2025년 5월 29일 문학의집·서울에서 열린 특별 강연에서 “(한강의 작품은) 어떤 언어로 읽든 작가만의 분명한 목소리가 그 언어를 뚫고 나온다”며 “대체 불가능하게 뛰어나다”고 평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