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이청준 소설 ‘눈길’의 배경지 진목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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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이청준 소설 ‘눈길’의 배경지 진목마을 남도 문화·낭만 따라 걷는 ‘남파랑길(24)’   
  • 기사등록 2025-06-14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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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장흥 땅에 들어서니 천관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관산은 장흥군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는 산으로, 천풍산(天風山), 지제산(支提山)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리산·월출산·내장산·내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 가운데 하나다. 

 

천관산.

수십 개 솟아있는 봉우리가 마치 천자(天子)의 면류관과 같아 천관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신라 김유신(金庾信)과 사랑한 천관녀(天官女)가 숨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1998년 10월 13일 도립공원, 2021년 3월 8일 명승으로 각각 지정됐다. 

 

축사와 초지.(보리와 밀)

강진만을 지나 장흥 땅에 들어올 때까지 해안 저지대는 간척사업으로 인해 훌륭한 농지가 됐다. 해변의 어업도 풍요롭지만, 뭍에서의 논농사도 기름지게 보인다. 가을에 벼농사의 추수가 끝난 자리에 심었던 보리와 밀들은 그 푸르름을 더해간다. 주변에는 한우 축사가 많아 거주하는 인구보다 사육되는 한우의 수가 더 많을 것 같고, 귀리가 자란 밭이 눈에 띤다. 

 

귀리.

이곳 귀리(Oat)가 식용으로 사용되는지 가축의 사료로 사용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귀리의 원산지는 중앙아시아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친 식감 때문에 농사를 짓지 않았으나, 타임지에서 귀리를 10대 슈퍼푸드로 선정되면서 국내 소비와 생산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러시아가 최대 주산지다. 전 세계 생산량 중 5%만이 식용으로 쓰이고, 나머지는 사료로 이용된다고 한다. 서양에서 주로 먹는 오트밀의 원료다. 

 

회진면 진목리 방조제.

장흥군 대덕면을 지나면 회진면이다. 장흥군의 남부에 있는 회진면(會鎭面)은 조선 때에 회령진이 있었으므로 회령진·회진이라고 했는데, 1914년에 회진리라 해서 대덕면에 편입됐다. 1985년 회진출장소를 설치했다가, 1986년 회진면으로 승격했다. 면의 대부분이 대체로 200m 이하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북부와 서남부에는 간척평야가 펼쳐져 있다. 면 소재지인 회진리를 비롯해 진목리 등 5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이청준 묘소.

진목마을은 참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발길은 먼저 소설가 이청준의 묘가 있는 ‘이청준 문학자리’로 이동한다. 이청준 묘 옆에는 부인의 묘가 마련돼 있고, 뒤에 있는 묘는 부모의 합장묘다. 2010년 6월에 완공된 이곳은 그의 묘소와 진목리 갯나들 앞바다의 수평선과 이어지면서 그의 대한 여러 기억들을 접근하도록 설정됐다. 

 

이청준 문학자리 참여자 명단.

묘소 바로 뒤에는 아주 큰 축사(畜舍)가 자리한다. 눈을 감기 전 그는 묏자리를 보면서 “사람들 먹고 살라고 애쓰는디, 나 때문에 폐가 될까 두렵네”라며 행여 축사를 옮기라 요구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어떠한 오물도 끌어안은 작가의 배려에 숙연해진다. 당시 일개 군(郡)에서 한∼두 명 가기도 힘들다는 광주의 일류학교에 다니면서 “유명해지더라도 절대 군림하는 사람은 되지 않겠노라” 다짐한 것을 죽을 때까지 실천하는 강인한 모습이다. 

 

이청준 문학탐방길.

바로 앞 갯나들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싸 보낼 게를 잡던 곳이었다. 드넓은 들판으로 변한 지금은 밀과 보리가 봄바람에 살랑거린다. 들판 너머 바다에는 은빛 윤슬이 반짝인다. 

 

“자네들 내가 간 뒤라도 혹시 다른 자리 알아보지 말고, 내가 살던 집 옆, 저어기 바다가 멀리 바라보이는 이 자리를 영원히 묵을 곳으로 잡아주게나” 

 

이청준이 머나먼 소풍을 떠난 그곳에서 잠시 눈을 감고 추모해 본다. 

 

이청준 생가.

묘소에서 2.5㎞ 떨어진 곳이 이청준 생가가 있는 진목마을이다. 생가는 방 3개와 툇마루, 부엌을 갖춘 일자형 기와집으로 당시로는 제법 번듯한 가옥이었지만, 이청준이 광주의 고등학교에 다닐 때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갔다. 눈 내리는 어느 겨울 날, 아들이 사실을 알면 마음 아파할까 봐 어머니는 집주인에게 부탁해 팔린 집을 빌려 하룻밤 아들과 보낸 후, 새벽길을 걸어 인근 대덕터미널까지 배웅했다. 그의 소설 ‘눈길’의 배경이 된 실화다. 

 

이청준(李淸俊, 1939∼2008)은 보다 궁극적인 삶도 소설로 규명하려 했기 때문에 글로는 어떠한 표현도 거리낌이 없었으나, 말로는 쓰다 달다 별말이 없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어 나그네도 손님처럼 맞이하는 집이 아주 친한 이웃집 같은 분위기라 너무 좋았다. 아무 장식 없는 툇마루에 걸터앉으면 서로를 아끼는 모자의 애틋함이 전해진다. 

 

망개(청미래덩쿨) 열매.

2015년 1월 1일 이곳에 들렸다가 ‘진목마을’에서 ‘대덕읍 가학리’까지의 숲길을 걸어본 기억이 새롭다. 그때 서울과 광주 등에서 학업으로 객지 생활하다 집에 올 때 넘나들었던 고갯길은 눈발이 쌓여 발목까지 빠졌다. 

 

소설 ‘눈길’에 나오는 그 길 같았다. 아들이 넘어갈 때 어머니는 돌아서서 흘린 눈물이 굳었는지 당시 ‘망개열매’는 피보다 더 붉고 진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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