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성 기자
【에코저널=서울】‘대벌레’와 ‘러브버그’가 다량 발생한 서울 은평구 봉산 일대에 지난 2021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끈끈이롤트랩’ 방제가 오히려 나무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끈끈이롤트랩’ 방제.
은평민들레당과 서울환경연합, 생명다양성재단은 등에 따르면 2020년 대벌레가 대발생한 이후 봉산에서는 2021년부터 매년 4월부터 7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접착제 성분이 양면에 도포된 비닐을 나무 기둥에 감아 곤충을 죽이는 ‘끈끈이롤트랩 방제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은평구청은 지금까지 끈끈이롤트랩 방제 사업을 산림생태계를 파괴하지 않으면서도 대벌레를 방제할 수 있는 ‘친환경 방제’라고 홍보해 왔다. 산림청은 끈끈이롤트랩이 화학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물리적 방제라는 점에서 친환경 방제의 모범사례로 선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끈끈이롤트랩이 트랩에 포착된 생명 모두에게 피해를 입히는 비선택적 방제법이라고 지적했다. 그간 끈끈이롤트랩 방제가 시행된 이후, 구청이 방제의 표적으로 삼은 대벌레 외에도 다양한 곤충과 조류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끈끈이롤트랩이 부착된 수목에서도 피해 양상을 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끈끈이롤트랩 방제에 문제를 제기해 온 은평민들레당, 생명다양성재단,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3월 2일 끈끈이롤트랩 방제 사업으로 인한 수목피해 실태를 점검하는 시민조사를 진행하고, 4월 9일 ‘은평구 봉산 끈끈이롤트랩 피해 나무 시민조사결과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끈끈이롤트랩이 나무의 생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했다. 롤트랩 고정에 사용된 철심이나 롤트랩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생긴 칼자국이 나무의 수피 깊이 손상을 남길 경우엔 사부와 형성층이 파괴된다. 나무 생장이 위축될 뿐만 아니라 노출된 상처부위를 통해 병원균이 침입해 나무를 썩게 할 수 있다.
이번 조사는 올해 끈끈이롤트랩 사업이 시행되기 전인 2025년 3월 2일, 약 2시간 동안 봉산 능선에서 남쪽 방향을 따라 진행됐다. 끈끈이롤트랩 부착으로 인한 피해가 관찰되는 나무 122그루를 조사했다.
조사결과 ▲122그루의 나무 중 끈끈이롤트랩이 전혀 제거되지 않은 나무는 2그루(1.64%) ▲철심 제거가 되지 않은 나무 104그루(85.25%) ▲수피에 끈끈이 접착제가 보통 이상으로 남은 나무 76그루(62.30%) ▲끈끈이롤트랩 제거 시 발생하는 종방향의 칼자국이 1개 이상 관찰된 나무 118그루(96.72%) ▲칼자국 중 그 깊이가 깊어서 형성층까지 손상된 것으로 보이는 나무 56그루(45.90%) ▲칼자국과 끈끈이 잔여물로 인해 수피가 말려 벗겨지거나 터지는 등의 피해가 관찰된 나무 72그루(59.02%) ▲끈끈이롤트랩이 감겼던 줄기에 부후(자실체)가 발견된 나무는 53그루(43.44%)로 확인됐다.
그외에도 끈끈이롤트랩이 부착됐던 지점이 부풀어 오르거나, 피목(줄기숨구멍) 피해가 관찰됐다. 줄기 중간에서 뿌리가 발달한 듯한 모습도 관찰됐다.
현장조사에서 끈끈이롤트랩 시행 흔적이 있는 고사한 벚나무가 관찰되기도 했다. 칼자국이 난 곳을 따라 자실체가 관찰되는 등 부후균이 수피에 침투해 나무가 부분적으로 썩고 있는 상태였다. 이 벚나무가 끈끈이롤트랩 시행 때문에 고사했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반복되는 끈끈이롤트랩 시행이 나무의 생리기능을 악화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우려다.
2021년부터 끈끈이롤트랩 방제 사업을 시행해오는 은평구는 해를 거듭할수록 나무에 칼자국, 철심, 끈끈이 잔여물 등의 피해가 누적되고 있음을 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끈끈이롤트랩으로 매년 가중되는 나무 피해에 대한 어떠한 조사나 진단 없이 그저 관례적으로 사업 시행을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올해도 봉산의 나무에는 끈끈이롤트랩이 감겼다. 끈끈이롤트랩이 감긴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박새와 쇠박새 등 소형 조류 피해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 숲에 사는 모든 생물에게 피해를 주는 끈끈이롤트랩 방제 사업은 친환경이 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서울시는 벌에게 치명적인 성분의 농약을 살포하는 화학방제를 전면 중단할 것을 선언하면서, 끈끈이롤트랩 등을 친환경이라 주장하며 이같은 물리적 방제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귀한 대접을 받는 벌 역시 끈끈이롤트랩에 포획된다.
환경단체들은 끈끈이롤트랩이 나무를 통로 삼는 모든 생물에게 피해를 입히는 ‘비선택적 살생장치’로 봤다. 이번 조사에서는 동물뿐 아니라 사업시행으로 보호하려는 나무마저 다치고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은평구 봉산은 그간 편백숲 조성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곳이다. 대벌레와 러브버그는 봉산 중에서도 편백숲과 가까운 활엽수림 중심으로 대발생했다. 편백숲이라는 인공 단일림을 조성하기 위해 산림생태계를 파괴한 것이 곤충대발생을 유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번 활동은 풀뿌리 지역정당 은평민들레당과 시민과학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서울환경연합, 생태 연구·보전활동을 수행하는 생명다양성재단의 공동 진행했다. 은평구에서 시행하는 끈끈이롤트랩 방제 사업에 대해 시민들과 함께 현장을 직접 조사하며 문제를 인식하고, 증거에 기반해 문제를 제기하는 정책모니터링 활동, 지역 정치 활동이자 생태계 보전을 위한 시민과학 활동이었다.
조사에 참여한 민선희씨는 “생태에 대해 다정한 지 여부는 결국 사람에 대해 다정한 사회인가 생각하게 된다”며 “나무가 곤충이 사람이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 있음을 다시금 볼 수 있었다”는 소회를 나눴다.
탁은정씨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우리의 숲을 망치고 자연환경을 망치는 것을 현장을 보고 온 것 같다”고 말했고, 김원국씨는 “우리가 한 그루라도 더 조사해서 이 피해를 공론화시켜서 다음에는 나무에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곤충들과 새들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는 소감을 밝혔다.
환경단체는 “눈앞의 문제에 대한 빠른 해결을 위해 섣불리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는 일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며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오만을 내려놓고, 인위적 개입보다는 대발생의 원인을 파악하고, 파괴된 생태계를 건강하게 회복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곤충대발생 억제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은평민들레당과 서울환경연합, 생명다양성재단은 숲의 건강성과 다양성을 훼손하는 끈끈이롤트랩 방제 사업을 중단하고, 도시공원의 생태적 관리 전환을 위한 활동을 전개한다는 계획이다.